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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스페인 (5)

현실과 몽환 사이 in 바르셀로네타

by 오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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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안 환승로에서 검은색 회색 줄무늬 비니를 쓴 청년이 파란 낚시 의자에 앉아 스페인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앞에 놓인 기타 케이스에는 은색 동색 동전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줄을 튕겨 생기는 날카로운 음과 기타 통을 흐르고 나오는 부드러운 선율이 합쳐진 것이 우여곡절 많은 우리의 여행을 닮았다.

“언니무빙 워크 타지 말고 그냥 걸어서 천천히 갈래?”
“그래..” 호스텔에서 제공한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똥똥해진 배를 두들기며 말했다.


워낙 긴 환승로여서 양 옆에 무빙 워크가 있었는데 정말 바쁜 몇 사람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긴 길을 천천히 걸어 가고 있었다. 스페인 기타 소리와 함께 하자니 그 길 또한 짧게 느껴졌다. 환승로 안 사람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기타 줄 위를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음 하나 하나가 몸을 스칠 수 있도록..

가우디공원으로 산책 가는 길, 기분이 좋다.


가우디공원으로 가는 길은 웬일인지 낯이 익었다.

“수영아, 우리 이 길 와본 거 같지 않냐?”
“맞아 맞아 언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길, 진짜신림동 느낌 난다! 그렇지?”
콘크리트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가우디 공원으로 가는 길은 신림동 고시 촌을 떠올리게 했다.

15분을 넘게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자니 이미 체력은 바닥나고 더위 타는 개처럼 헥헥거렸다. 이게다 어제 우리 방에서 잔 술 취한 아저씨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이다. 그 아저씨 때문에 눈을 뜬 채로 잠든 것 같다. 금붕어는 눈꺼풀이 없어서 그렇다 치지만 나는 눈꺼풀에 쌍꺼풀까지 있는데 눈뜨고 잠자게 하다니…… 수면 방해죄로 고소하고 싶어.. 아저씨 위 침대에서 잤는데도 아침 7시까지 7시간 꽉 차게 잔 수영이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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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가 말하는 스위스에서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들으면서 10분 정도 걸었더니 어느새 가우디 공원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사실 정문은 별거 없었다. 도대체 왜 외국인들은 이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오고 우리 동네 운동마당보다 볼 거 없는 곳이 좋다고 산책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곳은 걸으면 걸을수록 매력 있는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산책로 옆에는 허브가 발길을 잡아 끌고 머리 위에선 소나무가 날개를 달아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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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다 내려다 보이는 공원 이름이 왜 가우디 공원인고 하니 불쑥 불쑥 가우디가 건축한 성과 성당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마주 보고 있는 산 위에도 지붕이 검고 뾰족한 성 하나가 서있었다. 말 그대로 산 속에 성 하나 있다는 느낌으로 주변은 나무들이 빽빽했다.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 멋있고 듬직해 보이지만 저 자리를 수백 년간 지키면서 혼자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감당하고 있을까? 고풍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워 보이는 것이 홀몸이지만 아직 정정하신 할아버지 느낌이다. 손녀 딸 된 마음으로 성을 배경으로 재롱도 피우고 사랑스러운 표정도 지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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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잔잔히 깔린 공원을 30분간 돌면서 산책을 하는 건지 산책을 당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향과 분위기에 듬뿍 취해 있었다. 우수께 소리로 그랬다.

“수영아, 우리 스페인에서 살아야겠다. 분위기도 친숙하고 사람들도 친근하고, 딱 신림동이야. 게다가 남자들은 신림동에서 업그레이드됐어.”

우리는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오늘 나오기 전에 우리 등껍질 같은 가방을 호스텔에 맡기고 와서 몸이 가벼웠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가우디의 작품 중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꼭, 꼭! 봐야 한다. 건축에 관해 일말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우디의 건축물을 본다면 그의 독특한 건축기법과 현대식 아이디어에 놀랄 것이다.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923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지만 3년도 채 안돼서 가우디가 전차 사고로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엄청난 건축 작업은 후손들 몫이 되었고 스페인은 가우디의 설계 도안 처럼 끝까지 만들겠다고 쉬지 않고 으쌰 으쌰 하고 있으나 2014년 현재도 건물 전체를 완성하지 못했을 정도로 거대한 작업이다.


“우와수영아, 저거 봐…… 대박..”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성당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매 30분 간격으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사그라다 성당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가 큰 종소리 같아서 저절로 탑 꼭대기를 쳐다보게 했다. 정말 모가지를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꺾어야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높았다.

