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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에스더esther

Man's Search For Meaning

빅터 프랭클은 1905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다. 어릴때

부터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정신과 의사가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때 자신과 가족들 모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등에서 고난을 겪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거의 3년간 강제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일을 솔직하게 기록한 것이다. 나는 진즉에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최근에 청소년판이 출판 되었기에 다시한번 빅터 프랭클의 육성을 직접 듣는다는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빅터 프랭클은 평범했던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

안에서 비참한 생활을 겪으며,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 내었던 상황들을 고백한다.


사람은 누구라도 그의 삶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 선택할 자유와 책임이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사상은 [로고 테라피]라는 정신

치료법 이론이 되었다.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의미치료]도 바로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

에서 이 책은 '로고스'의 기록이며 지침서이다.


빅터 프랭클이 강제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가혹한

일들을 기록 하고자 마음 먹었던 1945년만 해도

그는 익명으로 이 책을 출판 하려고 했었다.

'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쓰고 책의 뒤에 '2부 로고 테라피의 기본개념'을 쓴 것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1부와 2부는 서로의 근거와 각자의 보완이 되었고,

이 책은 결국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5년 처음 책을 쓸 때 나는 2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처음 9일동안 줄곧
그랬으며, 책도 익명으로 내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있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초판본 표지에는 내 이름이 없다. 하지만
초판이 출간되기 바로 전, 적어도 속표지
에는 이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
권유를 받아 들였다. 이름도 없이 쓰려 했던
이 책이 내게 어떤 문학적인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원했던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로 전달하는 것이었다.(p.15)

빅터 프랭클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바로 전, 빈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이민 비자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님을

두고 떠날 수 없던 그는 오스트리아에 그냥 남게

되었고, 강제 수용소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가 히틀러에 점령 당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왜 탈출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
나는 망설여 졌다. 부모님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 강제 수용소,
아니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갈 운명에 놓인 그들을
두고 정말 떠날 수 있을까?
,,,,,,,,,,,,,,
그 때, 탁자 위에 놓인 대리석 조각이
보였다. 아버지에게 그게 뭐냐고 묻자.
국가사회주의자(나치당)들이 빈에서
가장 큰 유대교회당을 불태운 자리에서
주워 온 것이라고 했다. 십계명을 쓴
대리석의 조각이어서 집에 가져 왔다는
거였다. ,,,,,'그게 무슨 계명인데요?'
내가 묻자 아버지가 답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 순간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그 땅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미국비자를 흘려 보냈다."
(p.16~17)

빅터 프랭클의 선택은 극심한 고통 속으로 그를

몰아 넣었으나, 그를 죽이지는 못했다. 결국은

살아 남아서 [로고 테라피]이론을 정립하였으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귀하게 전해지는

기적을 남겼다. 빅터 프랭클이 솔직하게 직접

적어 내려간 수용소 생활은 의미 치료를 배우는 지금, 살아 있는 삶의 귀중한 체험이 되고 있다.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기록은 아무런 죄도

없이 가장 비참한 감옥에 갇힌 평범한 이들의

절규였다. 아니, 빅터 프랭클이라는 한 개인이

써 내려간 지독히도 솔직한 나레이션이다.


내가 수용소에 들어갔을 때를 이야기해 보겠다.
사람들 1,500명이 기차를 타고 며칠 밤낮을
계속 달렸다. 열차 한 칸에는 80명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소지품을 담은
짐 꾸러미 위에 누워 있었다. 열차 안이 얼마나
꽉 찼는지 창문 위쪽으로 겨우 잿빛 새벽의
기운이 들어올 뿐이었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이름,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곳에서 구해내고 싶다는 듯이,,,,,(p.31~32)


결국, 강제 수용소행 기차를 탄 빅터 프랭클을

비롯한 일행들은 다행히도(?) 아우슈비츠로 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행운의 전부였다. 그 뒤로 그들이 겪게 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끔찍하고 엄청난 공포로 그들을 가차없이 몰아 갔으니 말이다.


왜 자살하지 않을까?


수용소에서 잠깐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프랭클은 말한다. 희망 없는

상황, 차츰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다른 이들의

죽음을 보며 역시 가까워지는 자신의 죽음을 떠

올리는 고통이 자살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은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당장 자살의

시도를 하지 않게 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 곁에 있던

동료 하나가 몰래 프랭클에게 다가와 전해 주었던

가스실로 가지 않을 수 있는 비법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매일 면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되도록 매일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을 쓰더라도
말이야. 마지막 빵을 포기하더라도 면도를 해야
해. 그러면 더 젊어 보일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방법이지. 살아
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일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거야.(p.47)

시련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다


빅터 프랭클은 셀수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 들었다. 3년여의 비참했던 수용소 생활이 끝나갈 때조차도 그는 여러 번 죽음으로 몰릴뻔 했다. 그러던 그를 살린 건 무었이었을까? 바로 모진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승화 시키고자

했던 '삶의 로고스' 아니었을까?

사람이 자기 운명과 시련을 받아 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삶에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폭 넓은
기회-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준다.

그 삶은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반대로, 자기 보존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처럼 될 수도 있다.,,,,,

인간 내면의 힘이 주어진 운명을 초월해서
자기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나 인간은 운명의
시련을 맞닥뜨려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가
있다. (p.115~116)

이 책의 말미에서 빅터 프랭클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져 있던 동료 수감자들의 사례를

들려 준다. 때로는 전쟁이 끝나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찼던

사람도 그 희망의 끈이 사라지는 순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되살리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프랭클은 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다" 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보다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벗어난 이후의 심정에 대하여도 덤덤하게 묘사해

준다. 마침내 자유의 날이 찾아 와 모든 게 꿈처럼

여겨진 것과 같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시련들도 언젠가는 한 번의 악몽 쯤으로 생각될 날이 올것

이라고. 책은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살아 돌아 온 사람이 시련으로 얻은 가장 값진

경험은 막상 다 겪어 보니, 이 세상에서 신 말고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아주 신기한 느낌을 알게

되는 것이다" (p.148)

p.s.이 책의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은 빅터 프랭클이 직접 정립한 정신 의학 이론이다.

현재, 이 책을 번역한 이시형 박사와 심리 치료 전문가인 박상미 교수의 [한국 의미치료학회]

설립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 의미치료를 배우고 있는 [한국의미치료학회]의

제1기 학생이기도 하니 그 인연이 참 아름답다.


청소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을 출판 하려는 선한 의도대로, 기존의 책 보다도 훨씬 더 수월하게 읽혀진 '청소년을 위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 덕분에 가을의 끝 자락에 서 있던 마음이 한결 따스해 졌다. 아울러, 빅터 프랭클의 날 것 그대로의 진심어린 깨달음이 힘든 시대를 견디는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해 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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