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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esther Jun 09. 2021

두통 덕분에

인생을 배운다

접시 꽃 향기 지나쳐 오는 동안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찾아왔다


여러가지 원인 번갈아 떠 올리며

급체한 거라고 스스로 진단하니

머릿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이 서랍 저 서랍 뒤져

손에 잡은 사혈침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하다가 용기 낸다


엄지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새끼 손가락까지 빠짐없이

양손 모두 정성껏 사혈하니


전신이 노근 노근해 지면서

뱃 속에 꾸르륵 신호가 오고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 온다


이제 한 숨 깊게 잠들었다가

홀연히 깨어나고 난 후에는

성난 두통일랑 사라지겠지


그래서 또 인생을 배운다

허겁지겁 살다가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만고의 진리


그 어려운 걸 깨우치고

저무는 하루를 재우는

두통 덕분에 성숙해진


밤, 모두들 무사히

굿 나잇 굿 밤 하시길

기도하면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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