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성평사(錦城平沙)
시월은 벌써 지나 십일월
언덕에서 억새가 흔들린다
억새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알았다는 듯이 몰랐다는 듯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꽃이 져서
떨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누렇게 마른 억새가 가을의 기분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바람개비만 잘 돌아가도 그게 바람인 줄 알았다
분청사기 귀얄무늬를 닮은 억새꽃은
공원길 여기저기 쪼개지고 깨지고 찢어져
매립지 깊숙이 묻혀있는 나와 함께 살았었던 목숨들
천년이 지났어도 만년이 지났어도 구름처럼 다시 살아서 나오길
온몸으로 살아나길 꿈을 꾼다
바람이 흔들리면 억새는 길을 열어놓고
젖은 뿌리를 말리고 한강을 곁에 둔 내가
하늘공원 꼭대기를 배경 삼아 내려온다
지하철역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걷는다
금성평사(錦城平沙)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난지도 주변을 그린 그림으로, 겸재 정선이 지금의 성산동인 금성산과 난지도 주변의 모래벌을 양천현아 궁산에서 바라보고 그린 것이다. 난지도가 있는 이곳은 홍제천 불광천 등 여러 개의 물줄기가 흘러내린 드넓은 저지대였고 한강의 폭이 넓어지므로 ‘서호’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강 깊숙이 밀고 들어온 난지도의 모래벌을 화면 가운데 펼쳐놓으면서 와우산 목멱산 선유봉 탑산 등을 원경으로 처리하였다.
모래섬인 난지도의 크기와 모양은 홍수를 겪을 때마다 달라져서 나눠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여 일정치 않았다. 그 형상이 마치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오리섬’ 또는 ‘압도(鴨島)’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초도(中草島)’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돛단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금성평사 그림과 쉼 없이 차량으로 이어지고 있는 성산대교 월드컵대교와 일산으로 가거나 옥수동 쪽으로 가는 강변북로를 비교해 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의 향기가 나는 섬이다.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자생하던 섬이었고 악취가 나는 생활 쓰레기를 매립한 섬이었고 그러다가 다시 난초와 지초의 향기가 나는 섬이 되었다.
20세기 후반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과거를 덮어버리고 그 위에 흙을 모아 쌓아 올리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야생의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 공원의 역할을 한다. 지금은 환경문제와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에 대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지난가을에 난지도는 억새축제로 아름다웠다. 억새의 빛으로 물든 생명의 빛이 찬란하였고 빛의 숨결이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欄頭來晩色(난두래만색)
난간머리 젖어드는 저녁 빛
十里夕陽湖(십리석양호)
십리 석양호(夕陽湖)요
拈筆沈吟久(염필침음구)
붓 들고 오래 읊조리니
平沙落雁圖(평사낙안도)
평사낙안도(平沙落雁圖)로다
참고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고전번역원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