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도(老柏圖)
아파트 단지 제방길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대로변 소음을 막기 위해
처음 아파트를 지으면서 만든 제방
어린 감나무 떡갈나무 잣나무 소나무 향나무를
그 위에다 순서 없이 심었다
제방길을 열어젖히면 동네 한 바퀴
나무들 꼭대기로 나비가 날고
오랫동안 바람에 흔들려도 새들이 와서 앉았다
지난여름 이후로
길 가장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진 감나무
도토리가 익어가던 떡갈나무는 쓰러졌고
가지 높은 잣나무는 베어냈고
소나무를 뽑은 건 가을부터다
어린잎이 돋을 때마다
자동차 바퀴 미세먼지 사이에서
푸른 잎이 새잎처럼 나오던
나무가 사라지면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집을 더 높이 짓는다는 걸 알았다
거기에 두고 온 어린나무는 자라면서
향나무가 된 것도 지금인 걸 알았다
한겨울 북쪽에서 몹시 차가운 바람이 불면 몸을 움츠리게 되고 시려오는 고통은 견딜 수 없게 한다. 얼음은 싸하게 냉기가 돈다. 싸락눈이 내리면 더욱더 그렇다.
집으로 가는 길에 꽁꽁 언 얼음 바닥이 보일 때는 넘어져 미끌어질까봐 조심하며 걷는다. 바람이 분다. 눈이 두텁게 쌓인 길가의 나무줄기를 흔든다. 서늘한 눈송이가 떡가루처럼 쏟아지고 시퍼런 나뭇가지들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듯 눈송이를 날린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길을 걷다 살얼음에 미끄러지면 사족보행을 하던 내 몸은 뒤로 넘어지면서 엉망진창이 된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도 나뭇가지를 올려다본다. 나무의 향기가 눈송이처럼 쏟아진다. 코 끝을 스치며 나무들의 향기가 퍼진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발과 꽁꽁 언 얼음장과 뼛속 깊은 추위는 겨울의 모습이다. 나무들은 춥고 시린 겨울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의 가슴에 사라지지 않는 향기를 품고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노백도의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어떤 이는 잣나무라 하고, 다른 이는 측백나무라 하며, 또 다른 사람은 향나무라고 한다. 그림만 보고 특정 나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나무의 전체적인 줄기의 수형이나 이파리를 보면 향나무라 짐작된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이며 우리나라의 중부 이남 의성, 삼척,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 · 노송나무로도 불린다. 향나무라는 이름은 나무에서 향내가 나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향나무의 향이 부정한 것을 청정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향나무는 어릴 때에는 원뿔꼴로 자라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 가지 모양이 바뀐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는 가지가 겹겹이 뒤틀려서 수형이 독특해진다.
한자 이름은 회백(檜柏), 향목(香木), 회(檜), 원백(圓柏)이다.
향나무 줄기는 향기로워서 예로부터 제사와 같은 신성한 의식에 향불이나 향료로 썼으며, 아름다운 붉은색이어서 귀한 가구나 조각품의 목재로도 썼다. 향나무로 만든 가구에 책이나 옷을 넣으면 벌레가 슬지 않고, 베개를 만들어 베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굵은 붓질로 나무의 질감을 부드럽게 드러내면서 시퍼런 잎사귀를 짙은 농묵으로 풍성하게 나타냈다. 입체감을 살리면서 중첩된 붓질로 주름잡은 나무껍질의 질감이 촘촘하다. 먼저 구불거리는 줄기와 가지를 따라 잎은 엷은 물감으로 칠하고 그 위에 잎 하나하나 점을 가득 찍어 묘사하였다.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가지를 뻗은 잎이 왕성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나무의 등 굽은 모양이 초서체(草書體)로 쓴 '목숨 수(壽)’ 자(字)와 비슷하여 장수(長壽)를 형상화하였다.
謙齋筆法玅通靈(겸재필법묘통령)
겸재의 필법이 현묘하여 신령과 통하니
百尺盤松老釋形(백척반송노석형)
백척 반송은 노승(老僧)의 형상이네
持贈故人良有意(지증고인량유의)
가져와 준 옛 친구 참으로 뜻이 있으니
歲寒心事也能靑(세한심사야능청)
세한의 마음은 푸르리라
大來持贈禮伯氏(대래지증예백씨)
대래(심능태)가 예백님께 직접 전해주다
<참고자료>
겸재정선미술관
리움미술관
호암미술관
나무사전(강판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