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환도(楊花喚渡), 선유봉(仙遊峰)
양화환도楊花喚渡, 선유봉仙遊峰
양화환도楊花喚渡, 선유봉仙遊峰
양화환도楊花喚渡, 선유봉仙遊峰
잃어버린 땅의 역사를 기억한다.
양화진(楊花津)은 양화도(楊花渡)라고도 하는데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 시대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다.
이 지역은 한강 가운데에서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많기로 이름났던 곳이다.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는 잠두봉(蠶頭峯)은 양화나루 옆에 솟아 있는 20m 높이의 암벽으로 근래에는 절두산(切頭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양화진은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방어기지로 활용되었으며 개화의 선각자였던 김옥균(金玉均)이 처형된 곳이며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가 남아 있다.
현재는 양화대교와 강변북로, 지하철 2호선 등이 지나고 있어 여전히 교통상 중요 지역의 하나이다. 특히 김포공항, 강화, 인천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상에 있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이나 교통 요지로서 중요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림에 부친 사천 이병연(李秉淵)의 시다.
前人喚船去(전인화선거)
앞사람이 부르면 배가 가고
後客喚舟旋(후객환주선)
뒷 손님이 부르면 배가 돌아온다
可笑楊花渡(가소양화도)
우습구나 양화나루
浮生來往環(부생래왕환)
덧없는 인생이 왔다 가는 것 같다
강을 휘돌아 가면 갈매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루터가 시작되는 곳에선 어부의 뱃노래가 울리고 어느 계절이든 아랑곳없이 폭염과 폭풍을 견딘 풍경이 보이고 먼 데서 흘러온 강물의 보호막은 모래톱이니까 보호막의 두께를 알고 있는 버들잎이 휘청하며 흔들린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켜본 것처럼, 네가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남겨진 것이 없고 넘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강에서 건너야 할 길을 찾는다
선유봉을 휘도는 강, 뱃사공이 나를 불러주는 강, 물속 깊이 장엄하게 흐르는 강
내가 나에게 벗어나고 싶은 강은 없고, 빨리 건너려 할수록 마음처럼 움직이는 강은 없고, 뱃사공을 부르면 배를 건네줄 사공은 가까이 있고, 눈길을 멀리 두면 아득하게 사라지는 수평선
버들꽃이 물 위에 떨어지자 강은 물밑 바닥에서 숨죽이며 흐른다
양화진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세종 2년을 보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도 있다.
흥복사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또 바람·우레·비를 맡은 신에게 비를 빌고, 삼각산·목멱산·한강·양화진에도 비를 빌었다.
祈雨于興福寺(기우우흥복사) 又祈雨于風雲雷雨(우기우우풍운뇌우) 三角木覓漢江楊津(삼각목멱한강양진)
강이 있고 산이 있고 아래쪽에 선착장이 있고 강을 넘어가거나 넘어오는 당산철교가 있고 왼쪽에 양화대교가 있고 앞에는 여의도가 보이고 강의 물줄기를 끌고 가거나 길게 늘이거나 바다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서쪽으로 흐르는 강
나는 네가 타고 내렸던 나를 따라오는 당산철교를 뒤돌아서서 아무렇지 않게 보면 자꾸 따라오는 강물을 바라보면 시간이 켜켜이 쌓인 오늘 하루의 역사는 기다리지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고 오지도 않을 바다로 간다 나는
얼마를 더 쉬지 않고 걸어야 잠두봉에 오르나 아직 강으로 스며든 길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 산봉우리에 오를지 닿을지 얼마를 더 걸어가야 하나 나는 강에서 가까운 잠두봉을 본다 역사의 맨 처음으로 되돌려 놓고 싶은 봉우리다 얼마를 더 지나야 잠두봉에 오르나
당산철교 이쪽에서 강변북로 양쪽으로 교각 아래 강물이 흐르고 누에가 제 입에서 실을 뽑아 제 목을 칭칭 둘렀다면 잠두봉은 절두산이 되어 절두산의 절벽부터 순교자의 잘린 머리가 한강시민공원으로 굴러 떨어지는 중이다 당산철교 이쪽에서 강변북로 양쪽으로
조선시대 선유봉은 강 북쪽의 잠두봉(지금의 절두산)과 함께 뱃놀이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많은 문인들이 배를 띄우고 선유봉과 잠두봉을 오가며 시를 짓고 술을 즐겼다.
1965년 양화대교가 개통된 후 한강 개발이 시작되면서 선유봉은 선유도라는 섬이 됐다.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는 배를 이용하여 한강에서 하류로 내려갔다가 임진강을 거슬러 연천군 징파리 강가의 징파나루까지 주위를 둘러본 기행문이다. 빗속에서 선유봉을 구경했다는 내용과 잠두봉, 양화나루, 공암, 파릉, 행주산성 등의 명칭이 나온다.
노를 저어 서강(西江)으로 내려가 밀물이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릉(子陵)이 술을 사가지고 찾아왔기에 서로 마주 앉아 매우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와 작별한 후 잠령(蠶嶺) 아래에 이르러 빗속에 선유봉(仙遊峯)을 구경하고 양화(楊花)나루를 지나 행주산성(幸州山城) 아래에 이르렀다. 산성 위에는 계사년의 승첩비(勝捷碑)가 있다. 배 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 밀물 소리를 듣고 배를 띄우니 조수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얼마 후 빠지는 조수를 타고 공암(孔巖)으로 내려가 파릉포구(巴陵浦口)에 이르니, 바다와 근접하여 강물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소금기가 있었다.
棹下西江 待潮退 子陵沽酒來見 相對甚懽 旣別去 至蠶嶺下 雨中觀仙遊峯 過楊花渡 至幸州山城下 上有癸巳勝捷碑 宿於舟中 聞早潮起 船則潮水正滿 俄而乘潮落 下孔巖 至巴陵浦口 近海江水始濁 有鹹氣
<참고자료>
고전번역원 DB
겸재정선미술관
간송미술관
https://www.daum.ne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