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적연(禾積淵)
돌이었다. 부서진 햇살이 모여
중생대 백악기를 지난 바위
모래밭에 우뚝 솟은 화강암 덩어리
한탄강 수평선이 보이는 꼭대기가 돌이었다
지질학자의 말에 의하면 명성산 아래 하천이 깎이고
깎여서 생겨난 바위
깊고 푸른 물살이 발목 아래 스치면서 흐르다
내 사랑도 깎여서 저 멀리 가버려
먼 물살 위에 가만히 스며들면
해와 달과 별이 바람에 부딪히고
흰 새가 날아와 앉으면 내 사랑은
강의 흐름을 이룬 영롱한 빛깔들이 모인 계절
바위 꼭대기에 앉아
돌을 만들었다
돌이었다
흰 새는 바위 위에 앉아 물을 붓고
온몸으로 퍼지는 물의 소용돌이
골짜기에서 내려온 돌의 그림자가 보인다
어디서 오는 돌인지
물소리가 경쾌하다
화적연에서 한탄강을 보면 탁 트인 풍경이다. 어디에 서서 바라보든 화적연은 웅장한 느낌이다. 강물과 바위와 모래와 푸른 하늘과 맞닿은 계절의 중심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물살은 굽이쳐서 여울 따라 흐른다. 한탄강 물결이 구슬처럼 흔들린다. 발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시원하다.
화적연(禾積淵)은 지질학적으로 말하면 한탄강변에 13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이다. 주변은 하얀 모래밭과 커다란 쟁반 위에 강물이 둥글게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화적연은 화강암의 바위가 마치 볏단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머리를 위로 치켜세운 모습은 물속에서 거북이 고개를 들거나 솟구쳐 오른 용의 머리를 닮았다.
철원과 연천을 지나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한탄강은 수십만 년 전 화산활동 때 계곡을 메웠던 현무암 지대를 깎으면서 직탕폭포와 고석정을, 포천으로 넘어오면서 화적연을 만들었다. 강이 넓고 크게 휘돌아나가면서 생긴 연못과 그 중심에 솟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화적연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시대의 것으로 알려졌고 주변에는 주상절리와 화산석을 비롯하여 여러 바위와 돌들을 강변에서 볼 수 있다. 하천의 흐름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현무암의 침식면, 하천침식에 의한 포트홀 및 그루브 등의 지질구조 및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침식과 풍화로 만들어진 다양한 무늬와 생김새에서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하여 많은 선비와 화가들이 찾았으며 시인묵객들이 시와 그림을 남겼다.
사암 박순, 이경석, 이서구, 이항로, 최익현, 미수 허목의 <화적연기>, 서계 박세당의 <서계문집> 등에서 시와 글이, 겸재 정선, 이윤영, 정수영 등이 그린 그림이 남아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화적연의 바위는 붓자국을 둥글고 유연하게 옮겨 우뚝한 듯 몸을 엎드린 채 고개를 쳐든 듯 그 자체로 멋진 그림이다. 주상절리와 산의 모습을 변형시켜 이동하였고 어른 두 사람과 어린아이 한 명을 그림 속에 넣어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박순朴淳의 <사암선생문집思菴先生文集>에 실린 시의 첫 구처럼 ‘용이 승천하듯 높은 바위는 구름으로 솟아 있는(穹石入雲龍矯矯)’ 화적연은 국가에서 거행하는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다. 가뭄이 극심할 때 조정에서 종신(宗臣), 중신(重臣), 재신(宰臣) 등을 보내 제례를 지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또 종신·중신·재신을 보내 관악산(冠岳山)·용산강(龍山江)·저자도(楮子島)·박연(朴淵)·화적연(禾積淵)·도미진(渡迷津)·진암(辰巖) 등지에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다.
壬申又遣宗臣 重臣 宰臣 祈雨于冠岳山 龍山江 楮子島 朴淵 禾積淵 渡迷津 辰巖等處。
(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숙종 21년 )
숙종의 “서증임양군(書贈臨陽君)”은 임양군 이환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돌아온 뒤 준 시이다.
俗傳禾積仍留名 (속전화적잉유명)
세속에 화적연으로 이름이 전하는데
往古來今著異靈 (왕고내금저이령)
옛날부터 지금까지 영이함을 드러냈네
二淵勝槩何居一 (이연승개하거일)
두 못의 승경 중에 어찌 하나를 차지했나
也覺君遊氣爽淸 (야각군유기상청)
그대가 유람함에 기분이 상쾌함을 알겠네
면암 최익현의 시에서도 화적연의 화강암 바위는 용, 뒤에 있는 바위는 볏가리에 비유하고 있다.
화적연(禾積淵)
神龍幻石走深淵 (신룡환석주심연)
신룡이 돌이 되어 깊은 못에 들어가니
禾積輪囷別有天 (화적륜균별유천)
쌓인 볏단이 높아 별천지를 이루었네
緩步經由蒼壁下 (완보경유창벽하)
창벽 아래로 조용히 걸어서
朗吟坐久碧灘前 (낭음좌구벽탄전)
여울 앞에서 읊고 앉았네
虛名無補民生食 (허명무보민생식)
헛된 명망은 민생에 도움이 없고
壯蹟猶勞客袂連 (장적유로객몌련)
장한 유적은 나그네 옷깃이 연했네
賴爾潛功時作雨 (뇌이잠시작우)
적기에 비를 내려 주는 잠공은
能令萬物各欣然 (능령만물각흔연)
만물을 즐겁게 자라게 하네
고전번역원 DB
간송미술관
국가지질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