“헐.. 진짜 크다..”
크기도 크기지만 무한대로 솟아오른 소나무 숲처럼 뾰족뾰족한 지붕이 너무 신기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표를 사기 위해 성당 뒤 변을 돌아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줄을 서야 했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 사람당 입장료가 20유로나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수중에 43유로가 전부였으므로 입장료를 내는데 거짓말 한 톨도안 보태고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 이렇게 비싼 이유가 있을 거야. 가격을 믿겠어. 피터가 꼭 가보랬으니까.. 피터.. 믿는다..

1601580_927578447252166_6957789480384076021_n.jpg 성당의 정문에 조각되어 있는 말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님


IMG_1494.jpg 너무 커서 한번에 담기지 않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바탕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겉 표면만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성 전체를 감싸며 조각되어있다. 특히, 가우디가 죽고 다른 건축가를 거쳐가면서 부분 부분 건축 스타일도 조금 다르다는 게 건축 왕 초보인 나한테도 보인다.

10422571_927577950585549_3713895883995568547_n.jpg 정문에 있는 황동 문인데, 아직 다 완성된게 아니라고 한다. 곧 만들어질 정문에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 말도 새겨질 것이다.
10920918_927578310585513_3887993164380643102_n.jpg 곳곳에 “가우디 코드”가 숨어있다는 문. 하지만 무지한 눈으로 보면 그저 슬픈 눈이고 꼬부랑 글씨만 보인다

성당 내부에 발을 디뎌놓자 마자 어렸을 적 상상화에 그렸던 버섯 마을에 온 느낌도 들고, 정령들만 사는 숲 속에 몰래 숨어 들어온 느낌도 들었다.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라고 생각했던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서도 최대한 자연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보통 대성당에서 느껴지는 웅장함 보다는 색색의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빛이 ‘신성함’을 정의하고 자연과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은 ‘신비함’을 가져다 주는 곳이었다. 그저 아직까지도 쇠철탑을 양 옆에 끼고공사를 하고 있는 미완성 성당이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덕분에 다시 바르셀로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고 간다.


오늘 저녁에 파리로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수영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랬던 바르셀로네타에서 보내기로 했다.


바르셀로네타는 바다 근처 도시이기에 우리의 목표 또한 해산물 파에야를 먹는 거였다. 파에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해물 볶음밥 같은 것이다.

“언니, 우리 자전거 타고 돌아다닐까? 자전거 빌리는 곳인 것 같은데?” 뒷바퀴에 광고가 붙어있는 빨간색 자전거가 일 열로 늘어선 곳을 가리키며 수영이가 말했다.

“오호~ 그래! 근데 이거 어떻게 빌리는 건데?” 한참 빌리는 기계 앞을 어슬렁 거리면서동전 넣는 구멍도 찾아보고 화면도 오랫동안 응시해보고 터치 스크린도 아닌 곳을 퍽퍽 눌러보기도 했으나 결국 제 성질 못 이기고 그만뒀다.

“야 그냥 관두고 가서 밥이나 먹자. 배고파..” 배고프면 예민하다.

금요일, 파에야를 찾아 바르셀로네타 골목 골목을 돌아봤지만 스페인에서 파에야는 목요일에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파에야 파는 곳에 있을 거야……” 수영이는 절대적으로 파에야를 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마침 큰 삼촌께 드릴 엽서를 두 장 골라서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10382882_927577980585546_5333787083849579595_n.jpg 바르셀로네타 거리에 입성
10888774_927578467252164_2292322647346188237_n.jpg 삼촌께 드리는 엽서 고르는 중

“아줌마, 여기 파에야 파는 곳 없나요? 다른 곳에서 다 물어봤는데 다들 목요일만파에야를 판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오늘 밤에 프랑스로 떠나서 꼭 파에야를 먹어야 해요.” 내가 들어도 간절한 목소리였다.

“아.. 글쎄” 키 크고 상체만 날씬하신 아줌마는 옆집 기념품 가게에 가시더니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다시 돌아오셔서 말씀하셨다.
“파에야는 보통 목요일에만 먹어서 말이지.. 아마 해변 근처로 가면 파에야를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저쪽 길로 쭉 걷다 보면 바닷가가 보일 테니 한번 가보세요.”

정말로 친절한 분이셨다.


키다리 아줌마 말대로 쭉 직진하다 보니 어느덧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해변가에 도착했다.

“숙녀분들~ 여기 와서 메뉴 보고 가세요! 저희 집은 빠에야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파키스탄에서 오신 웨이터가 우리에게 기다란 메뉴를 집어 보이며 말했다.
“자, 여기 보세요. 애피타이저와 음료수까지 나오는 세트 메뉴를 20유로에 먹을 수 있어요.”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서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우리 오자매. 분명 조금 더 발품 팔면 더 괜찮은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정말 맛있어 보이긴 하네요. 근데 저희는 지금 밥을 먹을게 아니라 나중에 바닷가에서 놀다가 꼭 들릴게요.”

