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Dday-+200일의 기록

200일, 그리고…또

by 에스더esther


“Re-Move하려면, remove해라!!!”

(다시 움직이려면, 과감히 지워라)


<폭포>


#1. Dday-100일의 질문


정년퇴직까지 정확히 100일이 남은 날, Dday-100일

이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여정,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는 아침이다.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에게 단순하지만 속

깊은 질문을 던진다.


“42년 동안 다닌 익숙한 직장이었던 은행을 떠나면,

나는 이제 다시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나는

과연 무엇부터 과감히 지워야 할까?”


지나온 42년, 나의 삶은 오직 일터 중심이었다. 지식과 경험, 관계와 물건들로 가득 찬 하루, 하루는 끊임없이

‘쌓아 올리는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앞으로 한발 더 내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지혜로운 ‘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남은 -100일의 시간은 단지 정년퇴직을 준비

하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 속살 깊숙

하게 자리한 고정관념, 익숙하지만 비효율적인 습관들, 마음 한 켠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낡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지워내야 한다. ‘내면의 리셋’을 위한 움직임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커다란 바위만큼 무섭게 다가온다. ‘정년퇴직까지 남은 앞으로의 Dday-100일 동안, 나의 낡은 습관들을 지워 나가는 여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든다. 익숙했던 일상의 방식을 내려놓는 일이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동시에, 설렘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을 향한 두려움과 설렘의 두 감정은 내 안에서 조용

하게 손을 맞잡고 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으로 힘껏 밀어주고 있다. 나는 결심한다. 내게

남겨진 100일의 시간들을 나 자신을 셀프 코칭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한다.


나는 코치다. 정년퇴직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배

코칭이 지금 나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 주길 기대한다. 나의 새로운 움직임을 위해 가장 먼저 지우기로 결심

하는 것은 바로 ‘고정관념’이다.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던 ‘나만 옳다는 고집들로부터의 탈출’이다. 이제는 과감히 버려야 할 낡은 생각들이다.


그래야 나는 Re-Move할 수 있다. 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어색한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몸과 마음을 함께

Re-Move하기로 다짐하는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Dday-100일을 환영한다.



#2. Dday -+ Zero, 서해바다로 출근하다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Dday zero의 날, 나는 서해 바다로 마지막 출근을 감행한다. 자유를 향한 용기 있는 첫걸음이다. 거침없이 사무실이 아닌 서해 바다의 안산

누에 섬으로 출근 길, 방향키를 잡는다. 특별 휴가를 내고 새벽녘 서둘러 바다로 향한 것이다. 차가운 12월의 끝날, 바람이 옷깃을 스쳤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설렌다.


인생 최초의 ‘오롯이 나를 위한 출근’이기 때문이다.

조용히 열린 바닷길을 따라 누에 섬으로 들어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정해진 목적도 시간도 없이 단지 한 걸음씩, 스스로의 내면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바람이 나를 비우고, 파도가 나를 토닥이며, 꼭 껴안아 준다. 드디어, 누에 섬 끝자락의 등대 전망대에 올라 큰 함성으로 외친다.


“나는 자유다.”


사방이 바다인 그곳에서 나는 지난 시간들을 감사함으로 떠나 보내고, 앞으로의 시간을 환하게 맞이한다. 인생의 후반전, 이제는 더하고 빼는 시간으로 채워질 나만의 Dday인 오늘은 앞으로 계속 D+’1천일’, D+’1만일’로 세월의 흐름을 더해 갈 것이다. 정년퇴직 후의 내 삶은 용감하게 ‘Re-Move(다시 움직이기)’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채워질 것이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 흘러가는 시간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면 된다. 나는 누에 섬을 나서며 조용히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왼쪽 새끼손가락을 귀여운 사슬모양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약속한다.


“앞으로의 시간을, 아름답고 알뜰하게 살아내자.”


나는 다시 움직이려 한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정년퇴직은 끝이 아니라, 내 인생2막의 시작이다. 이제는 흘러가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분히 걸어갈 것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충만하게 살아 내기로 굳게

결심한다.


아직은 서투른 발걸음이지만 이 걸음은 그 동안의 고집 스러운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한 전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했던가. 실패도, 성공도 무엇인가를 해야 얻어 지는 거니까. 그리고 지금,

한 걸음씩 다시 걷는 이 길 위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나 자신을 향한 지극한 속삭임이다.



#3. Dday+100일의 환희: 그리고 Re-Move 재도약


정년퇴직 후 100일이 지났다. Dday+100일을 맞이하고 있다. 감동이다. 달력에 특별한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축하 메시지를 기대한 날도 아니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마음 한 켠이 따뜻하고 다정하다. 창문을 열자 햇살은 여느 날과 같지만 이상하리 만치 깊고 따스했다. 바람도 어깨를 쓰다듬듯 가만 가만 귓가를 스치며 다가

왔다. 마치 누군가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다시 시작해봐요.”


