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가족이 무슨 의미인가요?

당신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N가지 주제 - 가족 편

by 페트라


“너한테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니?”



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일 때가 있었다. 그 당시는 엄마와 내가 육탄전을 벌일 정도로 피 터지게 싸웠던 나날들이었다. 엄마가 하는 모든 언행과 과거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본인 인생도 말아먹었으면서 내 인생에 왜 참견하는 건지 그 당시의 내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너 그렇게 인생 살다가 망한다.”, “첫 단추(첫 결혼)를 잘 껴야 인생이 핀다.”


온통 남자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고, 행실을 조심히 하고 다니라는 말들 뿐이었다. 내 행동이 어때서? 남자가 그렇게 중요해? 본인도 남자 때문에 그렇게 됐잖아, 왜 나한테 그러는 거지? 왜 자꾸 억압하려 드는 걸까? 단지 날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나에게 함부로 권리 행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엄마에게 늘 화가 났었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친구들과 더 술자리를 갖게 되고, 흡연을 시작하고, 클럽을 가고, 외박을 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때는 마음대로 풀지 못했던 일생의 사춘기가 내 인생에서는 20대에 몰아서 왔다.


사람들은 가족이 따뜻하고 나를 감싸 주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사회 집단이라고 추상적이게 말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그런 의미라면 나에게 가족은 없다. 그저 본인들이 젊은 날의 실수로 아이를 가지게 되고, 할 수 없이 낳고, 그렇게 억지로 20여 년간 결혼생활을 하다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 당신들의 유일한 오점인 존재가 나와 친오빠다. 그렇다고 행복한 시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빠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에 본인들의 욕구가 터져버려 우리에게 상처를 줬을 뿐, 딱 그뿐이다. 사실 본인들도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텐데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참으려 애를 썼을지, 내가 30살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두 분은 각자 재혼을 하셨다. 각자 이전 가정에서 낳은 자식을 데리고 또 다른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엄마는 재혼을 하고도 어디서 쓰레기를 주워 왔는지도 모를 만큼 이상한 남자를 데려와 나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가 나를 배신했다고 느껴졌으니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그 어린 날의 내 눈에 비친 아저씨의 눈빛은 동태 눈깔. 탁한 눈빛, 딱 그것이었다.


엄마는 재혼도 실패했고, 지금은 내가 대출을 받아 작고 아담한 집에서 둘이 살고 있다. 여기까지 온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 성추행을 했었고, 엄마는 지금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그 동태눈을 한 늙은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조차 존중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참 죽이고 싶다.


엄마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망했다는 것이, 남자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꼬여버린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 아저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그만하고 싶다며, 서울로 이사 가자며, 나에게 대출을 받으라던 엄마가 별것도 아닌 늙고 더러운 남자 새끼 하나 때문에 자식새끼를 성추행당하게 만들고, 집까지 얻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추잡하게 끝내 놓고도 다시 그 남자를 찾아가기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도 데려온 적이 한 번 있었다.


내가 엄마를 용서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도저히 내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엄마는 기어코 해내고 있었고, 난 그 일로 딱 2년 전에 엄마에게 쌍욕을 해대며 그만하라고 집에 있던 물건을 부수고, 엄마 옷도 찢어버렸다. 그만큼 내 분노는 깊었고, 지금도 사실 화는 나지만 이렇게 살다가 내 인생마저 엉망이 될까 봐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




내가 13살 때, 내 친부모는 가정 법원에서 알량한 위자료와 내 양육권으로 피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친오빠는 고작 20살밖에 되질 않았지만 엄마에 대한 증언을 거짓으로 내세웠고, 오히려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증언해 엄마는 억울하게 구치소에 약 6개월 간 송치돼 있었다. 사실 친아빠가 수차례 바람을 피운 걸 본인도 알면서 왜 그런 거짓 증언을 했을까? 법원에서 들려준 오빠의 증언 녹음본, 그 어린 나를 챙기지 않던 오빠의 모습, 그리고 엄마에게 원망을 하는 오빠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참 하찮고, 멍청하고, 비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친아빠는 내연녀 신분이었던 그 아줌마를 파출부라고 속이며 우리 집에 당당히 데려왔다. 그 아줌마가 해준 반찬들, 나를 딸 같이 대하는 그 행동들이 어린 나에겐 역겨웠다. 엄마는 연락도 되지 않는데 아빠는 뭐 하고 있는 건지, 저 아줌마는 뭔데 엄마처럼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보고 네 애미를 닮았다며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리던 친아빠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 커서 만나니 나보고 미안하다더라.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이제야 미안하시면 건물 한 채라도 주시고 말씀하시지. 뚫린 입이라고 무슨 말 인들 못할까?




그때부터 인지 모르겠다. 피땀 흘리며 내 것을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하고, 투쟁해왔던 것이. 그런 나에게 가족이란 의미는 내 한 몸은 내가 싸워서 지켜야 하는 전쟁 같은 것이다. 정말 엿 같은 상황이라면 이런 걸까. 그래서인지 나는 성격이 참 불 같지만 솔직하고 뒤끝이 없다. 이것이 강점일 때가 많지만, 반대로 나의 약점이기도 하다. 나와 정말 친한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넌 참 강한데 약해. 참 대쪽 같은데 마음이 약해. 그래서 탈이야.”라고.


그렇다. 나는 외강내유다. 강해 보이지만 약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약해 보이지만 강하다. 난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게 두렵지 않다. 내 치부를 자신의 씹을 거리로 삼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어줄 수 있다. 나는 늘 타인으로부터 받은 차별과 편견을 그대로 갚아줄 용기와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타격은 있다. 그 상처를 극복하도록 자가 치유능력을 주신 분들이 바로 내 외조부모님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지극히 사랑으로 키워 주셨다. 두 분 중에 유난히 외할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이뻐하셨다. 당신 손주들은 다 아들내미 밖에 없는데 어디서 이렇게 이쁜 딸내미가 태어났냐며,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나를 이뻐해 주셨다. 나에게 아버지란 천하의 쌍놈 같은 존재인데, 할아버지가 진정한 아버지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늘 나를 기다려 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불편하신 당신 몸을 이끌고, 학생은 체력이 돼야 공부도 잘한다며 맛있는 간식 사 먹고 쉬엄쉬엄 공부하라며 늘 나에게 용돈을 쥐어 주셨다.




가족이 의미하는 건 뭘까. 단순히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존재들일까? 그것도 아니면 독립하기 전까지 나의 보호자들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자아라는 개념이 생겨났을 때,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봤을 것이다. 난 아직 그 답을 명확히 찾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늙어가는 엄마를 보며, ‘그래도 나를 키워내느라 애썼지. 이제 그만 고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할아버지께 심술을 참 많이도 부렸지. 그때 어떻게든 할아버지 병문안이라도 더 갔어야 됐는데, 나는 참 나쁜 딸년이다.’라는 마음만으로. 가족이라는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