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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체코 (2)

<아름다움과 타락의 사이 in 프라하>

by 오셍

“오수, 여기 어떠냐? 한번 찾아가봐도 될 성 싶은데?”
“응.. 나도 하나 찾았어. 우선 먹고 가보자 이 근처인 것 같은데.”

가는 길에 다시 광장을 지났는데 이번에는 중년 아저씨들 넷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프라하에서는 나라에서 검증받은 연주가들 만이 길거리에서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매 년 연주가들을 검증하는 테스트도 있다고 한다. 두 분은 바이올린으로 한 분은 아코디언으로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색소폰을 들고.. 그 연주가 얼마나 신이 나던지,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가 쓴 것만 같은 보라색 모자를 쓰고, 마르고 큰 키를 가진 여성 관광객이 광장을 무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망치는 막 춤이 아니었다. 연주자 아저씨들의 연주에서 태어난 음표들이 키다리 여성의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까지 팡팡 때리며 움직임을 의도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대머리에 기다라고 하얀 목도리로 포인트를 주신 중년 아저씨까지 가세하여 이 키다리 여성을 리드했다. 그들을 둘러싼 구경꾼들은 신나는 리듬에 맞춰 몸을 동서남북으로 흔들며 연주를 하는 길거리 연주자들과 서로를 바라보면 손과 발을 맞추는 키다리 여성과 대머리 아저씨 덕분에 음악을 시각화하게 되었고 되려 그들의 몸짓을 청각화 하게 되었다.

IMG_1569.jpg 추운 날씨도 날려버릴 정도로 정열적으로연주하시는 길거리 악사 아저씨들과 그 앞에서 춤에 흠뻑 빠지신 대머리 아저씨와 난장이 모자 아줌마

“바로 이 맛이 프라하를 오지!” 작년의 기억을 돼 내듯 수영이가 말했다.
“아 진짜 좋다..” 잠시지만 겨울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연주를 즐길 수 없었다.


해님은 옛날 옛적에 퇴장하셨고 우리의 등 껍데기는 조금씩 더 무자비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다. 이 추운 나라에서 노숙을 할 수도 없는 판이었다.
“수영아 네가 먼저 알아본 곳 가보자.”

걸으면 걸을수록 화려한 크리스마스 불빛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수영아, 여기 맞아?”
“응, 아까 구글맵으로 사진 찍어서 그대로 온 건데.. 저기 흑형한테 물어보자.”

흰색 조끼를 입은 아담함 흑형은 동화 같은 도시의 클럽 삐끼였다.

그렇다. 동화 같은 나라에도 클럽이 있었다.

“저, 길 좀 물을게요. 여기를 찾아가고 있는데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이폰의 지도를 확대시키며 말했다.
“혹시 불어 하세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네, 여기를 찾아가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영이가 이번엔 불어로 물었다.
“아,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요. 잘 가고 계세요. 이쪽 골목을 쭉 지나서 두 번째 블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한 5분쯤 걸으면 될 것 같네요.”
“아, 고맙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프라하에 사창가를 걸어 본 여행객이 얼마나 있을까?

‘성인기구 팜’

이제 눈 앞에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대신에 새빨갛고 자극적인 빛을 내는 간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래도 앞에서 미국인 여럿이서 걷고 있고 뒤에는 인도 연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지 아니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리 프라하라도 뒷동네에 구린내 나는 건 마찬가지네”

자꾸 골목으로 골목으로 걷다가, 드디어 수영이가 찾았던 호스텔에 도착했다. 어째 간판에 불도 켜놓지 않아 주위를 배회하다 찾는데 한참 걸렸다.

“여기 근데, 문이 너무 닫혀있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거 아니야?” 입구 기둥에 붙어있는 초인종을 눌러봐도 대답이 없다. 혹시나 해서 공동 출입문을 살짝 밀어봤는데 검은색 커다란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에이~ 여기가 제일 싸~ 우선 들어가보자..”
“너무 껌껌한데.. 그냥 지나가지..”

