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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우리가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라면

[예술대화] <Let's go to my star> 작연출가 최아련

by artrotopia

2024년 12월 21일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에서 열린 연극 <Let's go to my star> 시즌3(이하 <렛츠고>)를 관람했습니다. 작년에 시즌2를 관람했는데 진짜로 돌아온 시즌3가 반가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한 작품 올리는 것도 어려운데 시리즈를 완성하다니 작연출가+출연까지 해낸 최아련을 만나 시즌 3까지 시리즈를 마친 소감을 듣고 싶었습니다. 무작정 메일로 연락을 해 인터뷰를 요청하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 글은 12월 26일 합정역 카페 <새검정>에서 이뤄진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about. <Let's go to my star>

90년대생 창작집단 PROJECT NEW PLENET(최아련, 박두환, 변준섭)이 함께 모여 <Let's go to my star>를 제작했다. 본 작품은 유토피아를 실험하는 3부작 연극이다.

지난 이야기

헬 행성에서 온 롸롸, 두두, 섭섭은 1977년 보이저호의 골든레코드에 담긴 지구의 소리에 매료되어 한국을 방문한다. 이들은 10년간 인간을 탐험하며 사랑을 느꼈지만,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고민한 끝에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새 행성 '제네시스'를 선물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성장 신화를 꿈꾸며 가상현실 '베레시트'에 몰두한다. 베레시트는 기술 발전으로 경제와 사회에 활력을 주는 듯했으나, 인간소외와 착취를 심화시켜 결국 붕괴한다. 이에 속상한 롸두섭은 우주로 산책을 떠나며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을 인정해야만 진정한 공존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이상적인 돌봄 사회 '케어로토피아'를 체험하며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롸두섭은 다시 지구로 돌아와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여정을 시작한다.


1. 연극에서 시리즈물 진짜 생소하다!

<렛츠고> 시즌3을 관람한 데에는 뱉은 말을 지키는 책임감을 보여준 모습이 한몫했다. 시즌 2를 대학로에서 공연이 끝날 때 "시즌 3으로 돌아올게!"하고 끝나더니 진짜 돌아왔다. 보통 연극을 제작할 때는 시리즈물로 계획하기보다는 초연을 한 뒤 차기작을 고민할 때 지난 초연작에 이어서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며 시리즈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렛츠고>는 아니었다. 그 대담한 책임감이 놀라워 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왜 연극을 시리즈로 제작했는지?

최아련은 연극은 시리즈로 제작하는 경우가 적어서 선택했다고 한다.(간단) 그리고 중요한 이유를 덧붙였다. 세계관을 만드는 게 재밌다며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연극에서도 세계관을 만들고 같은 캐릭터가 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연극을 시리즈로 만들 때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제목을 선정하는 일도 아주 중요했을 것 같아서 제목과 세계관을 만들게 된 방식과 계기를 물었다.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
가사 中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여기서 alien은 외계인이 아니라 외국인, 이방인을 뜻한다. 아련은 영국에서 연극을 공부하면서 대한민국을 마치 외국인처럼, 더 나아가 지구에 놀러 온 외계인처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당연했던 것에 물음을 가졌던 것. 그것이 작품의 시작이었다. 관습적으로 봤던 것들이 생경하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내 나라를 외계인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으니 외계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외계인 아니고 이정현 같은 외계인(ㅋㅋ) 글을 읽는 여러분의 연령대는 모르겠지만 90년대 생 중반까지는 이정현의 와 무대를 기억하실 것이다. 다들 한 번쯤은 새끼손가락에 꼬깔콘 꼽고 따라 해보셨을 텐데, 이정현의 1집 <Let's go to my star> 중 <와>에서 이정현은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 같은 모습이다. 평소 이정현을 비롯해 엄정화 등 디바를 좋아했던 아련은 이정현 같은 외계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남자친구들이 백댄서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디바 1명에 브이맨 2명을 꿈꾸며 초기 이미지를 그렸다. (작품 제목이 Let's go to my star인 이유도 이정현 1집 제목이라는 특급정보 전달 드리며..)


함께할 동료를 고민하던 중 춤추는 걸 좋아하는 두두(박두환), 섭섭(변준섭)에게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모이자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련의 머릿속에 시놉시스가 스쳤다. '우리는 헬족이고 헬행성에서 온 거지... 제네시스라는 새 행성을 만들 거고 이건 유토피아물이다..' 머릿속에 마구 떠오른 헬족의 설정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 집에 왜 있는지 모를 핑크색, 노란색, 파란색 가발을 챙겨가서 각자 가발을 선택하고 그것이 시그니처 색깔이 되었고 시즌1의 오프닝곡인 마돈나의 Open your hear 곡을 틀며 춤을 추며 장면을 만들어갔다. 이후 리서치 하면서 공연의 내용에 살을 붙여갔다.


세계관을 먼저 설정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추려가는 작업을 반복하며 시리즈를 만들어온 것!


2. 시즌별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시리즈를 만들어온 과정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우선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았기 때문에 리서치 과정을 거치면서 이야기를 골라내는 작업을 했을 텐데 각 시즌별로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즌1은 효율, 생산성 중시로 외면받는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쓸모없고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치부되는 가치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지에 대해 말한다. 시즌 1의 주제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2021년 당시 청년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감각을 많이 하던 때였다. 자살률은 높고 출생률은 낮고 여전히 헬조선이라고 말하던 때였다. 청년으로서 이 나라에 존재하는 것이 국가의 생산력에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부속품이 된 것만 같은 사회, 옆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진 것이다.


아련은 코로나 시기에 잠시 몇 개월간 일반 회사를 다녔는데 그때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회사가 원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내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본인을 바라보는 것이 쉬운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예술은, 연극은 이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다고 많이들 하는데, 그렇다면 질문하게 된다. 돈을 못 번다는 것은 쓸모없는 것일까?


돈과 쓸모는 같은 것인가?


아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믿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예술은 사람을 변화하고 결국 사회를 바꾼다. 예술은 돈을 벌지 않지만, 세상을 가꾸는 일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직업 예술가로 증명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당장하고 있는 공연이 없을 때 본인을 예술가로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내가 당장 돈을 벌지 않고 국가에 기여하는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가치가 매겨지는 그 사회가 맞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롸두섭은 제네시스라는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현실과 정반대의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오만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세상을 꿈이라도 꿔보자는 것이었다.


시즌2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를 논하기 시작했다.


→ 다음 편에 계속


[2편] 예술은 세상을 돌보는 일이잖아

https://brunch.co.kr/@esther23/11

[3편] 연극이 끝난 뒤 세상에 남은 것

https://brunch.co.kr/@esther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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