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운전 일지 #2
엘에이에는 매일 마른 공기에 녹아드는 그 특유의 빛이 있다.
스모그로 표현되기도 하고, 사막 먼지로 표현되기도 하는 얇은 베일을 뚫고 흩뿌려진 듯한 빛, 그 특유의 빛을 전형적인 엘에이의 빛이라고 부른다.
110 고속도로 북쪽 방향을 타고 출근길에 오르면, 낮게 펼쳐진 도시를 성곽처럼 둘러싼 산가브리엘 산맥과 산타모니카 산맥이 갓 오른 햇빛을 여름 이불처럼 덮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왼쪽으로 할리우드 사인이 산 중턱에 오래된 비석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 멀리서도 꽤 두드러져 보인다. 산맥을 향해 이어지는 자동차들의 행렬에는 아스라한 빛과는 상반된 뚜렷한 무심함이 있다. 이 모든 그림이 나의 운전대 너머 차창에 담겼음을 새삼 깨달을 때, 묘한 감격을 느낀다.
오레곤에서 1년에 9개월가량 느낄 수 있는 촉촉한 비 냄새에 익숙했던 남편과 나는 주변을 하루 종일 둘러쌓는 마른 햇빛을 많이 싫어했었다. 가끔은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까지도 잊게 하는 지겨운 빛 같았다.
엘에이의 빛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그 빛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건, 부끄럽지만 영화나 사진을 통해 그 익숙한 이미지를 새롭게 보았을 때였다. 내가 저런 곳에 살고 있다고? 저 왠지 모르게 슬프고 추하지만 아름다운 도시에서? 그 빛에 감 쌓인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에게서는 오묘한 슬픔과 드라마틱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엘에이는 저물어버린 화려함 속에서 질 낮은 예술품이 된 듯한 황량한 도시이지만, 언제나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단계를 시작하러 오는 미국의 가장 큰 대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고유한 빛 때문에 영화 산업 초기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이 곳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걸 보면, 이 빛에 대한 나의 느낌이 마냥 허튼 감동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죽하면 The New Yorker 잡지의 칼럼니스트 로렌스 웨스츨러는 1994년에 "L.A. Glows"라는 에세이에 엘에이가 가진 뿌옇고 부드러운 빛(그중에서도 뉴스에 생중계되었던 OJ 심슨의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고속도로를 비추던 빛과 석양)에 대한 그리움과 찬양, 그리고 그런 빛에 매료되었던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그 빛의 과학적 원인(스모오그...)을 연구한 칼텍의 과학자, OJ 심슨의 추격 장면을 생중계했던 헬리콥터의 파일럿, 매일 엘에이의 석양을 가장 좋은 전망대에서 보며 야구 경기 중계를 하는 엘에이 다저스 구장의 전속 앵커가 생각한 이 빛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
퇴근을 하는 차들은 출근 때보다 조금 더 거칠게 운전을 한다. 길고 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로컬 신호에 멈춰 섰을 때, 그제야 한 숨 돌리고 신호등 뒤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을 알아본다. 낮동안 엘에이를 덮고 있던 희미한 양막은 노랗고 파란 하늘 위에 선홍빛 구름과 비행기의 흔적들을 펼쳐 보이며 장렬히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