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연전쟁터, 아비뇽에서 좋은 공연 찾는 법

[목화씨] 프랑스 예술축제 기행문

by artrotopia

새해를 맞이하여 몸으로 부딪히며 알게 된 꿀정보를 공개한다.

이 방식은 아비뇽을 떠나서 웬만한 해외 페스티벌에 다 유효한 전략일 거라 생각한다.

DSCF0953.JPG
DSCF0909.JPG
왼쪽) 아비뇽in 빌리지 내 공연책자 및 신문 등 | 오른쪽) 아비뇽off 빌리지 내 공연 리플랫 게시대


아비뇽축제는 공식축제인 아비뇽연극제가 있고 자유참가작으로 구성된 아비뇽off가 있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아비뇽 공식축제는 책자 하나로 선정된 공연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비뇽off는 공연 개수가 아주 많다. 아주 아주 아주 많다.


장르를 살펴보면 우선 공식축제인 페스티벌 아비뇽은 연극제이기 때문에 연극 장르가 가장 많았다. 즉 텍스트에 무게감이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소리다. 이것은 프랑스어를 못하는 외국인 관객에게는 장애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막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포르투갈 출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연극연출가 티아고 로드리게스가 2022년 아비뇽 공식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서비스다. 그는 아비뇽에는 여러 차례 초청되어 작품을 올린 이력이 있는데, 아비뇽 예술감독으로 부임 후 매해 외국어를 선정해 그 언어의 매력에 집중해보는 기획을 하고 있다. 나라가 아니라 언어를 선정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티아고 로드리게스가 부임한 이후부터는 (프랑스인 기준) 외국 작품이 무대에 오르니 전체 작품에 자막기를 설치해 아비뇽 축제가 프랑스만의 축제가 아닌 전세계인을 환영하는 태도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막이 뜨는 위치가 보통 무대 양 사이드 또는 무대 위이기 때문에 작품과 동시에 보기가 쉽진 않다. 한쪽에 달려있는 자막기 보다가 목이 너무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배려가 이제야 생겼다니 아주 놀라울 따름이다. 프랑스인들의 언어와 예술을 향한 고고한 자존심이 느껴진달까. 아비뇽이라는 명성에 비해 글로벌 축제라고 하기엔 너무 프랑스 내수용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부럽기도 했음...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공식 축제작은 영어자막을 제공하지만, off에 올라오는 작품들에는 자막따위 없다. 따라서 외국인 입장에서 좋은 작품을 찾기란 더더욱 어렵다. 영국 런던에서 극장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는 엘라도 나와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off에 보석같은 작품이 많은 건 알겠는데 접근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했다. 그 어려움은 역시 언어, 그녀도 프랑스어를 못 하기 때문이었는데, 친구에게 오프에서 좋은 작품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친구는 바로 너 프랑스어 할 줄 아냐고 물었다고 한다.(ㅋㅋ)


나도 프랑스어는 전혀 못하기 때문에 off 축제에서 볼 작품을 찾을 때는 텍스트 기반 작품 말고 무용, 서커스 장르 위주로 서치했다. 장르를 정해도 작품이 아주 많기 때문에 무엇을 봐야할 지 아주 어려운데, 이 때 필요한 것이 전략이다.

DSCF0904.JPG
DSCF0954.JPG

1. 언론을 활용하자.

아비뇽 축제는 언론도 관심이 아주 많기 때문에 축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면 공연 리뷰 및 추천하는 기사들이 여러개 나온다. 언론에서 언급된 작품을 고르면 실패확률이 조금은 줄어든다. 찾아볼 언론사는 르몽드(https://www.lemonde.fr/), 라 프로방스 (https://www.laprovence.com/ ), 라 떼라스(https://www.journal-laterrasse.fr/festival-avignon/) 정도가 있고 구글에 avignon festival recommende, selection, choice 같은 단어들로 검색하면 여러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요새는 크롬으로 바로 번역해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여러 기사에서 언급한 작품을 선택해보자.


IMG_94078360B8D5-1.jpeg
IMG_1DE77F73F312-1.jpeg

2. 역시 입소문! 사람을 활용하자.

