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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im Aug 21. 2020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거짓말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p.44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p. 44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의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주영의 선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 고민 없는 아둔한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명확한 목표 의식의 결과였다.


P. 248

그렇게 푹 자고 깨어나면, 따뜻한 바다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산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수영을 하고, 그늘에서 몸을 말렸다. 어깨에 입맞출 때 짭짤한 소금기가 느껴졌다. 커다란 오렌지 사탕 같은 태양이 지는 시간에 입안에 남을 소금기에 끌려 데킬라를 희석시킨 칵테일을 마시러 갔다. 밤늦게 돌아가며 키스하면, 연인의 입술 사이에 우주가 있었다.


p. 248

돌아오고도 한참 동안,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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