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는 내 또래의 분들에게
이제 내 나이 스물아홉.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남자 친구와 취업에서 결혼, 신혼집, 투잡, 심지어 부동산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슬슬 집에서는 딸내미가 걱정되는지 좋은 사람 있으면 돈 모아서 시집가라고 한다. 난 그 말을 듣기가 싫었다. 엄마 인생도 결혼으로 망했으면서 왜 나보고 결혼하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식도 당신처럼 인생 망했으면 좋겠나 싶어서 그런 억하심정도 들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가는구나.’ 하는 마음 반, ‘엄마가 죽으면 난 어떻게 살까?’ 하는 마음 반. 기분이 이상하고 우울했다. 엄마가 죽는다면 물 불 가리지 않으며 지켜낸 내 세계, 내 가치관이 모두 무너질 것 같아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혼이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고독사 하지는 않겠다 싶었고, 그다음은 엄마가 죽었을 때 내 옆에, 내 가족이 있다면, 꽤 잘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좋은 남자 만나도 연애만 하자고, 이혼은 하지 말자고, 우리 엄마 꼴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점점 내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해서도 외로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분명히 외롭지 않으려고, 내가 힘들 때 내 가족이 있었으면 해서 결혼하는 건데 외로우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불안함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아직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아마 글로 털어버리는 게 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외로움을 나만의 방법으로 버틸 수 있을 때, 그때는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걱정은 계속됐다. 과연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결혼 생활은 애초에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냈다.
진짜 사랑은 뭘까 싶다가도 잔잔하게 오래 그 사람을 볼 수 있고, 또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 기반이라면, 아주 썩, 많이 괜찮아야 한다.
내 키가 173cm이기 때문에 180cm는 당연히 넘어야 하고, 나를 품에 담아 줄 수 있는 체격이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인성은 기본으로 좋아야 하고, 내 가정사를 아무렇지 않게 환기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돈은 적당히 벌었으면 좋겠고, 적당히 집착하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되, 혼자서 사색도 할 줄 아는,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때로는 즐겁고 철없게, 때로는 각자 할 일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과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난 오늘도 잠들기 위해 고래 울음소리 ASMR을 들으며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