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박상미 옮김

by 에스더esther

어느 책에도 쓴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빅터 프랭클 책 앞 표지

죽음의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 온

빅터 프랭클의 인생과 철학이 담긴 책이

드디어 박상미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

빅터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학자,
철학자입니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온 가족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 후, 프랭클은 3년동안 네 군데의
수용소를 거쳤으나 끝내 살아 남았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본인의 '체험'을
통해 발견한 치료법이 바로 '로고 테라피' 입니다.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혹독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매일 매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체험이 발견한 이론
입니다. 프랭클은 죽음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기적의 힘을 지닌 로고 테라피를 본인이 창시한게 아니라 '발견'
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과
더불어 정신요법 제3학파라 하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프랭클 박사가 창시한 이후, '드라마 틱한 치유효과'로서 로고 테라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해방 후, 프랭클은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 빈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 과장으로 일했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듀크 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재직했습니다. 1970년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캠퍼스에 세계
최초로 로고 테라피 강의를 개설하고 빅터 프랭클을 초빙교수로 모십니다. 전 세계 29개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프랭클이 쓴 [인간의 의미추구 (Man's search for Meaning)](죽음의 수용소에서) 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미국정신과협회는 정신치료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빅터 프랭클에게 1985년 오스카 프스터상을 수여했습니다.

프랭클은 인생의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의미를 발견하며 살았습니다. 80세까지 암벽
등반을 즐겼고, 80세가 넘어서 경비행기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93세에 영면에 들기까지 강의와 집필을 쉬지 않았고, 40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1997년 심부전으로 삶을 마감하고, 비엔나 중앙묘지 유대인 구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여는 글 중에서 발췌)

빅터 프랭클은 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그가

태어난 체르닌가세 6번지 건너편 7번지에는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가 살았다고 전한다.


제2 빈 학파인 아들러의 심리학과 제3 빈 학파인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가 한 동네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체르닌가세 6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 건너편 7번지에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가 살았었다는 얘기를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어요. 제2 빈 학파
아들러의 심리학과 제3 빈 학파인 나의
로고 테라피가 한 동네에서 탄생했다는
건 우연치곤 참 흥미로운 일이지요?
(p.16중에서)


[부모님]

빈의 명소인 카페 질러에서 태어날뻔 했던 프랭클.

그의 어머니는 1905년 3월 26일 화창한 일요일,

오후에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날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했다. 한없이 인자하기만한

어머니와 책임감이 강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프랭클은 부모님의 성향을 골고루 물려 받았다.


[어린시절]

실제로는 빈의 카페 질러가 아닌 체르닌가세 6

번지의 집에서 태어난 프랭클의 집 건너편에는

아들러가 살았다. 제2 빈 학파인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과 제3 빈 학파인 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한 동네에서 마주보고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프랭클은 세 살이 되면서부터

이미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죽음이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p.17) 라는사실을 어린시절

부터 깨달았던 프랭클이었던 것이다.


[이성]

프랭클은 완벽주의자였다. 그의 성공비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작은 일을 할 때는 큰 일을 할 때처럼 철저 하게 하고, 큰 일을 할 때는 작은 일을 할 때처럼 편안하게 하라


둘째, 일을 할 때는 신속하게 처리하라


셋째, 가장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하라


(p.23)


[감성]

프랭클은 이상주의자 이지만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깊은 공감력과 회복 탄력성을 본인의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유머감각]

더군다나 프랭클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강의 하면서도 사람들을 웃겨서 모조리

자기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강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이겨내고 위한 유머가

필요 했었다고 프랭클은 얘기하고 있다.


[취미]

진한 커피를 아주 좋아하던 프랭클은 카페인 뿐만

아니라 암벽등반도 좋아해서 알프스 산의 암벽 두

군데를 최초로 등반 성공하여 '프랭클의 비탈길'을 만들기도 하였다. 67세에 첫 비행에 도전하고, 첫

비행 후 두 달 만에 솔로비행에 성공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프랭클은 드라마도 써서 배우와 해설자,

강연까지 세 명의 빅터 프랭클이 되기도 하였다.


[학창시절]

1차대전 당시 가난했던 프랭클은 한 겨울에도 새벽 시장에 나가 감자를 팔았다. 새벽3시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감자를 팔다가 어머니와 교대한 후에야

학교로 갔다. 어수선한 시절, 철학에 빠져 있었던

프랭클은 치열하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정신분석 다루기]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정신분석에 관한 논문을

쓰고 강의했던 프랭클은 프로이트와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프로이트와 후에 대립하기도 했지만

프랭클은 그를 존경했고, 프로이트 역시 프랭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장래희망]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했던 프랭클은 만화가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와

만화가의 공통점으로 '인간의 약점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로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로고테라피가 바로 이런 이론의 토대였다.