그 집을 지나오니 바로 옆 가게에서 메뉴 판을 들고 우리를 마중했다. 알고 보니 그 옆 가게도 그 옆의 옆 가게도 이름이 “1889년부터” “1920년부터” “시초부터 파에야 전문” 이런 식이었다. 예를 들자면 원조 할머니 보쌈 집 옆에 왕 원조 할머니 보쌈이 있고 그 옆은 원 할머니 보쌈, 고향 보쌈, 옛날 보쌈 등등이 모두 몰려있는 것과 같은 양태였다.


세 번째 가게는 스페인 사람이 메뉴 판을 보여줬는데 19유로라는 착한 가격과 더 많은 세트메뉴가 있었기에 그 가게에서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동생은 토마토 스파게티와 해물 파에야를 시키고 나는 바싹 구운 새우와 생선구이를 시켰는데 맛도 맛이지만 그 양이 엄청나서 접시를 비우는데 꽤 애를 써야 했다. 여기도 파키스탄아저씨가 웨이터였는데 너무 친절하셔서 팁을 드리고 싶었지만 우리는 가난한 배낭여행 족이므로 통과.


10392457_927578077252203_3338480618660717998_n.jpg 아주 아주 먹음직스럽게 나온 해물 파에야
10897042_927578700585474_753518331300360226_n.jpg 주 요리 두 개를 더 골라 시킬 수 있다. 와인도 서비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가 부르니 세상이 다 환해 보였다. 요트와 수상 스키들이 주차되어 있는 항구 가까이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자메이칸 길거리악사 다섯 명이서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를 부르고 있었다. 앞에서는 이미 그들의 노래에 심취한 뚱뚱한 금발 곱슬머리 아주머니께서 스텝을 밟고 계셨다. 그들의 노래는 금발 곱슬머리 아줌마만 흥이 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도 모두 멈춰서 몸을 한두 번씩 털어주고 갈 정도로 악사들의 호흡은 대단했다.

레게풍의 독특한 약 박 리듬에 맞춰 강인하게 나오는 목소리와 이를 받쳐주는 튜바, 두 손으로 흔들~ 흔들 흔들면 쌀 굴러가는 소리가 나는 마라카스의 간지러운 소리, 그리고 자메이카 산 젬바 드럼의 통통 튀기는 맑은 울림과 우쿨렐레의 귀여운 속삭임이 듣는 사람의 모든 세포를 쥐여 잡고 조정이라도 하는 듯, 모두들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밥도넉넉히 먹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되찾는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레게 풍 밥 말리 노래와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의 조합을 듣고 있자니 흥이 쌓이고 쌓여 결국 터지고 말았다. 난 비록 상체는 뻣뻣할 지라도 예전부터 발 재간은 마이클 잭슨을 견줄 수 있는 자칭 ‘잭슨 오’였다. 아오~ 막 혼자 터져버린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텝 쫙 쫙 밟으면서 바닷가로 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빨간 배낭을 맨 젊고 잘생긴 오빠가 느끼한 미소와 함께 다가오며 스페인어로 한 마디 흘리고 갔다.

“무이뷔엔~ (Very good = 짱 잘한다)”

나는 상관없었지만 옆에서 웃겨 죽는 내 동생.. 다시 해보라고 부추기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흥이 머리 끝까지 차고 머리 끝까지 꿈틀거리고 싶을 때 나오는 거라고..


우리끼리 좋다고 낄낄대면서 걸었더니 어느새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제법 불어서 동네 친구들끼리 서핑 보드를 가지고 나온 10대 소녀들 다섯 명이서 우리 옆을 신나게 휙 지나갔다. 신발 밑에서 뽀드득, 해수욕장 모래를 밟은 소리가 났다. 동시에 바람에 실려온 바닷물이 안경을 흐리게 했지만 사랑이 얼굴에 가득한 부부의 얼굴, 가슴 뛰는 연애 중인 연인들의 얼굴,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얼굴, 해변에서 혼자 사색에 잠긴 중년의 아줌마 얼굴과 같이 흐려진 안경 너머로 보이는 것들은 후광으로 가득해서 오히려 몽환을 불러 일으켰다.


따뜻한 바람 때문인지, 사랑스러운 동생과 함께이기 때문인지, 알록달록 빛을 가진 사람들 때문인지, 내 손가락 끝에 닿는 모래알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오늘 밤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기차를 탈 것이다.


아디오스 바르셀로나!


10906363_927578163918861_6669684337366675264_n.jpg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서 볼 수 있는빛의 향연


10891912_927578673918810_3604080996034897025_n.jpg 수난의파사드 중 가장 땅에서 가까운 상. 예수님이 이미 상처가 많이 난 몸으로 기둥에 묶여 계시는데 세상을다 잃은 슬픈 표정을 하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