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14

총석정(叢石亭)

by 빨간사과

총석정(叢石亭)


- 주상절리

해변에 도착한 바다가 추락하였다

파도를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다


멀리서 보면 눈부시게 아득한 절벽

낭떠러지 기둥을 잘라

번지점프를 한다


넓은 수평선이 사라졌다


( 총석정56×42.8㎝, 안종원 컬렉션 간송미술관소장 )

총석정과 그림 <총석정>

파도가 자유롭게 부딪치고 바람을 가로막을 것이 없는 드넓은 바다에 배가 떠 있다. 첫 노를 젓는 순간부터 마지막 노를 내려놓을 때까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바다의 일부분이며 바다는 우리의 전부인 것이다. 갯바위에 올라서면 세상은 경이롭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라 날마다 나를 새롭게 느끼게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위대한 수평선 앞에 선다. 둥글고 부드럽게 밀려오는 바다, 그 넓고 아득한 바다에 나는 여기 서 있다.

총석정은 지금은 갈 수 없는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 자리한 명승지다. 주상절리의 바위기둥과 절벽 끝 정자가 어우러진 경관으로 손꼽히는 관동팔경 중 하나이다. 총총하게 서 있는 바윗돌들 가운데 네 개의 돌기둥은 신라의 화랑 네 명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사선봉(四仙峯)’이라 부른다.

17세기에는 바위 형상에 주목을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총석정은 동해를 바라보는 장소로 자리매김하여 속세를 벗어난 사색과 성찰의 장으로 바뀌었다.

( 총석정 부분 )

간송미술관 소장 석정 안종원 컬렉션 <총석정>은 바위기둥과 절벽, 가운데의 정자, 먼바다를 구조적으로 배치해 공간감을 형성한다.

바람에 밀려오는 수평선의 파도가 바위를 뒤덮고 하늘을 덮는다. 바다가 바다를 다 덮는다 해도 서늘한 포말과 차가운 공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햇살 속에 반짝이는 갯바위, 모래사장, 소나무 숲에 걸려있는 파도 소리, 우리의 가슴속 기억에서 모두가 살아나서 꿈틀 한다.

바위기둥은 짧게 끊어지고 이어짐을 반복하는 붓의 획과 가로 붓질로 층리(層理)를 세밀히 묘사하여 질감을 드러냈고, 절벽은 가로와 세로획의 반복으로 단단함을 강조하였다. 파도에 묻혀 돛만 보이는 네 척의 배는 회화적 장치로, 멀고 가까운 공간적 확장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총석정 부분 )

세상의 모든 것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은 파도 소리로 들리고 파도는 보이지 않는 바람결에 따라 부딪힌다. 바다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넉넉해진다는 것을 배운다. 인간은 바다에 속해 있는 것이다.

정선의 다른 총석적 그림과 비교하면 몇 가지 다른 특징이 보인다. 네 개의 바위기둥이 일렬로 배열된 구도가 일반적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하나가 겹쳐 있어 세 개만 보인다. 또 화면 오른쪽 소나무 숲 아래 말을 메고 쉬는 인물이 묘사되었는데, 위로 겹친 소나무 가지가 인물을 가린 듯한 인상을 준다.

넘실거리는 바다 물결에는 정선 일행이 실눈으로 보았을 윤슬이, 총석정을 치는 파도가 일으킨 물거품에는 역시 정선 일행이 들었을 파도소리가 담겼을 것 같다.

( 간송미술관 보화비장전 <총석정> 안내문 참조 )


차총석정시운(次叢石亭詩韻), 안축(安軸)


千條怪石成奇峯(천조괴석성기봉)

천 개 괴상한 돌은 기이한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蒼崖煙霏水墨濃(창애연비수묵농)

푸른 벼랑에 연기는 감돌아 수묵화가 짙구나

鯨濤起海雪霜漲(경도기해설상창)

고래 물결이 바다에 일어나매 눈과 서리가 넘치고

蜃氣浮空樓閣重(신기부공누각중)

신기가 허공에 뜨매 누각이 중중하다

糢糊字沒大古碣(모호자몰대고갈)

먼 옛날 비석에는 글자가 낡아 모호한데

癭瘦根蟠何代松(영수근반하대송)

울퉁불퉁 뿌리가 여위었으니 어느 시대의 솔인가

磯邊蒻笠坐相揖(기변약립좌상읍)

여울가의 부들삿갓(낚시꾼)은 앉아서 서로 읍하고

月下羽衣招可逢(월하우의초가봉)

달 아래 깃옷(신선)은 부르면 만날 듯하다

悵望仙徒已雨散(창망선도이우산)

아득하다 신선의 무리 비처럼 이미 흩어졌는데

厭看俗子如雲從(염간속자여운종)

속된 사람들 구름처럼 모이는 것 보기 싫구나

若爲亭前伴鷗鷺(약위정전반구로)

어찌하면 정자 앞에서 갈매기와 해오리와 짝이 되어

却掃人間塵土蹤(각소인간진토종)

인간의 티끌 발자국을 쓸어버릴꼬

( 동문선 고전번역원 DB )

( 동문선 고전번역원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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