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초당(廬山草堂), 여산폭(廬山瀑)
하루 종일 말이 없는 산속에 와서 종일 혼자 사는 집을 보았다. 산줄기 흘러내린 골짜기로 폭포가 쏟아졌고 소나무 회나무 대나무를 두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집도 그림자가 들어앉을 자리가 필요한가 보다. 괴석을 곁에 둔 화분에는 석류꽃이 피고 마당에는 학이 내려와 그림자와 놀고 있다. 모두 그림자가 들어와서 생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먼발치에서 초당으로 돌아오는 동자가 작은 돌다리를 건너는 동안 연못에 핀 연꽃도 붉거나 화사하여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하루 종일 말이 없어도 산 밖으로 그림자는 나가지 않았다.
이 산 저 산 어딘가에 구름이 잠시 머물다 갈 뿐
여산초당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다. 상상 속의 이상적인 자연을 그린 관념산수화로 여산에 초당을 짓고 은거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고사를 주제로 그렸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여산초당 겸재(廬山草堂 謙齋)”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정확하게 어떤 인물을 그렸는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화면을 꽉 채운 힘 있게 움직이는 듯한 산의 형태는 정선의 특징으로 왕성한 산세의 표현을 잘 보여준다.
겸재 정선이 비록 중국 고사를 바탕으로 그렸지만, 그림 가운데 초가집과 은자의 의복, 정원의 모습은 조선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렸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다.
은자가 사는 곳은 고요해 보이는데, 둘러싼 산세가 강렬하다. 짙은 먹색과 청록색으로 표현한 산은 뭉게구름 형상으로 솟구쳐 올라가고, 절벽은 물을 향해 쏟아질 듯 압도적이다. 짙푸른 산수 속에서 은자는 분홍빛 벽을 두른 초당에 앉아 있고, 초당의 난간과 학의 머리는 붉으며, 멀리 동구 밖에서 초당으로 올라가는 동자의 어깨에 멘 봇짐도 붉다. 짐보따리에 사용된 붉은색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초가집, 울창한 대숲, 연꽃이 만발한 연못, 앞뜰에서 유유히 노니는 학 등은 조선 18세기 문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품격 있는 은거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여산(廬山)은 중국 강서성(江西城) 구강(九江) 서남쪽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광려산(匡廬山), 광산(匡山)으로도 불린다. 여산은 수많은 문인, 학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 이백(李白)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 은거한 인물로는 주나라 무왕 때 현자인 광속(匡俗),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등이 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수직으로 떨어질 때
뒤돌아볼 수 없는 폭포 소리가 들린다
무너진 물살은 까무러치고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 물보라
그 아래 완강하게 버틴
무지개를 움켜쥐고
다시 돌아가지 못해 멈출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공중에 몸을 맡긴다
폭포는 폭포의 아득한 비명을 들으며
폭포를 뚫고 폭포 속으로 사라진다
이 그림은 이백(李白)의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라는 시를 그린 것으로 폭포가 흐르는 ‘석문산(石門山)’은 여산 서남쪽에 있다.
그림 <여산초당>에서 색채를 구사한 것과 달리 <여산폭>은 수묵을 위주로 호방하게 그렸으며 시원한 골격의 암벽은 예리한 붓으로 죽죽 그어 내려 정선 특유의 강한 선으로 묘사하였다. 거대한 석벽 가운데로 엄청난 물줄기가 쏟아지고 화면 우측 여백에 있는 7언의 제시처럼 절벽 사이 폭포의 물살이 세차게 떨어지고 있다. 그 기세가 생생하다. 맞은편 언덕에는 소나무가 보인다.
長松鬱立千兵列(장송울립천병렬)
울창하게 서 있는 큰 소나무는 천 명의 병사가 도열한 듯하고
怒瀑急噴萬馬喧(노폭급분만마훤)
급하게 내뿜는 성난 폭포소리는 만 마리 말의 울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