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그림 속을 걷다 3

사직송(社稷松)

by 빨간사과
사직송1.jpg ( 사직송 61.8×112.2cm 고려대박물관 소장 )

- 소나무

바늘 같은 솔잎이 푸르다

솔잎 하나하나가 무성하도록

솔잎 하나가 푸르다


하루에 몇 번씩 꿈틀거려 굽어진 등

저렇게 등은 굽어져야 한다


천천히 등이 구부러질 때 솔잎은 푸르다


- 소나무의 시간

소나무는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다. 소나무를 바라보면 줄기, 뿌리, 잎, 껍질 뿐만 아니라 그 위엄과 푸르름이 나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찬사를 사라지지 않게 한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소나무목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수다. 좁은 의미로는 동아시아와 연해주에서 자생하는 적송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북미와 유럽 등 북반구 온대에서 아한대 지역에 걸쳐 자생하는 소나무 속의 종들을 가리킨다.

줄기와 색깔에 따라 적송 · 홍송 · 흑송 · 해송 · 곰솔 · 백송 등으로 구분한다. 잎의 개수에 따라 이엽송(二葉松)인 곰솔 · 반송 · 해송 · 소나무, 삼엽송(三葉松)인 리기다소나무 · 백송, 그리고 오엽송(五葉松)인 잣나무 등으로 나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늘 푸른 낙락장송(落落長松)의 모습은 변함없는 충절을 상징한다. 그리고 십장생에 해당하면서 세한삼우라 하여 대나무, 매화나무와 더불어 높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수천 년이 흘러도 소나무는 변함없이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나무다. 그 소나무는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워주고 겨울이면 이불처럼 덮어준다.

사직송1.jpg ( 사직송 부분 )

- <사직송>

우리에게 오래된 소나무는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천둥번개가 치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세계와 수많은 경이로움 속에서 솔씨와 솔씨의 껍질 속에서 생명의 기적을 발견한다. 씨앗이 발아하여 잎이 나고 뿌리가 깊게 자라면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놀라움과 신비로움은 전설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 완성이 끝나면 소나무는 인간세계에서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 겸재 정선이 그린 사직단 소나무는 지금 사직단에 남아 있지 않다. 자연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직송>의 그림은 단순하다. 이 그림을 보면 화면 전체에 배경이 생략된 반송 한 그루뿐이다. 겸재 정선이 경복궁 옆에 있는 인왕산 아래 사직단의 늙은 소나무를 보고 그린 것이다.

용이 하늘로 승천할 듯 우람하고 힘차기보다는 가지들이 크고 오래돼서 세월의 무게를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쇠한 모습이다. 기품 있고 고고한 자태 대신에 휘어지고 마르고 뒤틀어진 몸통으로 바닥을 짚고 겨우 일어선 듯하다. 지지대를 세워놓아야만 늘어진 가지를 들 수 있는 늙은 나무다. 소나무의 구불구불한 형태와 사방으로 퍼진 모습은 그래서 더욱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로 솔가지 하나하나를 그려낸 정밀한 표현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겸재 정선의 솜씨가 무르익던 50대 중반에 제작한 이 <사직송>은 그의 소나무 그림 중 가장 사실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최대 수장가의 한 사람인 김광수의 청으로 그려준 <사직송도>를 연상시킨다. 김광수는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정선에게 그림을 주문하곤 하였는데, 1728년에는 53세의 정선에게 <사직송>을 그려줄 것을 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사직송> 역시 김광수의 청으로 그린 작품으로 여겨진다.

예천석송령444.jpg ( 예천 석송령 )

겸재 정선이 그린 <사직송>은 고사(枯死)하였고 그와 비슷한 생김새의 반송이 경북 예천에 있는 석송령이다. 석송령의 줄기 둘레는 4.2m, 높이는 11m에 이른다. 현재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룰 정도로 가지는 동서 19m, 남북 26m로 길게 뻗어있으며 겉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석송령 안에서 보면 줄기와 가지가 굳세고 우람하여 거대한 용이 뒤틀리고 꿈틀거리는 것 같다. <사직송>처럼 늘어진 가지가 처지지 않도록 수십 개의 지지대를 받쳤다.

노송영지.jpg ( 노송영지도103×147cm 송암미술관 소장 )

-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소나무의 삶, 인간의 삶, 모든 삶은 죽음으로 가는 한 부분이다. 살면서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에 그리고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두루미, 거북, 해, 산, 구름 등과 같은 신령스러운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이 80세이던 1755년 가을에 노송(老松)과 영지(靈芝)를 주제로 그린 것이다. 화면 가득히 하늘로 승천하듯이 용처럼 꿈틀대는 소나무와 그 아래에 힘 있게 자라 나오고 있는 영지가 배치되어 있다. 소나무와 영지는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 중의 하나이다. 영지버섯은 <신농본초경>과 <본초강목>에서 장기간 복용해도 해가 없는 약으로 분류되는 등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돕는 불로장수 약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소나무는 가지를 좌우로 늘어뜨린 채 하늘로 곧게 뻗고, 세월을 이긴 옹이 자국이 곳곳에 난 줄기는 늙은 소나무의 멋과 굳센 생명력을 보여준다. 모든 색깔 중에 마지막으로 보인다는 검은색, 소나무는 그 검은 먹의 농담으로만 그려져 고고한 멋을 풍긴다. 여기에 붉은 영지버섯을 곁들였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을해(乙亥) 추(秋)’ ‘겸재팔십세작(謙齋八十歲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아래에 ‘원백(元伯)’이라는 낙관이 있는데, 원백 낙관은 75세를 전후로 사용하였다.

<노송영지>는 정선의 소나무 그림 중 크기가 크고, 화풍이 완숙기에 이른 말년에 제작돼 그의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참고)

호암미술관

겸재정선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송암미술관

https://ww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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