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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Aug 22. 2023

저는 성당에서 십자가를 보는 걸 좋아해요.

냉담자가 다시 돌아온 탕아가 돼가는 과정에 대하여


"신은 있지만, 모든 걸 다 신이 결정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운명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거죠."



세례명까지 받았음에도 저런 말을 했던 제 과거를 후회합니다. (고해성사에서 펑펑 울지 않을까 싶네요.) 정정합니다. 신은 있고, 저는 그분의 사고뭉치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개딸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저 말들을 내뱉었을 때의 제 마음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어요. 모든 것에 증오로 가득 차있고, 피해망상에 젖어 눈앞에 돌부리도 보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네, 변명 맞고요. 다시 고해성사하러 갔을 때 좀 봐주셨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무릎 꿇고 기도했던 제 모습이 자꾸 상기되는 걸 보니, 호되게 혼내실 듯해요. 성당에 교적 옮기러 가야 하는데 많이 무섭습니다.




다시 성당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요즘 들어, 30번 넘게 참다 할 수 없이 울분을 터트리는 걸,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제 인생의 끝이 후회가 남지 않게, 주변인들이 제 부고록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인생을 살다 가고 싶어 졌습니다. 저는 제 부고록에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꿈 많은 청년이었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긴 참어른이었다고 당당히 적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것의 울화가 많이 쌓여 있어서,  안되고 습니다. 그동안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들에 지배돼서 과호흡이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는데요. 주변인들한테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성당에 가고 싶어 졌습니다. 이건 병원을 간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같거든요.




비록 세례명을 얻으러 간 성당이었지만, 정말 순수하게 성당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큰 십자가를 보고 있노라면, 제 삶의 무게를 대신해서 짊어주는 것 같더라고요. 십자가 옆을 자리한 마리아 님을 보면, 그 또한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를 정말 온몸으로 위로해 주는 그 느낌이 아직도 생경합니다.


그때의 느낌을 살려 그분을 감히 상상한다면, 저의 결핍 지점인 부성애를 가득 채워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고요. 머리가 조금 희끗하고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같은 외모로, 엄숙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돌아온 개딸을 내치진 않으시길 바라봅니다.)




어쩌면 신앙은 나와 화해하려고 갖는 일종의 의식이지 않을까요. 저는 나 자신을 수행하러 가는 그 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 생활하는 데에 친목활동을 극도로 싫어하지요. 어쩌면 건강한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이어간다면, 이 생각은 금세 바뀔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제 신앙에 다른 사람의 입김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집 근처 성당에 가보려 합니다. 제 자신과 다시 대화도 해야 하고요, 화해도 해야 하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도 해줘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 분께, 묵혀뒀던 제 고민을 말씀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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