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일상] 얼굴 : 은밀하게 하지만 공평하게 흐른 시간이 낸 흔적
살아생전 내가 남긴 마지막 얼굴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환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화내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푸하하!" 하고 터뜨리던 웃음소리를 기억해 주길 원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깔깔 웃던 모습이 오랫동안 그들의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얼굴에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
‘얼굴에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는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에 새겨지는 흔적들은 단순한 주름이 아니다. 그것은 은밀하게 하지만 공평하게 흐른 시간이 만들어낸 길이다. 젊을 때는 화를 자주 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걸어온 길의 흔적일 것이다. 반대로, 늘 유쾌한 마음으로 따뜻한 미소를 지어온 사람이라면, 그 얼굴에는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얼굴로 늙어가고 있을까? 내 얼굴은 어떤 삶을 이야기할까? 지금 내 얼굴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까? 미소를 짓고 있는가, 아니면 무거운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에 혀는 얼어버리고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부른다.
우리가 얼굴로 기억된다면
새해를 맞이하며 다짐한다. 내 얼굴에 책임을 지겠다고. 한 번 더 미소 지으며 살아가겠다고.
어쩌면 내 삶을 기록하는 것은 일기장이 아니라, 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만사는 쉽게 가는 법이 없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무너지고, 억울한 일도 생기고,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세상일 호사다마라고 되뇌며 그 순간에도 나는 미소를 짓고 싶다. 마음을 다잡고,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면 욕심일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삶이라면, 나는 그 속에서 최대한 많은 미소를 남기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내 장례식 사진을 보며 ‘아, 이 사람은 정말 잘 웃던 사람이었지’라고 말해주었으면 한다.
늘 매 순간 연습한다. 타인의 감정을 해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기에 내가 저 사람의 기분이 나빴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하고 싶은 건지, 불합리한 상황에서 변화를 어필하기 위해 말하고 싶은 건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연습. 힘든 순간에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그리고 타인의 얼굴에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 얼굴을 만들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다운 얼굴을 간직할 수 있길.
우리는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