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함, 쓸모없음. 예술의 다른 이름
지난밤 대통령(아직은_24.12.4)의 계엄령은 내 업인 예술의 쓸모를 고민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문화예술경영론 첫 수업날 교수님은 우리에게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질문하셨다. 교수님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맞다. 쓸모없다. 예술은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 하고 쓰지도 못한다. 없다고 삶을 이어가는데 문제없고 있다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무에서 유. 어쩌면 있던 것들의 조합쯤인 예술은 쓸모없다. 심지어 난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에 필요한 것이 과학이냐 예술이냐로 같은 반 친구랑 토론도 했었는데, 그때 과학 편을 들던 친구가 말하길 돈을 벌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예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주장을 했었다.
맞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돈을 버는 것과 전혀 연관이 없는 쓸모없음의 대명사. 무용한 것이 예술이다.
하지만 어젯밤 뉴스 중 나를 가장 겁먹게 한 것은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출판이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부분이 가장 두려웠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이 나라의 검열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가장 무서웠다. 출판 즉 문학도 예술의 한 장르다. 출판이 통제받는다는 것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보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그 감정과 감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그러나 어제.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이것은 왜 무서운 걸까. 나는 마치 입은 있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무서웠다. 돈 벌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아무 쓸모없는 예술은 우리 사회의 지금을 바라보게 해 주고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연대하게 한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를 우리로 인식하게 하는 것
내 우주를 벗어나 너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
그의 아픔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
예술이 아무리 쓸모없는 것이어도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이 안 되는 것일지라도 뜻 없는 놀이나 오락이라고 치부되더라도 예술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이다.
결국 예술은 꼭 반드시 절대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 입술로 말하기 위해서 있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이 사라진 6시간.
되찾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깨어 있어야 할 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