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그 곳 - 파리
우리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서울역 숙자님들의 겨울 생활이 얼마나 노곤할지…… 어젯밤은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제대로 잠을 청하고자 앞머리도 핀으로 꽂아서 뒤로 넘기고 잤지만 막상 눕힌 의자 밑으로 솔솔 들어오는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간간이 깨면서 5시간 쪽 잠을 잤더니 우리의 모습은 흡사 조선시대 망나니와 같았다. 때마침 암흑 속에서 길을 인도해 주는 빛 한 줄기처럼 눈 앞에 “douche (샤워실)”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수영아, 저기 샤워실 아니야?” 어제 찬 바람을 맞고 잤더니 목소리가 열 갈래로 갈라져 나는 것이 할아버지가 따로 없었다.
“맞네, 한번 가볼까? 돈 내고 사용하는 것 같은데……”
자동문이 열리니 안에 빨간 곱슬머리를 가진 퉁퉁한 프랑스 아줌마가 중앙을 딱 지키고 있었고 그 왼쪽으로는 남자 화장실이, 오른쪽으로는 여자 화장실이 위치해있고 아줌마의 뒤쪽으로 샤워실이 있었다.
“우와, 꽤 괜찮은데?” 제발 샤워를 하고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호소의 눈빛을 보냈다.
“음.. 근데 8 유로면 너무 비싼 것 같은데.. 우리 둘이 하면 16유로잖아..”
“굳이 샤워해야겠어? 날씨도 추워서 머리가 떡지지도 않는구먼 그냥 2유로로 화장실에서 세수랑 앞머리만 감고 돌아다녀” 수영이는 절대적으로 16유로를 샤워실로부터 지켜내려 했다. 하지만 샤워에 대한 나의 욕구는 커져만 갔다.
“진짜, 16유로 쓰더라도 밤 새 바람으로 차가워진 몸을 녹여야 쌓인 피로도 풀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데도 덜 힘들고 사진 찍을 때도 더 예쁘게 나오는 게 낫지 않겠어? 하루 시작이 달라지는데 8 유로면 싼 거지. 그냥 샤워해.”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후, 곱슬머리 아줌마를 통과하니 안에는 왼쪽 오른쪽에 각 각 두 개의 샤워 실이 있었고 우리와 같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는 20분 하실 수 있고요, 안에 들어가시면 샤워 도구들은 다 구비되어있답니다. 최대 시간이 20분이니 시간 정확하게 지켜주세요. 아까 전에 들어간 할아버지가 거의 40분을 사용하셔서 손님이 많이 밀렸으니까요.”
아까 할아버지가 꽤 성가셨나 본지 아줌마는 신경이 곤두선 듯 경고했다.
막상샤워실에 들어가니 안이 예상보다 넓었다. 세면대와 변기는 물론이고 샤워하는 공간도 유리 문으로 분리되어있어서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세면대 위에는 세 장의 수건과 샤워 젤, 샴푸, 비누, 치약이 함께 들어있었다.
“아니 무슨 수건을 세 장씩이나 주냐?” 평소에는 수건 한 장으로 모든 걸 끝내기 때문에 수건이 3 장이라는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크기가 각기 다른걸 보니 발수건세안 수건 머릿수건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펑펑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는 것이 너무 좋아서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있고 10분 정도를 우두커니 샤워기 밑에 서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수영이는 이미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목욕탕처럼 전신 거울 앞으로 머리를 말리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데 거기서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했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샤워실을 나오는데 빨간 곱슬머리 통통 아줌마가 우리를 보더니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지 상체를 살짝 뒤로 제치고 ‘흠칫’하시더니 큰 눈을두 번 깜빡이셨다. ‘쟤네 아까 게네야?’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 하자면 ‘가가 가가?’ 정도가 되겠다.
1시간과 16유로의 투자로 하루의 시작이 행복해졌다.
평소와 같이 저녁에 타고 갈 기차를 먼저 예약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때마침 기차역에 짐을 보관하는 사물함이 있었는데 10유로를 넣고 하루 종일 짐을 맡길 수 있다 기에 조금 부담됐지만 여권과 지갑처럼 당장에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등껍질을 맡기기로 했다. 등껍질을 훌렁 벗어 던져 버리니 참새 날개만 달아줘도 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유후~ 기분 짱 좋아! 여기다가 밥까지 먹으면 안성맞춤일세.” 거의 오전 10시가 되었을 즘, 주름이 자글자글 했던 위가 회춘하고 싶다며 소리를 박박 질러대고 있었다. 마침 노트르담 성당까지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야 해서 기차역에서 나와 지하철 역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걷다가 마음에 드는 집, 괄호 하고 싸고 많이 주는 집 괄호 닫고, 이 있으면 그 곳에 앉아 밥을 먹기로 했다.
