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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Oct 19. 2023

이제 어두운 곳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살해 위협을 당한 이야기 - 오감의 비상 신호


"저 인간한테 따라 잡히면 난 분명히 죽을 거야."



불과 몇 시간 전에, 새벽 3시 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만취한 상태로 집에 가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 인간은 제 뒤에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이기를 바랐건만, CCTV를 피해 가로등 밑으로만 저를 주시하면서 따라오더군요. 제 생에 그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여자치고 키가 한국 남자의 평균 키이고, 뼈대가 있어 등치가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그런 일은 앞으로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그게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사람한테 죽음 위기를 느끼고, 제 오감이 말해준 비상 신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세상에 미친놈은 수두룩하지만, 눈에 살기를 담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이런 인간을 마주친다면 전속력으로 도망치세요. 따라 잡히면 죽습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팔과 손이 계속 떨리네요. 앞으로 어두운 곳을 보지도, 가지도 못하겠습니다. 세상에 미친 인간들이 정말 많지만, 눈에 살기를 담은 인간을 마주친다면 어떻게든 도망치세요. 따라 잡히면 정말 죽습니다. 옛 말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정신 차리고 도망치세요. 그리고 도망치면서 빠르게 경찰에 신고하세요. 전화는 경찰이 올 때까지 끊으면 안 됩니다. 경찰이 집에 데려다줄 때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마세요.


저는 오늘 새벽, 그러니까 10월 19일 새벽 3시경에 만취한 상태로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그 인간은 처음부터 제 뒤에 있었고, 처음에는 단순히 지나가는 행인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저는 새벽에 귀가할 때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지 않습니다. 그 인간은 CCTV를 피해 가로등 밑으로만 저를 주시하면서 따라왔고,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모자를 썼는지 안 썼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정말 검은 생물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걸어가면서 인상착의를 제 개인 카톡에 적어두었습니다. 그다음 저는 그 인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눈을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따라 잡히면 죽는다." 저는 사람 눈에 그런 살기가 담기는 게 가능한지 몰랐습니다. 사람을 죽여본, 사람을 죽이러 나온 눈이었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고, 썩은 시체의 눈이었습니다. 칼만 보이지 않았을 뿐, 아마 옷에 숨겼을 수도 있고요. 그 인간한테 잡히는 순간 저는 잔인하게 살해당하겠다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속력으로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면서 경찰에 신고했고, "저 곧 죽을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저 붙잡히면 죽어요. 곧 따라 잡힐 거 같아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새벽에 큰 소리로 울부짖었는데도 단 한 명도 나와보지 않더군요. 신고 전화를 끊지 않고, 뛰면서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거리에 벽돌 한 장도 없더군요. 무거운 가방에 무기가 될만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붙잡힌다면 연필과 볼펜으로 눈을 찌르면 될 것 같았고, 스테인리스 텀블러로 머리통을 부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꺼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아르바이트생 분에게 문을 잠가 달라고 부탁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경찰차가 정확히 3대가 오더군요. 저는 경찰 분들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인간의 인상착의를 말한 게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경찰차 2대가 저를 지켜주었고, 1대는 순찰 중이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같이 있던 1대가 순찰하러 갔고, 1대만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원래도 제가 사는 동네는 안전한 구역이라, 날마다 경찰 분들이 순찰을 샅샅이 합니다. 그런 일이 있으니 정말  잡듯이 순찰하시더군요. 결국  인간은 붙잡혔고, 신원 파악이 됐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울고 불고 과호흡까지  상태라, 경찰 분이 저희 어머니한테 말했습니다. 저희  근처에 혼자 사는 50대라고요. 계속 주시해   같다고, 신원 파악이   상태이고, 순찰을  강화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네요.




여자 둘이 살고, 저희 집이 지층이라 여기 이사오자마자 현관문이 보이는 곳에 CCTV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저희 집 근처 사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합니다. 그리고 저희 집 위로 올라가면, 재개발 구역처럼 음산하고 실제로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요. 제 생각엔 그 인간은 그 구역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기가 무섭습니다. 새벽에는 나가지 말고, 외출해도 되도록이면 집에 일찍 들어올 생각입니다.


한동안 혼자 있는 게 무서울 것 같습니다. 어두운 곳도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가로등도 못 쳐다볼 것 같습니다. 가로등 밑에 있던 그 인간이 떠오릅니다. 제 오감이 말해준 비상 신호가 오류였으면 좋겠는데, 제 오감은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살기가 넘치다 못해 흐르는 그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썩은 시체의 눈을 한 인간을 마주친다면, 맞설 생각하지 말고 도망치세요. 무조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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