수영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복도 벽을 더듬거리더니 어중간히 붙어있는 스위치를 찾아 올렸다. 넓은 복도 계단을 비추기엔 힘겨워 보이는 형광등 하나가 힘들게 깜빡이며 불을 밝혔다. 저번 달에 유튜브로 본 폐가 체험에나 나올 것 같은 음침한 곳이었다.


우리가 찾는 호스텔은 그 빌딩의 2층에 있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조용하다. 우리의 발소리가 복도 벽을 치고 다시 돌아오는 소리인지 심장 소리가 발소리에 섞여서 들리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 호스텔은 흔히 보는 건물 형이 아니었다. 빌딩의 중간은 사각형으로 뻥 뚫려 있었고 난간으로 경계를 둔 채 주변을 빙 둘러서 여러 개의 방들이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 사각형 복도, 어느 모서리에 우리가 서있었다. 갑자기 작년에 본 영화 ‘테이큰(taken)’이 생각났다. 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니암 니슨’의 딸이 유괴돼서 팔린 곳이 이런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방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모든 방의 불이 꺼져있고 아무개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다.

“수영아, 여긴 진짜 아닌 거 같아. 나가자. 빨리.”
“그래, 좀 무섭긴 하다.”
아니 이 계집 애는 겁을 어디에 다 가져다가 팔아먹었는지, 너무 덤덤하다.


누구에 쫓기듯이 허겁지겁 그곳을 벗어났다.

하나의 팁을 제공하자면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 전, ‘테이큰’ 같은 영화는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여행 내내, 히스테리라도 걸린 사람인 냥 별 일도 아닌 것에도 질겁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저곳에 있었다면 누구든지 없던 히스테리도 생길 것 같다.

다시 길 고양이 신세가 되었다.

이젠 정말, 아무 곳에서나 자도 괜찮다. 가방이라도 내리고 싶다. 마침 우리가 걷는 길에 별 세 개짜리 호텔이 보였다.
“수영아, 여기 얼마 하는지 확인하고 가자..”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래!”

“네~ 어서 오세요~” 황갈색 단발머리에 세미 정장을 입은 여자분이 맞아주었다.
“저, 하룻밤에 투숙하는데 얼만가요?” 수영인 언제나 단도 지압적이다.
“아, 여기 옆에 쓰여있습니다만 손님. 일박에 800 코루나예요.”
“너무 비싸네요. 그렇게 비쌀 것 같지 않았는데.”
“현금으로 계산하시면 700 코루나에 해 드릴게요.”
설마 우리는 지금 탈세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가.

“네~” 수영이가못 내키는 듯이 말했다.
“가자 언니, 여기는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너무 비싸. 게다가 삼성 호텔이면 모텔 급인데, 너무 비싸”
“하.. 수영, 그러면 이렇게 된 김에 아까 큰길에서 봤던 4성 호텔 얼만지 한번 보자.”


4성 호텔 입구에 Tripadvisor이라는 ‘부엉이 표’ 여행 정보 사이트 스티커가 붙어져 있었다. 우선 부엉이 표가 붙어있다는 자체가 맘에 들었다. 왜냐하면 부엉이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에.(데헷.. *^^*)

하등 관계없는 얘기지만 나중에 내 집에 마당이 생긴다면 꼭 부엉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

“언니! 대박, 여기 조식 포함해서 800 코루나래! 별도 네 개인데 완전 짱!”
부엉이는 항상 옳다.
“더 돌아다녀 볼까?” 4 성호텔의 의외의 싼 가격에 수영이가 흥분했나 보다.
“아니, 여기로 해 그냥.”

하루에 다섯 시간 발품을 팔았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있고 내일 아침밥까지 나오는 훌륭한 곳이다.

“어머, 여기 욕조도 있어! 우리 돌아와서 여기서 오늘 목욕하자!!”
“와우, 판타스틱 아이디어. 오늘 네가 말한 것 중에 제일 최고야”

아까 골목에서 일부러 몸을 크게 보이려고 어깨에 힘을 빡 주고 다녔더니 온몸이 쑤셨는데 잘 됐다.
“언니, 더 늦기 전에 빨리 가방 내려놓고 나가자!”

들어올 때 몸을 바로 녹일 수 있도록 미리 난방을 틀어놓고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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