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1945년 처음 책을 쓸 때 나는 2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처음 9일동안 줄곧
그랬으며, 책도 익명으로 내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있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초판본 표지에는 내 이름이 없다. 하지만
초판이 출간되기 바로 전, 적어도 속표지
에는 이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
권유를 받아 들였다. 이름도 없이 쓰려 했던
이 책이 내게 어떤 문학적인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원했던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로 전달하는 것이었다.(p.15)
"오스트리아가 히틀러에 점령 당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왜 탈출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
나는 망설여 졌다. 부모님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 강제 수용소,
아니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갈 운명에 놓인 그들을
두고 정말 떠날 수 있을까?
,,,,,,,,,,,,,,
그 때, 탁자 위에 놓인 대리석 조각이
보였다. 아버지에게 그게 뭐냐고 묻자.
국가사회주의자(나치당)들이 빈에서
가장 큰 유대교회당을 불태운 자리에서
주워 온 것이라고 했다. 십계명을 쓴
대리석의 조각이어서 집에 가져 왔다는
거였다. ,,,,,'그게 무슨 계명인데요?'
내가 묻자 아버지가 답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 순간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그 땅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미국비자를 흘려 보냈다."
(p.16~17)
내가 수용소에 들어갔을 때를 이야기해 보겠다.
사람들 1,500명이 기차를 타고 며칠 밤낮을
계속 달렸다. 열차 한 칸에는 80명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소지품을 담은
짐 꾸러미 위에 누워 있었다. 열차 안이 얼마나
꽉 찼는지 창문 위쪽으로 겨우 잿빛 새벽의
기운이 들어올 뿐이었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이름,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곳에서 구해내고 싶다는 듯이,,,,,(p.31~32)
되도록 매일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을 쓰더라도
말이야. 마지막 빵을 포기하더라도 면도를 해야
해. 그러면 더 젊어 보일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방법이지. 살아
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일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거야.(p.47)
사람이 자기 운명과 시련을 받아 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삶에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폭 넓은
기회-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준다.
그 삶은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반대로, 자기 보존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처럼 될 수도 있다.,,,,,
인간 내면의 힘이 주어진 운명을 초월해서
자기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나 인간은 운명의
시련을 맞닥뜨려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가
있다. (p.1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