언론도 좋지만 가장 추천하는 건 사람들과 대화를 해서 입소문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또다른 재미이자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판매사이트에선 best 카테고리를 꼭 만들어놓고 사람들도 그것을 애용한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공식 아비뇽 페스티벌, 아비뇽 off 모두 어플이 있다. 그런데 두 어플 모두 작품의 인기순위나 베스트 순으로 정렬같은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작품을 줄세우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순수하게 소비자 측면에서만 본다면 실패하고 싶지 않고 좋은 작품을 보고 싶은 건 누구나 갖는 욕심일텐데 축제 측에선 그런 기능은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관객들 간에 대화가 생겨나고 언론-작품-관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연을 보러 들어가기 전 잠시 기다릴 때 용기내서 물어보자. "오늘 공연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봤어?" "재밌는 거 있었어?" "공연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 추천해줄 수 있는 거 있어?" 물론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에 물어볼 것!


나는 이 방식으로 In 작품 하나, off 작품 두개 해서 총 3가지의 공연을 봤다. in 작품은 Léviathan. 이 공연은 어플로는 일찌감치 매진이라서 현장에서 대기해서 공연 직전에 잔여석만큼 티켓을 파는 줄을 서서 티켓을 구했다. 무려 2번 시도만에 성공했다. 두 번 다 2시간 이상씩 기다렸다!!!! 공연장 앞에는 보통 2~3시간 전부터 이렇게 현장구매를 위해 줄을 서는데 보통 15~17번까지는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 일반 관객으로 3시간 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공연 직전에 전문가(아비뇽 공식 페스티벌에 전문가로 인증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언론인과 극장 관계자, 나라별 문화부 공무원들이다) 로 들어가서 티켓 받아 앉는 사람들을 보니 어찌나 얄밉던지. 전문가로 등록되어 있어도 공연 10분 전에는 티켓을 마감하고 현장에서 줄 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공연 지연도 줄이고 관객도 즐거운 페스티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이 작품에 이렇게 노력을 가한 이유는 단 하나, 대화를 나누다가 이 작품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냐고 했더니 연출가가 유명한 사람이라며, 모두들 보고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보게 되었다. off 작품으로는 go! train blue라는 기획극장에서 하는 작품으로 러닝타임 30분의 아주 깔끔한 무용 공연이었다. 다른 하나는 또다른 기획극장 manufactura에서 하는 작품으로 서커스 작품을 봤다. 단순히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믿고 추천해주고 이러한 입소문이 언론에 작용하고 다시 작품의 평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DSCF0906.JPG
DSCF0908.JPG

아비뇽off는 viliege du off라고 해서 오프빌리지에서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 인포메이션데스크, 티켓부스, 책방, 공용화장실을 두고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선 아티스트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공연을 홍보하기도 하고 서로 무슨 공연을 봤는지 이야기도 나누면서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작은 무대도 있는데 여기선 오픈 포럼도 열리고 밤11시부터는 클럽으로 바뀌어 즐길 수 있다. 일단 축제에 처음 도착하면 오프 빌리지에 가서 공연이 전부 담긴 책을 받아서 보면 축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아참 제일 중요한 축제기념품도 여기서 판다.


DSCF1028.JPG

3.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말자!

발레보던 사람이 마당극 보지 않고, 뮤지컬 보는 사람이 오케스트라 잘 안 본다. 예술도 취향이라서 자기가 경험하고 즐기는 장르 외에는 잘 시도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해외 페스티벌을 간다면 여러 장르를 도전해보자! 이번 기회에 취향을 확장해보자! 실패해도 괜찮다. 경험이니까! 끌림대로 선택해보는 것도 아주 추천한다.


난 여기서 처음으로 4시간짜리 연극을 봤다! 내 인생 최고 러닝타임!!!!!




우리나라의 창작극을 볼 때면 만족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분명 홍보물의 문구는 끌렸고 이미지는 세련됐는데 어쩐지 모르게 속은 느낌이 들어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우리나라에서 비평이라는 중간단계의 전문가 리뷰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반인과 매니아층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비평, 언론이 존재하고 언론의 글은 관객의 말로부터 시작된다면, 기획의도가 아티스트에서 그치지 않고 무대 밖 관객석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좋은 관객이 되는 법, 관객의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