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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시리즈 6. 섹스

더 깊이 생각해 보는 법

by 에스더esther

How to think more about sex?


사실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시리즈 6권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읽은 내용이 조금 생소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부분이 많아서 책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가 망설여

졌던거다. 이제 인생학교 시리즈 책을 다 읽었으니, 마지막 숙제처럼 남겨 두었던 책, <섹스>를 다시 펼쳐든다. 복습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먼저, 이 책의 서두에 실린 유명인들의 서평중에서

소설가 '백영옥'의 문장을 발췌하며 시작해 본다.

...이제는 섹스에 대한 욕망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 평등한 지위를 갖고, 도덕적 허식을
걷어 치울때다..." ([인생학교, 나는 이렇게
읽었다]중에서)

인생학교 시리즈 6권의 책 중에서 유독 이 책만이

알랭 드 보통이 직접 썼다. 그만큼 알랭드 보통의

전문분야(?)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책을 시작한다.


Q1. 왜 모두의 성생활은 이상한가?


Q2. 사랑과 섹스는 왜 함께 할 수 없나?


Q3. 우리는 왜 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나?


알듯, 모를듯한 질문들이다. 알랭 드 보통은 부연

설명을 힌트처럼 주고 있다.


톡 까놓고 말해서, 섹스에 관한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죄책감과 노이로제, 병적 공포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망, 무관심과 혐오등에
시달리고 있다. ...

말하자면 우리는 전반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p.18)


알랭 드 보통은 성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으로 진화 생물학을

꼽고 있다. 즉, 우리 인간들은 다른 동물과 마찬

가지로 '종족번식'을 위해 성생활을 하도록 유전

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알랭 드 보통은 위에 적은 진화 생물학의 전통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즉, 진화생물학이 '종족번식'이라는 존재이유에

대하여는 나름대로 이론과 예시로써 잘 설명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특정한 상대와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동기의 실마리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성적인

동기의 실마리는 바로 '결핍에의 충족'이다.


인간은 누구나 발가벗은 몸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파고들며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우리가 침으로 방울을 만드는 일도,
다시말해서 우리가 단지 세상에 존재 한다는
일만으로도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그러다가 차츰 변화가 닥친다. 이제 더 이상은
젖꼭지를 물지도 못하게 되고, 신체의 특정한
부위에 대한 부끄러움도 생겨나, 신체 중에서
끝없이 성장하는 영역들은 남들이 만지면 큰
일이 나는 것으로 알게 된다. (p.35~36)

그러면서 알랭 드 보통의 설명은 이어진다. 우리가

태어날 때 함께 가지고 나온 [인정의 욕구]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 와

'자신의 살 냄새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이다. 그래서 그는 성적 흥분이 곧 감정적인

만족이라고 얘기한다. 다만, 섹스와 일상생활의

커다란 격차가 문제상황을 만든다고 말한다.

섹스는 특유의 다정함, 격렬함, 열정, 쾌락이
지배하는 반면, 삶의 일상적인 측면들은 반복,
지루함, 억압, 어려움, 냉담으로 가득하다.

이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비참한
기분에 젖어드는 것이다. (p.69)

결국, 알랭 드 보통은 우리의 시대적 분위기가

섹스를 단순한 육체적 과정으로만 취급한다고

얘기한다. 그가 반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섹스의 심리학적 측면을 듣고 나면 조금은 그런 견해가

동조할 수밖에 없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의 마음 속 열망이고, 특별히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느끼게 되는 엑스터시다.

