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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Schipper Apr 28. 2023

카롤리나 야부온스카, 토마슈 크렝치츠키, 시릴 폴라체크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


에스더쉬퍼 베를린은 폴란드의 카롤리나 야부온스카(KAROLINA JABŁOŃSKA), 토마슈 크렝치츠키(TOMASKRĘCICKI), 시릴 폴라체크(CYRYL POLACZEK)의 전시,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S》를 2023년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선보였습니다. 30대 초반의 작가들은 2012년 폴란드 크라쿠프 예술아카데미(Fine Arts Academy in Kraków)에서 만나 포텐치아(Potencja)라는 이름으로 공동 작업을 해왔습니다. 포텐치아는 때로는 함께, 또 때로는 각자 전시하고, 포텐치아라는 이름의 예술공간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일상적인 경험을 주제로 삼고 과장된 규모와 뚜렷한 색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독특한 유머를 자아냅니다. 비슷한 또래의 작가 세 명은 서로 미술사적 레퍼런스를 공유하고 때로는 예술에 대한 첨예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비평하기도 하며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From left to right: Cyryl Polaczek, Tomasz Kręcicki and Karolina Jabłońska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s, Esther Schipper, Berlin (2023)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s, Esther Schipper, Berlin (2023)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s, Esther Schipper, Berlin (2023)


Reconciling Apparent Contradictions, Esther Schipper, Berlin (2023)


포텐치아는 이번 전시에서 일반적으로 회화 작품을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식적 관행과 클리셰들에 대해 특유의 짓궂으면서도 유쾌한 유머로 풀어냈습니다. 갤러리 공간의 하얀 벽은 펼쳐진 책의 페이지처럼 보이도록 구성하고 그 페이지 안에는 각각의 회화 작품을 마치 삽화처럼 배치했습니다. 갤러리 중앙에 위치한 책 모양의 대규모 오브제는 2021년 BWA 지엘로나 구라(BWA Zielona Góra)에서 개최한 전시를 위해 출판한 책 “Potency. A Glossary of Symbols”를 오브제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책은 포텐치아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회화적 관행과 이들이 공유하는 모티브의 상징성을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 허구의 신화적 어조를 통해 포텐치아 설립 신화를 묘사합니다. 진지함과 조롱의 적절한 혼합은 포텐치아의 작업 전반에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Karolina Jabłońska, The head in the ice hole, 2022, oil on canvas, 150 x 160 cm


Karolina Jabłońska, Frozen head, 2022, oil on canvas, 190 x 170 cm


카롤리나 야부온스카의 작품은 특유의 색감을 지녔습니다. 작가는 주로 자화상을 그립니다. 얼굴에 보라색을 사용해 보는 이에게 강한 감정과 본능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The Head In The Ice Hole>(2022)에서 인물은 얼어붙은 호수 속에 빠져 눈과 이마만 수면 위로 올라와 있습니다. 호수에 더 깊이 들어가거나 그 안에서 버티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수로부터 나오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순간은, 작가가 묘사한 인물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로 인해 복잡한 감정이 배가됩니다. <Frozen Head>(2022)에서 인물은 얼음덩어리에 머리가 갇혀 있으나 추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결연하게 꼭 다문 입매가 상황과 불균형을 이루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유머와 절제가 미묘하게 혼재된 분위기는 <Turtleneck>(2022)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스웨터를 벗는 순간의 어색함과 짧은 공포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나의) 그림은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인상에서 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기도 하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언급은 개인적인 감정과 감각을 통해 여성으로서 해야 할 역할, 신체에 대한 실존적 위협 및 정치적 현실에 의해 부과되는 제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Karolina Jabłońska, Turtleneck, 2022, oil on canvas, 180 x 180


토마슈 크렝치츠키 역시 유머 또는 조롱을 통해 진지함이나 열망을 우스꽝스럽게 비틉니다. <Gel>(2023)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튜브에서 젤라틴 물질을 도포하는 거대한 손가락과 피부가 등장합니다. 작가는 손과 튜브라는 현실적인 일상의 요소들을 초현실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형태로 표현하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초현실주의적 비현실성은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며, B급 공포 영화의 과장된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가의 작품에서 규모(scale)와 몸(body)은 복잡 미묘한 의미와 해석의 여지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되는 주요 모티브로 작동합니다. <Pin>(2023)이나 <Needles>(2022)와 같은 작품들은 암묵적인 위협이 조성하는 불안감을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실존적인 것을 다루고자 하며, 폴란드의 현대 정치적 상황과 그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하고, 시각적으로 조명합니다. 


Tomasz Kręcicki, Gel, 2023, oil on canvas, 140 x 160 cm


Tomasz Kręcicki, Needles, 2022, oil on canvas, 115 x 115 cm


Tomasz Kręcicki, Pin, 2023, oil on canvas, 160 x 160 cm


시릴 폴라체크의 작업은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거나, 자연과 일상 이미지 사이의 부조화로 인해 혼란을 유발하는 리버스(rebus: 그림, 글자 조합 수수께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 어두운 바다 풍경 위를 맴도는 머리빗을 그린 <Morze(Sea)>(2023), 지갑 속의 클로버 잎을 그린 <Portfel(Wallet)>(2023), 진주를 품은 굴을 잡은 손을 그린 <Perta(Pearl)>(2023)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Walka Mniszka Z Makiem(Fight Between The Dandelion And The Poppy)>(2023)에서 묘사한 민들레가 붉은 양귀비와 “싸우는” 모습을 통해 앞서 언급한 두 명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진지함과 유머를 미묘하게 혼합합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묘사한 식물들은 영웅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Cyryl Polaczek, Morze (Sea), 2023, oil on canvas, 150 x 180 cm


Cyryl Polaczek, Perła (Pearl), 2023, oil on canvas, 46 x 55 cm


시릴 폴라체크의 작품에서 관객은 종종 장면의 일부가 됩니다. 예를 들어 <Deszcz(Rain)>(2023)를 마주 보면 마치 비 오는 풍경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작가는 궁금증과 상상력을 유발하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있어 특별히 기술적으로 정교한 붓 터치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Perta(Pearl)>(2023)와 <Portfel(Wallet)>(2023)에서 묘사된 물체들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 두꺼운 물감층을 조각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Morze(Sea)>(2023)와 <Deszcz(Rain)>(2023) 같은 작품에서는 모티브가 되는 형의 윤곽을 해체하기 직전에 느슨한 붓 터치로 얇고 투명하게 표현합니다.  


Cyryl Polaczek, Deszcz (Rain), 2023, oil on canvas, 160 x 200 cm


Cyryl Polaczek, Portfel (Wallet), 2023, oil on canvas, 100 x 140 cm


글쓴이: 이채원 (Digital Humanities, University of Cologne)

Photos: © Andrea Ros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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