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s on Suicide
Q. 자살은 잘못된 것인가?
[자살에 대하여]를 쓴 목적은 단순했다.
(2020년 8월 부르클린에서 쓴 작가의 서문)
Q. 자살은 왜 비도덕적이라 여겨지는가?
근대와 고대에서 자살을 보는 관점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플라톤은 자살을 불명예라고
간주했지만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사법적 질서로 인한 자기살인의 경우, 중요한
예외로 받아 들였다. 철학의 실천은, 따라서
자살로 시작한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철학하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p.48중에서)
나는 더 이상 고통과 싸울 수 없어.
내가 당신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걸 알아.
(.....)이제는 이것조차 제대로 쓸 수 없어.
읽을 수도 없어. 내 인생에서 누린 행복은
모두 당신 덕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
(p.137중에서)
언제나, 하고 램지 부인은 생각했다. 어떠한
사소한 것 때문에, 무언가 보이거나 들려서
어쩔 수 없이 고독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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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밤중에 깨어 나면 그 불빛이 바닥을 거쳐 침대 쪽으로 휘어진
것이 보였다)불빛을 보았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
하고 그는 매혹되고 홀린 채 불빛을 바라 보면서,
마치 그것이 은빛 손가락으로 그의 머릿 속에
밀봉된 무언가를 어루만져, 무언가가 터져서 기쁨으로 넘친 듯이, 행복, 아름다운 행복, 강렬한 행복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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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굽이치고 부풀어 해변에서 부서졌고,
그의 눈 속에는 황홀감이 솟아 오르면서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마음의 바닥에서 질주했다. 그는
느꼈다. 이것으로 충분해! 이것으로 충분해!
(p.138~139중에서)
11월 말 목요일 오후 4시30분 무렵, 회색 구름과 갈매기, 돌풍이 있는 가운데 광활한
어둠이 내려오는 이스트앵글리아 해변에서의
이 순간은 백만 번 중 한 번, 수억 번 중 한 번
일어난다. 여기에 기쁨이 있다. 여기서 스스로
고독에서 빠져나와, '쐐기 모양을 한 어둠의
핵심'인 자아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손을 뻗을
수 있다. 사랑 안에서......!
우리의 눈 속에서 황홀감이 솟아 오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2014년 말, 어느 날
영국 올드버러에서.(p.140~141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