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입니까? [5편]

당신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N가지 주제 - 어머니의 최근 편

by 페트라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했을 때, 엄마는 저렇게 답했다. 당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답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엄마와 싸운다. 엄마는 나한테 잘못한 게 맞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은 고집을 넘어선 그 아집이 자식새끼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 모르는 엄마의 이기심을 감내하기엔 아직 내가 정제가 덜 되었나 보다.


부모는 왜 자식에게 진짜 사과할 때를 모르는 걸까. 자존심인 걸까. 아니면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일까. 본인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모든 게 무너지는 걸까. 내가 29살 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비교해 봐도 그 마음은 대체 어느 감정으로부터 생기는지 잘 모른다. 전문가라면 알 수 있을까. 글쎄, 50년 넘게 그런 가치관으로 살아온 사람을 바뀌게 하기엔 이미 때가 늦은 것 같다. 이번 편까지 엄마의 관점에서 쓰려고 한다.




그녀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고, 생활비 문제로 사실혼이었던 남자와 싸우기 일쑤였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10년 넘게 좌절만 했던 그녀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딸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마자, 그 남자와 헤어지고 싶다고 서울로 이사 가자며 조르기 시작했다. 이미 딸에겐 아비라는 존재는 없었다. 딸의 삶에서 아비라는 존재는 늘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외도하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인간일 뿐이었다. 딸은 같이 사는 남자 또한 그런 인간으로 보고 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제 그녀가 정말로 정신을 차렸다 싶어 엄마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악몽은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었다.


약 12년 간의 사실혼이 2019년 11월에 끝이 났다. 딸은 연차까지 써가며,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딸이 대출받기 쉽도록 살 집을 재빠르게 구해 계약까지 했다. 이미 그녀가 그 남자에게 줬던 약 4천만 원을 받아 가구를 사고, 잔금을 치렀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며 힘들어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건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12년 간의 악몽을 벗어날 수 없었는지 안양에 살고 있는 그 남자의 집으로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딸에게 거짓말을 하면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딸은 저러다 말겠지 하고 넘어가 주었다. 심지어 둘이 살던 집 앞에는 CCTV가 설치돼 있는데, 그 남자가 왔다 간 장면을 딸이 봤다. 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당시에는 넘어갔다. 그러다 딸이 참다 참다 그 새끼를 내 집에 왜 데려왔냐며 술주정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딸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아빠가 무릎에 물이 차서 여기서 요양하게 하면 안 될까?"


딸은 아침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격분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 새끼랑 살 거면 그냥 짐 싸서 나가. 여기 내 명의로 된 내 집이야. 그 새끼랑 헤어진다면서 자식새끼 대출받게 해 놓고, 내가 대학원 왜 못 갔는지 몰라? 엄마가 내 발목 잡았잖아. 엄마, 그 새끼 여기 발 들여놓게 하는 순간, 이 집 불 질러서 그 새끼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그 새끼 코빼기라도 보이면 고소해버릴 거니까 다신 그딴 소리 하지 마."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딸의 눈치를 보다가 그냥 몰래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딸은 그녀의 행동에 진저리가 나는지 술주정이 더 심해졌다. 딸에게 감정을 모두 털어놓았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딸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딸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온 딸이 그녀에게 닭발에 소주 한잔 하자며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꽤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던 딸은 술 마시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망설이다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 나 사실 그 새끼한테 성추행당했어. 고등학교 때인가, 내 귓불 만지면서 남자한테 사랑받겠다고 그러더라고. 기분이 엿같았어. 어떻게 생각해?"라고.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네가 딸 같아서 그랬나 보지. 그걸 왜 지금까지 생각해."라고 답했다. 딸은 그녀의 반응에 놀랐는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지금 이걸 이제야 말하는 이유는 엄마가 그때는 그 새끼한테 억눌려 있었고, 지금은 아니잖아. 이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 꺼내는 거야. 엄마 그때 힘들어했잖아. 난 그걸 알아서 엄마한테 이제야 말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도 사실 친척 작은 아버지한테 성추행당했어. 자고 있는데 내 몸을 만지더라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어. 00아, 이런 게 성추행이야. 네가 당한 건 그냥 아빠가 딸 같아서 만진 행동이고."


