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洗劍亭)
경복궁에서 인왕산 옆 창의문을 나온 건
문수봉, 비봉, 북악산이 세검정을 둘러싼 건
북쪽 능선과 남쪽 능선의 물이 만나 하나가 되는 건
홍제천에서 모래내를 지나
한강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
크고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물줄기가 맑다
물결이 서늘하다
물소리가 가까운 건
물방울이 둥글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바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바위에 앉은 나를 그윽하게 만든
오랫동안 닳고 닳은 바위에 앉아 내가 그림을 그린
넓적하게 펼친 바위가 하얀 꽃밭을 만든다
평생 먹을 간다
붓을 들고
지루하기 짝이 없을 선을 긋고
점을 찍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반복은 싫지 않다
높고 낮은 바위를 따라 물가로 내려앉은 건
내가 늙은 말을 타고 온 건
평생지기 사천 이병연과 탁족을 하고 싶어서다
당신을 위해 벼루에 먹을 가는 당신처럼
당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당신처럼
당신을 위해 마음을 쏟고 있는 당신처럼
당신을 위해 시를 쓰는 사천 이병연처럼
골짜기에 돌기둥을 세웠네
세검정과 잘생긴 바위와 맑은 물줄기 사이에 역사를 끼웠네
칼을 씻고 씻듯 또 씻어야 할 것이 사초(史草)라서
한 시대의 실록 편찬이 끝난 사초라서
초초본과 중초본을 사초라 불러서
다시 세초(洗草)라고 이름하였네
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흐르는 물에 종이를 닦아야 했던
물이 흐르지 않는데도
흐르는 물에 먹을 풀어내야 했던
궁금한 것이 많은 지나간 왕의
시간의 비밀을 지켜야 했던
맑은 물이 너럭바위 아래로 흐른다
초본을 방망이로 잘게 찢는다
물에 텀벙 잠가 먹물을 뺀다
물 위에 남은 글자를 지워야 한다
바위 위에 종이를 널어야 한다
역사가 보이는 저 햇살 아래
지나간 시간을 말려야 한다
실록청(實錄廳)이 아뢰기를, “전에는 실록을 찬집해 낸 뒤에 총재관 이하가 창의문(彰義門) 밖 차일암(遮日岩)에 가서 그 초본(草本)을 저며서 물에 담가 먹 자국을 씻어 해조에 보냈는데, 이것을 세초(洗草)라 합니다. 구례(舊例)대로 거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르고, 이어 하교하기를, “구례대로 사연(賜宴)하라.” 하였다.
實錄廳啓曰 在前實錄纂出後 摠裁官以下往彰義門外遮日岩 取其草本 剉破沈水 洗其墨迹 送于該曹 謂之洗草 請依舊例擧行 從之 仍下敎曰 依舊例賜宴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이 흐르는 물이다. 그 물이 조금만 맑았다면 깨끗했으면 한다. 햇살의 기운을 받아 옛 기억이 생각났으면 한다.
코끝에 오염된 물 냄새가 퀴퀴하게 올라오는 건, 생활하수가 흐르는 건, 스티로폼과 라면 봉지가 물결 위로 윤슬처럼 반짝이게 할 뿐.
길을 건너갔다. 길을 건너왔다. 총융청(摠戎廳), 조지서(造紙署), 탕춘대(蕩春臺) 표지석을 지나 바위 사이 물소리를 그냥 흘려보내자 대로변 방지턱에 걸린 자동차 바퀴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사람 사는 마을에 가까울수록 냄새가 난다. 지금도 시궁창 냄새가 난다. 이상 기후 열대야의 꿉꿉한 냄새가 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쉰내가 나고
곰팡이 세균 냄새, 시큼한 냄새, 텁텁한 냄새가 더 많은 건, 올여름의 일이다
1791년 여름, 다산 정약용이 지인들과 함께 세검정에서 비를 맞으며 술을 마시고 읊은 시가 있다.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가 막 내릴 때는 사람들이 수레를 적시면서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아니하고, 비가 갠 뒤에는 산골짜기의 물도 이미 그 기세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정자는 근교에 있으나, 성 안의 사대부 중에 정자의 뛰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
신해년(1791, 정조 15) 여름에 나는 한혜보(韓徯甫) 등 여러 사람과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뜨거운 열기가 찌는 듯하더니 검은 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이다. 제군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罰酒) 열 병을 한꺼번에 주겠다.”
하니, 모두들,
“이를 말인가.”
하였다.
이리하여 마부를 재촉하여 나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자 빗방울이 서너 개 떨어졌는데 크기가 주먹만큼 하였다. 말을 달려 정자의 밑에 이르자 수문(水門) 좌우(左右)의 산골짜기에서는 이미 물줄기가 암수의 고래[鯨鯢]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고, 옷소매도 또한 빗방울에 얼룩졌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수목은 이미 미친 듯이 흔들렸고 한기(寒氣)가 뼈에 스며들었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초석(楚石)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오들오들 떨려 편안치가 못하였다.
내가 묻기를,
“어떻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고 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하며 즐겼다. 조금 있자니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산골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 천태만상이었다. 서로를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한참 지나자 심화오(沈華五)가 이 일을 듣고 정자에 뒤쫓아 왔으나, 물은 잔잔해진 뒤였다. 처음에 화오(華五)는 같이 오자고 하였으나 오지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롱하고 욕을 해댔다. 그와 함께 술을 한 순배 마시고 돌아왔는데 그때 홍약여(洪約汝)ㆍ이휘조(李輝祖)ㆍ윤무구(尹无咎) 등도 함께 있었다.
遊洗劍亭記
洗劍亭之勝 唯急雨觀瀑布是已 然方雨也 人莫肯沾濕鞴馬而出郊關之外 旣霽也 山水亦已衰少 是故亭在莽蒼之間 而城中士大夫之能盡亭之勝者鮮矣 辛亥之夏 余與韓徯甫諸人 小集于明禮坊 酒旣行 酷熱蒸鬱 墨雲突然四起 空雷隱隱作聲 余蹶然擊壺而起曰 此暴雨之象也 諸君豈欲往洗劍亭乎 有不肯者 罰酒十壺 以供具一番也 僉曰 可勝言哉 遂趣騎從以出 出彰義門 雨數三點已落 落如拳大 疾馳到亭下 水門左右山谷之間 已如鯨鯢噴矣 而衣袖亦斑斑然 登亭列席而坐 檻前樹木 已拂拂如顚狂 而洒淅徹骨 於是風雨大作 山水暴至 呼吸之頃 塡谿咽谷 澎湃砰訇 淘沙轉石 渤潏奔放 水掠亭礎 勢雄聲猛 榱檻震動 凜乎其不能安也 余曰 何如 僉曰 可勝言哉 命酒進饌 諧謔迭作 少焉雨歇雲收 山水漸平 夕陽在樹 紫綠萬狀 相與枕藉 吟弄而臥 有頃沈華五得聞此事 追至亭 水已平矣 始華五邀而不至 諸人共嘲罵之 與之飮一巡而還 時洪約汝 李輝祖 尹无咎 亦偕焉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14卷十四 )
<참고자료>
고전번역원 DB
겸재정선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daum.ne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