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12

개화사(開花寺)

by 빨간사과
개화사1.jpg ( 개화사24.8×31cm, 간송미술관 소장 )

- 삼층석탑

단풍잎 가득한 개화산에 가면

산으로 오르는 안개가 되고 싶다


약사사 늙은 탑신을 닮은

긴 능선에 기대거나

새파란 하늘에 떠오른

낮달을 베고 누워

세상사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될 때

저 아래 강물 소리가 들리는 만큼

서천(西天)으로 흐르고 싶다


천지간에 혼자 남은

천년을 버틴 탑처럼 발끝에 내려앉아

강물을 굽이치고 싶다


낮달.JPG ( 약사사에서 본 낮달 )

- 개화산

개화산은 해발 128미터의 산이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김포공항, 오른쪽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개화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가양대교, 난지도(월드컵공원), 마곡대교, 대덕산, 방화대교, 망월산, 북한산, 덕양산, 노고산 등이 멀고 가깝게 한눈에 펼쳐진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오르막길을 걸으면 개화산 봉수대 터가 나온다.

지금은 군부대 터 안에 흔적만 남아있지만 개화산 봉수대는 서해로 빠지는 한강 서부와 한양을 잇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동국여지지를 살피면 전라도와 충청도의 바닷길로 이어지는 봉화를 받아 남산에 전달한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 동국여지지, 개화산 봉수

목멱산 봉수(木覓山烽燧) 동쪽으로 첫 번째는 양주(楊州) 아차산(峨嵯山)에 응하니 바로 함경도와 강원도의 봉화이다. 두 번째는 광주(廣州) 천천현(穿川峴)에 응하니 바로 경상도의 봉화이다. 세 번째는 무악 동쪽 봉우리에 응하니 바로 평안도와 황해도 육로(陸路)의 봉화이다. 네 번째는 무악의 서쪽 봉우리에 응하니 바로 평안도와 황해도 해로(海路)의 봉화이다. 다섯 번째는 양천현(陽川縣) 개화산(開花山)에 응하니 바로 전라도와 충청도 해로의 봉화이다.

木覓山烽燧 東第一應楊州峨嵯山 乃咸鏡 江原道之烽也 第二應廣州穿川峴 乃慶尙道之烽也 第三應毋嶽東峯 乃平安 黃海道陸路之烽也 第四應毋嶽西峯 乃平安 黃海道海路之烽也 第五應陽川縣開花山 乃全羅 忠淸道海路之烽也 (고전번역원 DB)

목멱산봉수대 동국여지지.jpg ( 동국여지지, 고전번역원 DB )

- 약사사, 옛날 개화사

약사사 경내로 들어서면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 그렸던 삼층 석탑은 여전히 한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그 모습이 투박한듯하면서도 날렵하다. 석탑은 일층 기단과 삼층 탑신으로 구성된 형식이다. 받침부는 사각형 지대석 위에 큼직한 사각형 기단과 판석으로 된 갑석이 놓여 있고 탑신 부분은 투박한 받침부에 비해서 날렵한 모양이다. 고려말에서 조선 초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줘 당시의 희귀한 석탑의 예로 그 가치가 커서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겸재는 양천현령 시절 이곳 개화사에 와서 개화산에 있는 지금의 약사사를 그렸다. 밋밋한 산등성이의 윤곽을 간략하게 잡은 다음 묽고 연한 빛깔을 칠하고 오솔길 사이의 소나무 숲은 짙은 먹물로 펼쳐 올라감으로써 사찰에 시점을 고정시키고 있다.

개화사4.jpg ( 개화사. 왼쪽 긴송미술관 소장, 오른쪽 개인 소장 )


개화사 그림 두 점 중 간송소장본은 1740년 무렵에 그렸다고 하는데 절 아래 초가집 세 채가 울타리에 둘러 있고 석탑 오른쪽 요사채는 ‘ㄴ’자(字) 모양이다. 이 그림보다 뒤인 1742년쯤에 그려진 개인 소장본인 개화사 그림은 요사체가 ‘ㄷ’자 구조로 돼 있다.

두 그림 모두 논이 보이나 가을걷이가 끝난 듯 텅 비어 있다. 산골짜기를 따라 논과 산의 경계를 만들며 개화사로 이어지는데 산자락 아래는 한강 변 모래사장이다.

개화약사사.jpg ( 개화산 약사사 )





<참고자료>

고전번역원 DB

겸재정선미술관

간송미술관

https://www.daum.net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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