참고로 파리에 도착하면 무조건 노트르담 성당을 제일 먼저 가봐야 한다고 둘째 동생 주영이가 귀가 따갑도록 말했었다. 주영이의 말을 도용하자면 ‘성당 앞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대고 기관지 수축이 일어난 것처럼 숨이 턱 막히는 곳’ 이란다.
이래저래 쌀쌀하지만 너무 춥지 않은, 구름이 있지만 흐리지 않은 날씨 아래 많은 상점들을 지나치고 마침내 쟁반 만한 접시에 볶은 밥과 ‘고인돌 시대’에나 먹었을 법한 커다란 치킨 다리 한 조각을 8유로에 주는 인심 좋은 가게를 발견하고 서슴없이 들어갔다. 절대로 맛 좋아 보이는 음식 때문에 들어간 것이지 훈남 알바생 때문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수영아, 나 닭…… 닭이... 닭이 먹고 싶어..” 어디에 있던 치킨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터인데 여행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닭을 먹지 않았으니 몸에 좀이 날 지경이었다. 말하자면‘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아내의 설렁탕 타령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래, 오랜만에 입에 기름칠 좀 하자. 저거 봐, 완전 맛있어 보여.” 수영이도 고기가 그립긴 했나 보다. 아니면 울면서 “치킨을 사 왔는데 왜 먹지 못하니”라는 대목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둘이 먹어서 배가 꽉 찰 정도의 양은 아니었지만 고기라는 자체가 이미 풍족 감을 주기에 적당했다. 따뜻해진 몸과 회춘한 위를 끌고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의 파란 운동화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부츠나 워커를 신고 다녔고 많은 사람들이 특이한 모자를 매치하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나같은 건 그들의 몸매였으니 마네킹이 걸어 다닌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파리지앵의 위력인가.. 여유롭게 밖에 배치된 난로 옆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자전거로 어딘가를 바삐 가는 사람들을 지나 지하철 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오른쪽에 있던 상점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유리벽이 내 종아리만 한 쥐의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덫에 걸린 쥐를 예쁘게 정렬하여 걸어 놓은 곳이다. 쥐를 파는 고은 아닐 테니 쥐덫을 파는 곳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쥐 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우리 엄마를 위해 이 곳을 배경으로 예쁘게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헤헷.
지하철 역에 도착하여 수영이가 지하철 표를 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동양인 남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뒤에 매단 기다란 여행 가방이 배낭여행 족 같았는데 패션과 체격이 흡사 중국인 같았다. ‘설마..’ ‘설마..’
“쭝 궈런 마?”
그래.. 이제 아니라고 말할 힘도 없다. 이 부분은 포기해야 하나 보다. 그래도 이번 중국인은 내가 멍 때리고 조용히 쳐다보고 있으니 알아서 떨어졌다.
유럽을 다니면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건물 디자인이다. 현대식 실내와 대조되는 고풍스러운 실외 디자인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알맞았다. 현대식은 구식보다 세련됐다고 생각했지만 구식 건물에서 나오는 둔탁함과 그 안에 숨겨진 섬세함은 어느 과학적 원리로 만든 건물보다 예리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에 넓은 차도가 양쪽에 파스텔 톤으로 옷 입은 빌딩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왼쪽 도보 옆에는 상점들이 깔끔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을 즐겨 찾는지 곳곳에 이탈리아 음식점이 보이고 커피숍과 빵집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언니, 프랑스가 크레페가 진짜 맛있어! 주영이랑 왔을 때도 몽마르뜨 언덕에서 크레페 사 먹었는데. 언니도 크레페 하나는 먹고 가야지?”
“음? 나는 크레페별로 안 당기는데…… 팬케익 얇게 펴서 아이스크림 넣은 게 뭐가 맛있다고 그걸 돈 주고 사 먹어..” 이렇게 얘기했지만 옆에서 크레페를 들고 야금야금 먹고 있는 금발 꼬맹이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살짝 침이고이기는 했다.
“그냥 하나 사 먹고 가자! 무슨 맛 먹을래? 땅콩버터 들어간 것도 맛있겠고.. 생크림 들어간 것도 맛있을 것 같은데? 아! 저기 누텔라 들어간 것도 있다.” 아까 먹은 아침이 부족했나 수영이는 아주 신이 났다.
“뭐니 뭐니 해도 초콜릿의 영원한 짝꿍은 바나나지! 바나나 누텔라 크레페, 너로 정했다!” 어느덧 메뉴판 위에 올라와 있는 나의 검지 손가락..