그 특별한 누군가는 우리가 가진 가장 커다란
두려움을 가라 앉혀줌은 물론이요, 공통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을 나누는 것까지도 함께
꿈꿀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p.70)

이 책에서 조금 당혹스럽게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나탈리냐 스칼렛이냐?"(사진 참조)라고 하는 생뚱맞은 질문이 그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생경한 질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누구나 자신의 결함을 보상

해주고 더 건강한 상태로 도와줄 상대를 찾는다고

한다. 이는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동물적 본능'

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그럼 이제 당혹스런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가

얘기한 '결핍에의 충족'이 나탈리나 스칼렛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일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가 지나치게 과장이 심하고 신뢰하기 힘든
부모 밑에서 자랐고, 그러한 부문의 성향때문에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스칼렛 요한슨의 외모에서 풍기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기미가 왠지 조금 불편하다는
암시를 받을지 모른다. 스칼렛의 광대뼈를 보고
이미 질리도록 익숙한 자기중심적 기질을 느끼고
눈을 보고는 우리 자신이 걸핏하면 그러듯이
격렬한 분노를 쉽게 터뜨릴것 같은 인상이 느껴
져서, 결국엔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을것 같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래너 객관적으로 볼때 미모
면에서는 두 사람 다 막상막하지만, 스칼렛이
아닌 나탈리를 더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p.98~99)

바로 이러한 선택 자체가 '결핍에의 충족'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스칼렛이든

나탈리든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약점을

넘어서고 싶은 인간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다음 파트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여러가지

괴로움을 주는 섹스의 난관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가볍게는 이성에게 거절 당하는 것부터 오랜

커플의 권태, 외도, 포르노, 결혼제도까지.


알랭 드 보통이 주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섹스의

난관들 중에서 다루고 싶은 주제는 '결혼제도'

이다. 사실 다른 것들은 비교적 노골적인 사적

취향의 문제인지라 섯불리 접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제도'란 어떤 것인가?


결혼에 대한 이 새로운 이상의 탄생과 옹호는
특정 사회계층, 즉 부르주아 계층에 의해 거의
독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 여기에서 말하는 "결혼의
이상적인 탄생과 옹호"란, 부부는 자식들을
위해 서로를 참아주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되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서로를 깊이 사랑도 하고,
욕망해야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는 결혼제도란 부부의 갈등상황이

단 한 사람의 도움만으로도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개념이다. 이를 세상 사람들

에게 강요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그는 결혼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태도를 갖기도 하는데, 즉 결혼서약을 주고 받을 때 아래와 같이 주고 받자는 것이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맹세 합니다. 그로 인한 불만도 당신에게만 털어
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바람을 피우며..여기
저기 불만을 퍼트리고 다니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가지 불행의 선택을 검토했고 내
일생을 바칠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p.214)

참으로 알랭 드 보통다운 서약이다. 결국 위와같은

서약을 하게 되면 설사 외도를 저지르더라도 실망

한것에 대해서만 서약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어쨌든 부부가 자신들의 삶이 결혼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외도의 충동에 몸과 마음을 내 맡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곧 기적과도 같은 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인생시리즈 총6권의 책 중 마지막으로

선택된 책인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맺음말에서 알랭 드 보통은 만약 우리에게 성욕이

란게 없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런지 모르겠다고 적는다. 반면, 성욕으로 인해 우리의 흥미와 상식을

넓힐 수 있었다고도 얘기한다.


"성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흥미와 상식을
넓혀 가기도 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더
친해지기 위해 18세기 스웨덴 가구의 섬세한
장식에 매료되거나, 장거리 사이클을 배우고,
한국의 '달항아리' 백자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p.228)


알랭 드 보통의 성적 성향이 참으로 건전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그만 덮어 두기로 한다.

언젠가 궁금해질 때 다시 펼쳐보기로 작정한

부분에 곱게 색인을 붙여 놓았으니 말이다.

p.s.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한국의 '달 항아리'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참 짜릿했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가 한국 이태원에 분교를

내었을 때 달려가서 강의를 들었던 나로서는 왠지

낯설지 않은 작가이기도 한 알랭 드 보통.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서이다. 그런 그를 응원 하고 기회가 되면 런던의 인생학교도 꼭 한번 가 보리라. 버킷 리스트 한 줄 보탠다. 굿럭♡

photo by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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