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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Apr 03. 2021

부끄럽지만, 오십대 부린이입니다

"엄마, 서진이는 집에 수영장도 있고 메이드도 있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딸아이가 키 크고 공부 잘하는 같은 반 친구가 엄청 부자라고 알려줬다.     

 

"서진이 사는 아파트에 수영장 없는데... 아마 필리핀에 살 때 수영장이랑 메이드 있었나보네. 필리핀은 물가가 훨씬 싸거든. 땡글아, 우리 집도 부자야. 서초구에 살면서 집이 두 채고 차도 두 대나 있쟎아~~"      


딸내미 기 안 죽이려고 한껏 웃으며 얘기했지만, 사실 우리가 중산층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부부 연봉을 합치면 적지 않았고, 서울은 아니어도 경기도에 아파트 한 채 있고 작업실도 하나 있어 주말 별장처럼 쓰고 있지 않은가. 서울에 전세 보증금도 깔고 있고. 그런데, 언제부터 소고기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진걸까? 백화점 쇼핑은 안 간 지 오래되었고, 아이와 딸기 뷔페 가자 해 놓고 가격에 놀라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일 년에 한번은 해외 여행을 다니며 놀고,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서 그런건가.

  

5학년쯤 되니 딸 아이는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것 같다. 엄마가 자주 구워주던 등심 스테이크가 식탁에서 사라지고, 삼겹살과 목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달에 5천 원씩 주며 용돈 기입장을 쓰라하고,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사다 주며 읽으라고 했다. 주택담보대출 빨리 갚아야 하니 전기 좀 아껴쓰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그렇게 엄마는 짠순이가 되어갔다.       


Source : pixabay


13년 전, 남편 소유의 경기도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몇 년 안에 근방에 철도가 들어오고 큰 도로가 개통되기 때문에 주거 환경이 좋아지고 집값이 오를거라고 했다. 부동산이 일본처럼 하락할 것이라고도 했다. 언론에서 한참 부동산 하락론을 떠들어대던 때인가보다. 경제 뉴스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재테크에 무심했던 나는 남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콩깍지가 아직 벗겨지지 않은 신혼 아니던가! 아파트 근처의 산길을 산책하고 주변 텃밭을 둘러보는 목가적 낭만이 싱그러웠다.     


임신을 하고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해 10년 넘게 강남에 살면서도 부동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분양, 송파 헬리오 시티 분양, 잠실 주공5단지 재건축 승인 등 뜨겁게 사람들 입에 오르던 부동산 뉴스에도 어쩜 그리 무심했는지...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로 여기고 그래 봤자 월급쟁이인줄도 모르고 회사에서 뼈를 갈아 넣으며 일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 탈출을 이끈 모세처럼, ‘회사를 구하라’는 미션을 받은 사명자 마인드로 회사를 다녔더랬다.  

    

그러다 3년 전에 정신적인 은퇴를 경험하게 되었다. 사장 지시에 불복하고 저항하다 팽을 당한 것이다. 매일 가열차게 일하다 뒷방에 머물게 되니, 내 인생이 통째로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챙기고 주변을 둘러보니, 비로소 달라진 세상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TV에서는 <구해줘 홈트> 같은 좋은 집 찾기 열풍이 퍼져 있었고,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자로 40대에 은퇴하려는 파이어족들도 눈에 띄었다. 젊은 친구들이 땡퇴근해서 투잡을 뛰는 마음도 헤아리게 되었다.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20년 넘게 월급을 받았고, 남편 수입까지 합치면 충분히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려야 할 텐데  오십이 넘어 찾아온 이 빈곤감은 뭐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나는 어쩜 이렇게 돈을 무시하고 살아온 걸까?      


돌이켜 보면 나의 성장배경 자체가 돈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목회자 사택에서 줄곧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청약통장이나 보증금 같은 얘기를 나누거나, 돈 때문에 다투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중학교 때부터 용돈을 받으면 10분의 1은 십일조 헌금을 냈고, 부모님께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우리 엄마의 경제 교육이었다. 이런 신앙 교육을 통해 나는, 이 땅에서 인간은 나그네이며 ‘땅에서 썩어질 것을 위해 심지 말고 영원히 썩어지지 아니할 것을 심어야 한다'는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집을 꼭 사야 한다'라는 여느 가정의 목표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직장생활 20년 동안 월급의 10분의 1은 하나님께, 또 다른 10분의 1은 부모님께 따박 따박 드렸다. 엄마는 내가 드린 부모님 십일조로 해외선교 회비를 넉넉히 내는 걸 기뻐하셨다. 내 이름으로 보험도 들고 결혼 자금용 적금도 부으셨시만, 청약저축은 없었다. 집을 꼭 사야 한다는 당부도 없었다.      


Source : pixabay



열심히 일하며 살았는데,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지울 수가 없다. 통계로는 중위소득수준 위에 있지만  체감도는 그 아래에 있다. 남편이 18년간 보유했으나 1억도 채 오르지 않은 못난이 아파트를 몇 달 전에 팔고 무주택자가 되었다. 작년부터 미치광이처럼 널 띈 집값을 보며 속 시끄러워 잠 못 드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읽어 내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니 어쩌겠나. 영혼과 육체의 균형을 잡지 못한 내 잘못이지, 신께서 나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명령한 건 아니쟎은가.


후회와 자책으로 수많은 날을 보낸 후에 비로소 마음을 정리했다.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더우기 크게 돈 걱정 없이 살았다는 건, 그동안 풍족하게 살았다는 반증이니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는 돈 걱정으로 소주를 들이키던 시간에, 나는 사명감에 취해 야근을 하지 않았던가. 내가 크로아티아로 발트 3국으로 여행다니는 동안에, 누군가는 발품 팔아 임장다니며 부동산 투자에 힘쓰지 않았겠는가. 삶의 목적이 달랐고 시간을 다르게 쓴 것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돈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돈을 잘 벌고 관리하고 쓰는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5년 후면 임금피크제 들어갈 나이에,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종잣돈 모으며 부동산 공부해서 똘똘한 집 하나 장만해야하지 않겠나. 그렇게, 내집 마련의 목표를 세웠다. 50대 중반에 비로소...


딸, 사실은 우리 집 부자 아냐.

엄마가 거짓말해서 미안해.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대.

그래서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려구, 부동산 공부.

엄마, 응원해 줄꺼지?                 


Source : pixabay


Source of front image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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