4유로로 크레페 하나를 일회용 접시 위에 얹고 플라스틱 수저 두 개를 들고 성당이 있는 곳으로 직진했다. 물론 오른쪽 옆구리에 어제 스페인을 출발하기 전에 산 2리터짜리 생수통을 끼고 다닌 것은 비밀이다.
다행히 크레페가 식기 전에 성당 앞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성당의 옆면이다. 붕 뜬 마음도 한 번에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보리색 벽이 그늘져서 파란 빛이 감돌았다. ‘성당의 벽’이라는 생각보다 한 나라의 ‘성벽’에 가까운 스케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우.. 저건 뭐야?” 느낌적으로도 그렇고 풍기는 외모로도 스페인에서 본성당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정면에 위치한 달덩이 만한 스테인 글라스는 지름만 13미터라고 하니 노트르담 성당의 위엄은 말로 형용하기엔 그지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성당의 겉면에는 가시 같은 것들이 수없이 많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박쥐 모양도 있고 표범이나 사람 모양도 있는데 어느 것 하나같은 얼굴을 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고일 석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들의 역할은 악귀로부터 성당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정작 내 눈에는 가고일 석상의 얼굴이 더 흉측하게 보였다. 성당 벽에 숨어있던 악마가 벽에서 뛰쳐나오려고 하는 순간 콘크리트를 부어 생긴 석상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다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있는데 악령은커녕 사람도 성령님도 오시길 주저할 것 같았다.
“아우,,, 저건 또 모야?” 앞에 스테인 글라스 지름의 20배는 족히 돼 보이는 길이의 개미 줄이 사람 형상을 하고 성당 안으로 입성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줄이 좀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햇빛이 잘 드는 벤치 옆에 있는 돌상 위에 앉아 크레페를 먹었다. 괜히 고상한 척 플라스틱 수저로 썰어보고 찔러보고 파봤지만 애꿎은 숟가락만 빠갈나고 결국엔 집게 손가락으로 들고 야생적으로 뜯어 먹어야 했다.
엄청 고상한 성당 앞, 햇빛 잘 드는 벤치도 아닌 그 옆 돌 위에 앉아서 일회용 접시에 놓인 누텔라 크레페를 생고기 뜯듯이 먹고 있는 굶주린 한국인 두 명을 본 적이 있는가. 초콜릿 덕지가 된 집게 손가락이 생수통을 더럽히지 않도록 2리터짜리 생수통을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집고, 있는 힘껏 입을 벌린 후 생명의 물을 입에 퍼붓고 있는 목마른 한국인 두 명을 본 적이 있는가.
오랜 기다림 끝에 성당 내부를 들어갈 수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했던 사군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신비로운 느낌은 없었지만 들어가자마자 ‘신성한’ 공간이라는 걸 확실히 직감할 수 있었다. 아치 모양의 높은 천장과 어두운 조명, 복도 끝에 커다랗게 장식된 푸른 계열의 스테인글라스가 입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푹 가라앉혀 평온한 안정을 주었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모형으로 만든 예수님 이야기였다. 열 두 제자를 모으신 이야기, 의심 많은 도마 이야기, 십자가에서의 부활 이야기 등 성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몇 가지의 예수님의 업적을 인형 모형으로 만들어 성당 중심을 둘러가며 진열해 놓고 그 앞에 간단한 설명을 적어놓은 팻말을 붙여 놓았다.
“어! 이거 사진 찍어 가야겠다!” 급하게 사진기를 꺼내며 말했다.
“왜?” 궁금한 표정의 수영..
“이번에 교회에서 퍼펫쇼 하는데 마침 도마 이야기가 있거든. 이걸로 아이디어 내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이것도 인형극에 쓰는 배경처럼 만들어 놨잖아.” 카메라를 들고 신이 나서 구석구석 사진을 찍었다.
“와~ 재미있겠네~! 언니는 거기서 뭐 하는데?”
“아직 정해진 파트는 없는데 꽤 재미있을 것 같아. 그저 시간이 좀 촉박해서 그렇지. 필리핀 돌아가자마자 청년 부 모여서 인형 만들고 배경 만들고 부지런히 하면 빠듯하게라도 되겠지.”
이후의 얘기지만 퍼펫쇼를 위해 카메라에 들은 사진을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퍼펫쇼를 하기 바로 전날에 만나 녹음, 인형, 배경까지 다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전체 스토리에 배경은 하나로 만족해야 했고 손인형 대신 꼬챙이에 머리를 붙이고 천을 이어서 허벌라게 흔드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하지만 네 명 밖에 안된 청년들의 신명 나는 성우 연기로 감동의 연속이었다는 후문이다. 성당 내부를 보았으니, 밖으로 나가 성당 옆으로 펼쳐진 요한 23세 광장을 산책하며 세느강의 광경과 함께 노트르담 성당을 감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