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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연극이 끝난 뒤 세상에 남은 것

[예술대화] < Let's go to my star> 작연출가 최아련

by artrotopia

이 글은 12월 26일 합정역 카페 <새검정>에서 이뤄진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3편까지 올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1편에선 연극에 대한 기획의도와 창작배경을 2편에선 작품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글이 많지만 대화를 풀어 작성해서 금방 읽힙니다. 예술 전공자들의 대화가 궁금하다면 모두 읽어보세요 재밌으실 거예요.

[1편] 우리가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라면 https://brunch.co.kr/@esther23/10

[2편] 예술은 세상을 돌보는 일이잖 https://brunch.co.kr/@esther23/11



about. <Let's go to my star>

90년대생 창작집단 PROJECT NEW PLENET(최아련, 박두환, 변준섭)이 함께 모여 <Let's go to my star>를 제작했다. 본 작품은 유토피아를 실험하는 3부작 연극이다.


4. 연극이 정치적이야?

Q1. 베르톨트 브레히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독일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시인으로서 20세기 연극과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대표작으로는 『서푼짜리 오페라』,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이 있으며, 그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소외효과'를 통해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Q2. 서사극?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관객이 극 중 사건에 몰입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연극 방식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사건과 캐릭터를 낯설게 보이게 하는 소외효과를 활용하여 관객이 감정적 동일시를 피하고 이성적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극은 독립된 장면들로 구성되어 각 장면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강조하며, 무대는 최소한의 장치로 사실성을 배제하였다. 또한 노래와 해설을 삽입하여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며 변화를 촉구하였다.


개인적으론 서사극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영원히 반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중요한 게 내가 반대한다고 전 세계 연극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마음 놓고 의견을 풀어본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관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관객은 왜 공연을 보러 가는가? 예술을 왜 즐기는가? 가장 큰 이유는 오락성이다. 극장에 가는 이유는 일상 속 즐거움 때문임을 우선 알아야 한다. 그런데 서사극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난 뒤 드는 내 감정은 반발심이었다. '?? 네가 뭔데 저를 가르치고 조종하려 드시죠??' 퍼포먼스 안에서 감상을 위해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공연을 보는 주요 목적과 전혀 상반된 목적에 심지어 공연을 본 뒤 극의 의도에 맞게 무언가를 깨닫고 느껴야 하는 것이 의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졌다. 관객 위에 올라선 영원한 스승처럼 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연극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아련은 연극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사회에서 버려지고 외면당한 대상에 집중하고 그것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연극에서 많다고 했다. 물론 모든 연극이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며 균형을 잘 이루면 괜찮다며 그 밸런스에 맞게 모두 필요하다고 했다. 연극은 삶과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회를 말한다는 것인데 결국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련은 이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계몽적인 형태가 아니라 놀이적으로 관객이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연극의 오락성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극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연극이 억울하지 않을까 상상했다. '나(연극) 완전 재기 발랄한데 왜 이렇게만 날 쓰는 거야~' 하고(ㅋㅋ) 연극이 억울하지 않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련의 답을 듣고 나니 극 안에서 담론은 진지하지만 재밌게 풀어낸 장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 질문했다.


시즌2에서 게임 안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는데 그 장면이 자본주의, 성장주의에 대한 은유를 담은 게임이라고 했다. 짧은 게임 장면으로 금융 자본주의와 은행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를 표현했다니 분명 관객으로 볼 때는 이렇게 큰 담론을 담고 있는지 몰랐다. 이 장면을 위해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공부를 했는 줄은 더 몰랐다. 아련은 관객에게 강의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은 진지하지만 표현은 재밌게 무조건 키치 하게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작품 개발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롸두섭은 24년 12월 20-22일에 올라간 시즌3을 23년 8월부터 리서치를 시작했다. 거의 만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리서치와 쇼케이스를 해온 만큼 고민의 깊이도 메시지의 명확도도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작품 개발 과정은 시즌3 리플릿에서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간단하게 적혀있지만 단계마다 활동의 밀도가 높았다. 돌봄 공동체를 직접 방문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어 공동체를 방문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5. 한국에 돌봄 유토피아가 있다고..?


롸두섭은 도봉산자락에 있는 '오늘공동체'를 탐방했다. 오늘공동체는 총 4개의 '부족'으로 이뤄진 유연한 대가족 개념의 공동체로, 100여 명이 넘는 공동체원이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돌보고 있다. 공동생활과 공동육아를 통해 삶의 실질적인 고민을 덜어내는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아련은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충격과 희망을 동시에 받았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뜯어 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희망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고.. 주택에 120명 정도가 모여 사는데, 어린아이는 엄마, 아빠 하고만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자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이 공동체에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공동체 아이들은 어른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고 독립된 존재로서 성장한다. 롸두섭은 중고등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대화의 깊이가 달랐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으며 자랐기에 삶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자랐을 것이다.


오늘공동체 안에는 대안학교 '안골마을학교'가 있다. 학교에선 '행복'을 가르친다. 행복을 가르친다니, 충격이었는데, 이미 독일의 초등학교에선 행복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게 꽤나 큰 충격이었어서 집에 돌아가서 관련 내용을 더 찾아봤다.


화면 캡처 2025-01-07 162909.png [전재학 칼럼] 교육선진국에서 배우는 ‘행복교육’의 실제 http://www.edp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44


독일에선 모든 학교에서 성적으로 줄 세우기 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모든 선행교육을 없애고 무상교육을 폭넓게 실시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의 교육은 평등한가? 절대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온다며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게 공부라는 말도 사실 옛말이다. 노력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가진 것과 제공받는 것은 모두 다르다. 집 앞 10분 거리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대형학원에 다닌 아이와 인근에 학원이 없고 형편이 어려워 무료 인터넷 강의밖에 들을 수 없는 아이의 공부 과정은 현저히 다를 것이다. 이젠 아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하는 교육조차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국영수, 이젠 코딩만을 배운다.


독일에 행복교과목이 있다는 것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교육을 통해 내 삶에서 행복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 지를 찾은 사람의 삶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얼마나 많은 질적 차이가 있을까! 실제로 난 이것을 알고 남편과 독일 이민을 한동안 검색했었다... 구텐탁...


6. 소감이요? 시원섭섭해요.


외계인 나오는 키치키치 연극에서 자본주의, 돌봄, 행복, 교육까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나는 그저 연극을 시리즈로 만든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심지어 그 시리즈를 잘 마무리한 것에 박수를 치고 싶어서 만남을 요청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흥미로웠던 대화를 마무리하며 시리즈를 마무리 한 소감을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시원섭섭하다." 아주 시원하고 아주 섭섭하다고 했다. 시즌1을 21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시리즈 마무리까지 한 4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며 이번 공연을 하며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끝난 것 같은 기분도 안 든다며. 맞지 맞지. 연애를 해도 4년 차 애인이면 하루 만에 헤어지기 쉽지 않지.. 개인적으로도 롸두섭과 너무 친해져 버린 기분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인데 이 창작자들을 그냥 응원하게 되었다. 다음엔 무슨 공연하려나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여럿인지 변준섭(섭섭이) 배우의 다른 작품을 보고 한 관객이 "섭섭이...?"라고 말을 걸었다고(ㅋㅋ)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린 롸두섭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마음 한 구석 씁쓸했던 연극 <Let's go to my star>. 연극은 끝이 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무엇 하나 바뀐 게 없다. 예술이 뭔 힘이 있겠냐고, 연극하는 게 뭔 도움이 되겠냐고 할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사람과 감정을 살피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이들의 창작을 응원한다.


연극(예술)은 세상을 돌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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