[로고테라피의 시작]

프랭클은 1926년 학회의 연구모임에서 드디어 <로고테라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이

공식적인 학술단체에 로고테라피를 알리게 된

첫 시작이었다. 제 3 빈 학파로 정립된 것이다.

특히, '역설치료기법'과 '공통분모기법'은 로고

테라피 심리치료의 중요한 분야이기도 했다.


[의사의 삶]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프랭클은 본격적으로

정신과 수련의로서 진료를 시작했다. 수련기간

동안 '자살기도 환자의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1937년 드디어 병원을 개업한 프랭클은 개원

초기에 만난 조현병 환자와의 만남에서 처했던

급박한 위해의 상황을 진심을 표현함으로써 극복

해 내기도 했다.


[출국비자를 포기한 이유]

프랭클은 미국비자를 받고도 부모님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미국행을 결국 포기했다. 어느 날 게슈타포

사령부에서 호출명령을 받고 심문을 받던 프랭클은

광장 공포증에 대한 상담을 하게 된다. '역설지향

기법'을 설명함으로써 프랭클과 그의 부모는 일시

적으로나마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아내, 틸리]

프랭클의 첫번째 아내, 틸리는 간호사였다. 서로

호감을 느낀 그들은 나치당국의 허가를 받았던

마지막 유대인 커플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

같은 결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혼한 후에 불과 9개월 뒤 수용소로 끌려가고 말았다. 아내 틸리는 수용소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클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행을 택하고, 결국에는수용소에서 죽고 만다.


[아우슈비츠]

1945년 4월 27일 프랭클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아내 틸리도, 부모님도 형제조차도

모두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프랭클이

끝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잃어버린 원고'

를 다시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빈에서]

프랭클은 빈 대학병원 정신과의 책임자로 근무를

하게 된다. 수용소에서 죽은 아내와 가족들을 생각

하며 통곡하면서도 그는 친구에게 말한다.


"너무 고통스럽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일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네. 삶이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p.134)


그 후 프랭클이 출판한 <인간의 의미추구>(한국어

판<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프랭클의 두 번째 아내, 엘리]

프랭클의 두 번째 아내 엘리는 그의 저술 작업에

최선을 다해 동참했다. 이러한 공헌을 통해 그는

로고테라피 이론을 체계화 시킬 수 있었다.


[전 세계, 강연여행을 떠나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각지로 다니며 프랭클은 무려 200회 이상

강연을 하였다. 미국에서도 100회 이상 강연을

펼친 프랭클과 아내 엘리는 이를 '세계강연여행'

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프랭클은 고액 강연료

연사이기도 했지만, 사례금을 받지 않는 무료의

강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미있는 강연이라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기꺼이 강연에 임했다.


[늙음에 대하여]

프랭클은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 수록

성숙해 진다는 의미"(p.157)라고. 또한 늙음에

대한 덧 없음이 곧 삶을 책임지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고 한다. 또한 프랭클은 힘 있게 강조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실수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158)


그러니 어찌 지금 살고 있는 두 번째 인생을 우리가

허투루 살 수 있을 것인가. 프랭클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게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를 만나다]

프랭클 부부는 교황 바오로 6세를 만나고,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교황은 로고테라피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었으며, 로고테라피는 교회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에 꼭 필요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교황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을 때, 교황은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외쳤다.

독일어로 외친 교황의 인사에 프랭클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

'모든 인간은 고통에 시달린다'(p.163)라고 프랭클은 말 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이 프랭클의 책을 읽고 치유되고 있다.

미국인명사전 20인에 선정되기도 한 프랭클은

인생의 관심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살겠다."(p.166 )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대목이었다.


프랑클의 자서전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이어서

'덧붙이는 말'에서는 두 번째 아내인 엘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47년, 결혼하여 평생 그를 돕게 되는 엘리. 그들에게는 딸 가브리엘과 사위 프란츠, 그리고 손주 카타리나와 알렉산더가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 남았던 프랭클은

그렇게 또 가족을 이루고 삶의 의미를 이루어 낸

것이다.


이 책은 프랭클이 아흔 번째 생일을 기념해 본인의 전 생애를 회고하며 적은 것이라고 한다. 프랭클은

자서전을 쓰고, 2년 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을 번역한 이유로 박상미 교수는 '지금의 한국인들 에게 꼭 필요한 삶에 대한 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서'(p.172) 라고 했다. 거장의 전 생애, 90년이 담긴 소중한 선물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건네 준 박상미 교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빅터 프랭클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도 충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p.s.진한 커피를 사랑했던 프랭클처럼 오늘 밤은

근사한 커피 향기로 책을 읽은 감동을 채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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