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우화등선(羽化登仙), 웅연계람(熊淵繫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은 겸재 정선이 임진강 웅연에서 뱃놀이하며 그린 <우화등선>, <웅연계람>이다. 여기에 경기관찰사 홍경보의 서문과 연천 군수이자 시인인 신유한이 글을 더했다.
연천 땅
임진강 웅연으로 가는 날
어허 거참 이거 원
집에 두고 온 개가 생각나데
해 질 녘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다리듯
물속에 잠긴 깊이만큼 노 젓는 수평선
물결 소리가 넘치는 뱃길인데
농(濃)과 담(淡)으로 이어진
안개가 일어나는 골짜기에서
강가를 스치는 물결이란
어허 거참 이거 원
기러기 노랫소리를 늙은 어부가 따라 부르네
마을을 휘도는 물줄기가 장엄하네
함께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자는 약속인데
모든 나무와 많은 풀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어허 거참 이거 원
눈에 다 담지 못한 물너울이 지나가자
은하수가 쏟아지는 우화(羽化)를 꿈꾼 풍경
끝없이 거슬러 오른 잊지 못할 시월에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시를 짓습니다
그가 노래하면 나는 보름달을 봅니다
기러기처럼
그와 나 사이에 비치는 달빛을 묶으면서
서로 마음이 잘 통했는지
눈에 담았던 풍경이 몹시 흐뭇하여
그해 가을 그림을 그립니다
지나온 곳에는 흔적을 남겨야 하기에
노를 젓고 그물을 던진 곳에서
사람이 남긴 뒷모습을 보다가
갈댓잎의 그림자를 흔들다가
기러기 울음소리가 끊겼다 들렸다 하는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밀어내지 못한
강물과 하늘과 달빛과 함께
순간 그와 내가 우리가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11월, 가을이 깊은 시간이다.
개안마루는 비무장지대, DMZ, 접경지, 군사분계지역, 휴전선, 북방한계선 등의 이름을 가진 곳이라 지도에서는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있다. 늦가을,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고 가까움을 눈으로 짐작해야 한다. 연천 옥녀봉에 설치된 유영호 조각가의 그리팅맨을 찾으면 쉽다. 북쪽을 바라보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거인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임진강의 갈대꽃이 흔들리면 산 중턱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으면 된다.
산에서 임진강으로 길게 흘러내리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가의 풀잎은 푸석하게 시들고 추수를 끝낸 콩밭의 콩잎은 바짝 말라 누렇다. 강 건너 골짜기를 지나 기러기가 날아간다.
산 능선 전망대로 걷는 길은 온통 낙엽이다. 떡갈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잎도 말라서 노랗거나 붉다. 바스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걷기 좋은 길이다. 새파란 하늘과 새파란 강줄기가 산의 경계가 없다면 하나로 봐도 좋을 만큼 같은 색이다.
굽이굽이 가파르게 오른 길은 가파르게 내려가고 느리게 오른 길은 느리게 내려가고 그런 다음 다시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니 개안마루 전망대가 나온다. 개안마루 전망대에서 웅연과 임진강을 둘러보며 겸재 정선이 그린 <웅연계람>의 배경이라는 안내판을 읽는다.
안내판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손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조선시대에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1742년 10월 보름날, 임진강 뱃놀이에 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이다. 당시 양천 현령으로 있던 그는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의 청으로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배를 탔는데, 연천 현감이던 시인 신유한(1681-1752)도 있었다. 관찰사가 당대 최고의 시인과 화가를 한자리에 불러 임진강 풍류에 나선 것이다.
이날 홍경보는 취기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고, 신유한은 시 한 수를, 겸재 정선은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바로 <우화등선>과 <웅연계람>이다.
웅연계람 제발(題跋)
是歲十月之望 同漣倅申周伯 陪觀察洪公 游於羽化亭下 盖用雪堂故事也 周伯以觀察公命作賦記之 余又畵以繼之 各藏一本于家 是爲漣江壬戌帖云 陽川縣令鄭敾書
이해 10월 보름, 연천군수 신주백(신유한)과 함께 관찰사 홍(경보) 공을 모시고 우화정 아래에서 노닐었다. 이는 ‘설다雪堂’ 고사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은 관찰사의 명을 받아 부를 지어 기록하고 나는 또 이어서 거기에 그림을 그려 각각 집에 한 본씩 소장했다. 이를 〈연강임술첩〉이라 일컫는다. 양천현령 정선이 쓰다.
( 앞부분이 소동파의 <후적벽부>와 시작하는 것이 같고 ‘설당雪堂’은 서두 “10월 보름, 설당에서 걸어서[十月之望 步自雪堂]”에서 나온 말이다. )
연강은 연천군 지역을 흐르는 임진강의 별칭이다. 연천의 ‘연(漣)’ 자는 아름다운 물의 고장 연천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글자다. 이런 뜻을 잘 알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연천 지역에 흐르는 임진강을 “연강”이라 이름 붙였다.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던 임진강은 연천군에 들어서면 서쪽으로 그 흐름을 바꾼다. 강물은 때론 급하게 굽이를 돌고 때론 완만하게 평지를 흐르며 사람과 산과 평야를 아우른다.
웅연을 내려다보며 옥녀봉으로 향해 가면, 문득 임진강과 군남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마루에 닿는다. 개안마루다. 여기에 서서 발밑을 보면 강줄기가 거대한 푸른 용의 몸짓으로 서쪽을 향해 휘돌아 움직인다. 오른편에 길게 누워있는 작은 섬이 유장한 강물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중 많은 수량이 휘돌다 보면 강바닥이 우묵하게 파여 물길이 머무는 소沼를 이루게 되는데 이 지점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웅연’ 또는 ‘괴미소’라고 부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의 풍경과 18세기 그림 속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다르다. 강 건너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어떠할지 궁금하다. 아직은 건널 수 없는 강이라 언젠가 이 강을 건너서 이 자리를 바라보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강변의 정자와 마을은 저기쯤일 것 같고, 배를 기다리거나 양쪽 강가에서 횃불을 든 사람은 여기와 저기에 서 있었을 것 같고, 화면에 시커멓게 보이는 바위는 적벽을 상상하며 그린 것 같다.
<참고자료>
겸재정선미술관
호암미술관
https://www.daum.ne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