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일상]<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연출 이지형 작 김연재
최근 아주 인상 깊은 문장을 들었다. 외로움은 수동적이고 고독은 능동적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며칠간 수동적인 외로움을 능동적 고독으로 바꾸려 갖은 애를 썼다.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쓰며 하루를 설계했다. 너는 오늘 하루 할 일이 있으니 쓸모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대화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외로운 이 하루를 어떻게 무슨 일들로 어떤 것으로 채워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치가 내게 주어짐에 감사해야 한다며 지금 느껴지는 고통을 외면했다. 상투적이지만 심장에 구멍이 난 듯 그 어떤 것으로도 나는 채워지지 않았고 파도처럼 매번 새롭게 그리고 끝없이 몰려오는 허무를 마주하느라 숨이 찼다. 잔인하게 밤이 오면 다시 일기를 쓰며 오늘 한 일을 되돌아보고 내 안에 넣은 것을 곱씹으며 그럼에도 잘 견뎠다며 내일이면 쌀 한 톨만큼이라도 가벼워지길 희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고독에 나는 실패했다. 외로움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그냥 흐른다. 매 순간 눈물이 차올라 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언제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너도 나를 떠나는구나. 그 무엇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마르타가 정말 부럽다. 영원한 안식보단 온전히 그를 바라보기 위해 뒷걸음질 칠만큼 사랑하는 그의 곁에 남을 수 있기 때문에.
2025 창작산실 연극부문 선정작 <기존의 인형들 : 인형의 텍스트>는 인형이 텍스트를 만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각 인형은 3명의 작가를 만나 한 공연에서 3개의 단막극을 볼 수 있었다. 보통은 텍스트가 있고 그에 맞는 소품으로써 인형이 제작되는데 반해, 인형이 이미 있고 그것이 텍스트를 만난다는 점에서 기획이 흥미로웠다. 3개의 단막극 중 가장 마지막 작품 <한쪽 발은 무덤을 딛고 나는 서 있네>에 처음부터 매료당했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기에 나는 내 맘대로 이 작품을 해석할 것이다.
마치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요정처럼 홀연히 나타나 순식간에 아우라를 바꾸고 텍스트의 세계를 이미지의 세계로 변화시킨 배우의 압도적인 기량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눈앞에서 그를 보고 있는데도 다시 보고 싶었다. 배우는 객석이 없는 블랙박스 무대 전체를 사용했다. 관객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결정된 동선을 혹여 침범했을까 배우와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배우도 앞이 보인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그는 관객의 사이사이를 밟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배우가 내 옆을, 내 앞을 지나갈 때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이 서로 위치를 바꾸는 행위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압도적인 배우의 연기에 지지 않는 텍스트에도 한 번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훔쳐가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마르타는 어느 날 까마귀를 만나 지하세계로 떠나면 당신이 목소리만 듣고 사랑에 빠져버린 그를 만날 수 있다며 떠나라고 한다. 그러나 떠나면 내일 당신은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아침 동이 트기 전까지 나오지 못하면 영원한 안식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사랑한 그를 만나기 위해 마르타는 떠난다. 그가 어떤 모습일지 젊은 청년일지, 나이 든 노인일지, 중년의 여성일지 가늠조차 못 하지만 마르타는 떠난다. 목소리를 찾아 떠나며 마르타는 자신의 생을 돌아본다. 마침내 마르타는 목소리만 듣고 사랑에 빠져버린 라자로를 만나고 그의 곁에서 평생 머물길 결정한다. 마르타는 말한다. 그리고 앙상히 누워있는 라자로 옆에 같은 모습으로 눕는다. 그들은 이제 평생 함께 할 것이다.
마르타는 단란한 가정집을 나설 때 주저앉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반대다. 집 안에서 주저앉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때때로는 노력이 충분치 않다. 요즘은 매일 주저앉아 있다. 다 끊고 도망치고 숨고 달아나버리면 숨이 좀 트일까? 매일을 울다 보면 내일은 눈물이 덜 나오진 않을까.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내일은 낫겠지 하며 희망을 끊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2025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주관 조음기관 |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공동기획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
Creative team
연출/구성 이지형 | 작가 안정민 신효진 김연재 | 배우 박서현 정윤진 김별 배선희 |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문수빈 | 드라마투르그 김지혜 | 접근성 기획 성다인 | 액팅코치 단막극 a, b 황혜란 | 조연출 김조이혜수 정나금 | 무대감독 김동영 | 무대디자인 신승렬 | 조명디자인 김효민 | 음향 지미세르 |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 기록영상 최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