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폭(朴淵瀑), 박생연(朴生淵)
박연폭포 흘러내리는 물은 범사정으로 감돌아든다
에헤 에헤야 에헤 에루화 좋구 좋다
어러럼마 디여라 내 사랑아
간 데마다 정들여 놓고 이별이 잦아서 못 살겠네
에헤 에헤야 에헤 에루화 좋고 좋다
어러럼마 디여라 내 사랑아
<개성난봉가>라고 부르는 민요인데 <박연폭포>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박연폭포를 찾아가기 위해 어느 해 7월인가 그때로 기억이 되는데,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개성난봉가를 들으면서 이웃 고을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석, 건, 칠, 재, 상, 해, 삼, 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훈장들과 한양도성을 거쳐 파주 도라산역에 모였다. 어떤 이는 말을 타고 왔다 하고, 어떤 이는 나귀를 타고, 어떤 이는 장모와 딸을 데리고, 어떤 이는 가마를 빌려서 왔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서 가는 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학동들의 과거시험과 학업에 대해 걱정하면서 이동하기 편하도록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에서 다시 개성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낯설지만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낯익은 모습이다. 우리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성 시내를 구경하고 선죽교, 숭양서원, 성균관 등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 중에 맨 처음 내가 보고 싶었던 박연폭포로 가는 골짜기는 연둣빛에 연두를 더한 짙은 초록이다. 7월, 울창하게 우거진 숲의 서늘한 기운과 훅 끼치는 냉기를 느끼며 걸었다. 먼 데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우렁차고 곧아서 천둥과 벼락이 치는 줄 알았다. 지금도 박연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을 생각하면 까마득한 공중을 뚫고 수직으로 꽂히는 소리가 하도 커서 기를 세우고 세를 과시하듯 내려치는 것 같다. 폭포의 높이는 37m라는데 박연폭(朴淵瀑)의 그림보다 커 보이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야무진 모양을 갖춰서 첫눈에 반하였다. 이렇게 멋지고 잘생긴 것이 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폭포라니 폭포수가 장관이다. 장엄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공간으로 빨려드는 것 같다. 훈장들은 함께 사진을 찍거나 각각 흩어져 안내원을 따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여기저기를 구경하느라 바쁘다.
폭포 위쪽에 박처럼 생긴 커다란 못이 있는데 이를 박연이라 부르며 가운데 도암이라는 반월형(半月形)의 바위가 있다.
경쾌한 폭포 줄기 아래로 고모담이라는 넓은 못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명이 설 수 있는 바위가 있는데 대룡암이라 부른다. 이 바위에는 초서체로 이백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중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날아서 내리 꽂힌 물줄기는 삼천 척,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마치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다’라는 두 구절이 새겨져 있다. 풍광이 수려한 곳에서는 전설이 빠질 수 없으니 사람들은 황진이가 썼다고 말하기도 하며 양사언의 글씨라고 말하기도 한다. 폭포의 쏟아지는 한 묶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바위 글씨를 감상하고 함께 온 훈장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二首), 기이(其二) 이백(李白)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가 일어나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멀리 폭포를 보니 긴 강을 걸어놓듯
飛流直下三千尺(비유직하삼천척)
날아서 내리 꽂힌 물줄기는 삼천 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마치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다
눈앞에 거대하게
다가온 암벽
깊이도 넓이도 없이
아찔하다
한 다발 흑백의 수묵 같은
바위 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천둥소리
낮은 곳으로 뛰어내리는 소리
우렁찬 폭포 소리
휘몰아친다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얼얼하게
수직으로 꽂은 바윗덩어리
쏟아지는 물줄기가
바위 항아리 속에서 숨을 쉰다
단풍 든
온 산의 능선을 뒤틀면서
소리가 떨어진다
소리가 구른다
소리가 퍼붓는다
소리가 흐른다
소리가 보인다
소리가 호흡한다
까마득한 절벽에서
단풍잎을 날리는 소리
겸재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는 3점이 전하는데, 제목을 박생연이라 쓴 90.8×35.3cm의 크기의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과 박연폭이라고 쓴 119.5×52cm 크기의 개인 소장품이다. 그리고 비단에 그린 화첩용 소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