딸은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자신이 당한 게 성추행인지 유사 강간인지 분간할 정신이 없고, 성폭행을 당해도 이런 식으로 회피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에 딸은 그녀와 굳이 말씨름하기 싫었다. 그녀는 딸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을 모르고 자신이 당했던 일을 설명했다. 그녀는 딸이 그저 예민하다고 생각을 했기에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었으리라. 딸은 그 말로 천륜을 끊을 때가 되었다고 결론 냈다. 그 말은 평생 딸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일로 딸은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술 먹고 들어오면, 욕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게 일상이었다. 그녀는 딸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감당이 되질 않았다. 늘 그 끝은 육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말마다 그 남자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딸에게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딸에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딸은 주말마다 피신해 있는 그녀가 꼴 보기 싫었는지 술을 진탕 먹고 그녀의 목을 졸랐다. 정말로 딸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그녀는 자식새끼에게 전남편이 했던 그 눈빛과 행동이 보이자, 그대로 집을 나가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기가 막혔다. 자식한테까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그녀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그녀는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딸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지 않은 엄마의 행동을 보고 그녀의 옷가지를 다 찢어버렸다. 참아왔던 분노가 다 터져버린 것이다.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네 딸이 울면서 전화했다고. 또 그 새끼를 만나냐면서. 대체 왜 그러냐는 전화를 받았다. 친정엄마에게 꾸지람을 받아도 그녀는 예전과 같이 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친정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집에 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모두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이 딸애의 방 창문 앞으로 가 울부짖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빨리 가야 한다고.


술이 아직 안 깬 딸이 문을 열어줬다. 옷가지를 챙기려는데 자신의 옷을 다 찢어놓은 집안 꼬락서니에 또 기가 막혔다. 하지만 나중에 처리해야 할 일이었고, 우선 장례식장에 가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르면서 딸과 울면서 화해했다. 딸에게 네가 잘못한 걸 알고 있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딸은 잘못을 했지만, 엄마는 그 새끼 만나면서 왜 내가 잘못한 거냐며 대답했다. 그래도 부모는 부모라며, 아무리 잘못해도 자식은 부모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자, 딸은 그저 울기만 했다. 그렇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뜨겁게 화해한 듯했다.




딸과 잘 지내는 듯했지만, 딸에게 10살 많은 남자 친구가 생기더니 영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다. 헤어졌다면서 왜 외박을 하는 건지, 살림을 차린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얼큰하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유선으로 연결해 놓은 칫솔 소독기가 문제였을까. 그날 그녀의 기분이 문제였을까. 혼잣말로 화장실에 불이 날 뻔했다며, 온갖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문을 왜 닫아서 불날 뻔하게 만드냐며, x발년, x 같은 년, 개 같은 년 온갖 욕을 퍼부었다. 그 소리를 들은 딸이 갑자기 방에서 나와 뭐가 문제냐며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됐다.


이미 그녀의 술주정에 이골이 난 딸은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날 딸 또한 매우 예민했다. 며칠 뒤에 대학병원 가야 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욕지거리하지 말라고, 그럼 바꾸면 될 거 아니냐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딸의 말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그 단어를 트집잡기 시작했고, 딸은 이성의 끈을 놓을 정도로 화가 나 그녀에게 물을 끼얹으며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딸의 노트북을 부수려고 했지만 딸은 순순히 당하지 않았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네 아비와 똑같다며 그 성씨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며, 넌 괴물이라며, 내가 죽어야 끝이 나겠다며 되돌릴 수 없는 막말을 퍼부었고, 이내 딸에게 커터칼로 배때지를 찔러 죽여버리고 싶다고 협박까지 했다. 딸은 그 광경을 보고, "그냥 나 죽여. 낳아줬으니 죽이는 것도 쉽겠네. 그러니까 x발. 누가 태어나게 하래?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라며 반항했다. 딸은 그렇게 서른 살 처먹은 자식새끼한테 아직도 그 지랄이냐며, 그럴 거면 그냥 뒤져버리라고 말하곤, 밖으로 나가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또 한 번 술주정으로 딸에게 감정을 토로했지만, 딸은 받아주지 않았다. 딸은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자식이 잘못해도 부모가 그러면 안 되지. 엄마도 부모잖아. 부모가 자식새끼한테 대못 박아놓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부모도 자식새끼한테 대못 박을 수 있어.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했잖아. 엄마랑 내 사이는 이제 끝이야."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딸에게 욕을 퍼붓는다. 딸과 필요한 말조차도 섞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딱 이 정도 사이가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며 애써 위로해 봐도 딸에게 원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 그녀는 돈도 시간도 많은데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딸자식이 미울 뿐이다.




(시리즈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