Dday+100일,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전환점이다. 정년퇴직후의 Dday+10일째에는 나는 알람 없이 맞이한 아침이 어색했다. 그리고 이어진 Dday+30일째, 그리고 +50일째…. 이후에는 가슴 속 허전함과 싸우는 시간들 이었다. 회의나 일정표가 빠진 달력, 울리지 않는 전화,

비어 있는 서류철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Dday+100일 동안은 내 안에 깊게 고여 있던 쉼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숭고한 의식의 흐름이었다.


정년퇴직 후 Dday+의 날들이 채워지면서 일상은 조금

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매일 아침 감사로 하루를 시작

하고, 한 줄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 오후시간에는 시장

들러 먹거리 재료로 계절을 만끽하고, 미뤄 두었던 책을 펼치고, 낯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처음으로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모든 활동들이 'Re-Move', 다시 움직이는 삶의 씨앗이자 발아인 것이다.


퇴직은 결코, 끝이 아니다. 단지 내 삶에서의 역할과

관계의 구조가 바뀌는 사건일 뿐이다. 조직의 일부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는 것이다.


이제는 분명하다. 나는 그저 그렇게,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새롭게 나를 조율하는 중이다. 나는 이 시간을 ‘환희의 순간들’이라 부른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

하다는 걸, 남과의 비교보다 나 다운 길이 중요하다는

걸 요즘 새삼스럽게 배운다.


마음 속, 빙산의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이 가만

가만 들려주는 울림을 온 몸으로 느낀다. 나지막하게

읊조려 본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 다운 호흡을 품고 움직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가 믿고, 웃을 수 있는 것들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감사로 가득 채우고 싶다.”


이제 나는 과거의 습관을 과감히 지우고, 새롭게 나아

가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긴 침묵 속 온기를 느끼고, 익숙함을 떠나 새로움을 선택하는 용기를 연습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음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우렁찬 재도약의 선언을 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Dday+1,000일, 그리고 Dday+10,000 일을 맞이하며,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귀한 여정을 함께 할 동행이 생긴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

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 감히,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나의 삶을 Re-Move하고 있습니다.”



#4. 마흔 아홉 번의 토요일, 그 후


지금 현재, 나는 전문 심리상담사이자 코치다. 퇴직 전,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 의미치료학회에서 전문 심리상담사 자격을 취득했고, 한국코치협회에서 인증한 KPC(Korea Professional Coach) 코치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상담센터이자 나만의 아지트를 마련하여 인생 제2막을 열어가고 있다.


내가 꿈꾸는 선한 영향력을 이 세상에 건네기 위해,

나만의 서사를 오늘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늦게 코치

로서의 공부를 위해 대학원도 다녔다. 마흔 아홉 번의 토요일을 기꺼이 투자했다.


<대학원 동기들과 졸업여행>


대학원생이 되어 오리엔테이션을 거치고, 본격적인

수업을 받으면서 나는 좀 더 성장했다. 과연 성장에는

끝이 없었다.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코칭 전공을

마치고 졸업하면서 받아 든 석사 학위증에는 육신의

나이가 아닌 꿈을 꾸는 청춘으로서의 내 이름이 새겨

져 있었다.


나는 오늘도 ‘Re-Move’하는 마음으로 나의 길을

벅차게 걸어간다. 이제는 일과 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도, 더 깊이 있게 살아가는 용기도 조금씩 갖춰가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갓난아기일 때

부터 유년 시절 까지 가장 많이 성장한다”고. 그러나

오히려 나는 거기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사람은 꽃 중년의 시기에 더 많이 성장한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온기를 건네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인생 후반전이라는 연극의

막을 올리며, 매일을 나만의 참신한 실천으로 세상에

조금씩 기여하고 싶다. 그러므로 ‘Re-Move,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 단지 ‘바쁘게’가 아닌, ‘진심과 존중, 나눔, 그리고 희망을 담는 움직임’이다.


정년퇴직 이후에도 나는 다시 내 삶 속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고, 결과에 매달리는 대신 ‘삶의 방향을 바르게 가고 있는지’ 묻는 질문자가 되었다. 문득, 거울을 본다.

평온한 얼굴의 내가 거기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둥근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넨다.


“이제야 정말, 너 답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리고 이제는, 내 어깨를 두드리던 손길을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옮겨갈 시간이다.


“당신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내가 걸어온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다시 삶을 시작하는 등대의 불빛이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란다. 등대는 바다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저 제 자리에 서서 길을 찾는 이들에게 방향이 되어주고, 빛을 비추어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등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배우고, 매번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재도약의 선언으로 장식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다시 Re-Move 해보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속도로,
과거의 방식이 아닌, 지금의 감각으로,


누군가의 평가가 아닌, 나의 만족을 향해,
그리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and so on, 그리고…


또 계속 움직이자,

Re-Moving. ”


Fin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