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어떤 겁니까 [1편]

당신을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시킨 N가지 사건은? - 미성년자 편

by 페트라


“네가 이렇게까지 덤덤할 수 있는 이유는 뭐야? 어떤 변화를 겪었니?”



나에게 변화란 내 인생 자체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 같은 상황을 또다시 마주했을 때의 참담함, 나름의 큰 시점들을 겪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이 내 삶의 양분이 됐던 것일까? 친구들로부터 너처럼 인생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됐다. 사실 지금처럼 법관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바라본 게 오래되지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동안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꿔 버렸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변곡점들을 순서대로 설명해 보겠다.




때는 15살, 중2병의 절정을 찍는 사춘기 때, 나는 15년 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그 시절 그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의 여동생이었다. 7살 차이 나는 친오빠가 192cm나 되는 체격 좋은 싸움꾼이었기 때문에 그 동생을 건드는 순간, 먼지 나도록 맞는다는 소문이 저명한 꼬맹이었다. 이 소문 때문에 상하관계가 엄격한 일진의 세계에 속한 선배들은 나를 감히 건들지 못했고, 내 곁에 있는 친구들도 건들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꽤나 잘 살았었는데, 집도 잘 살고 나름 순한 성격 탓에 일명 '찐따(일진 무리에 끼고 싶은 바람잡이 같은 아이들)'은 나를 동경했고,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찐따들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부질없는 급 나누기였으나, 사실 내가 찐따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성인이 돼서도 아직도 어릴 적 그 시절에 벗어나지 못해 타인을 무시한다. 나는 그 찐따들을 걸러내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권력구조를 파악해 어떻게든 그 무리의 우두머리를 내 밑으로 누른다. 그 우두머리를 눌러야 찐따들은 나를 따를 테니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유명했던 만큼 부모가 이혼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감히 나에게 말도 걸지 못했던 일본 앞잡이 같은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태도를 보고 열이 받은 나는 그대로 그 아이들의 반 뒷문을 발로 차며 들어가,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와 귀싸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이성을 잃어 아무도 건들지 못했었다. 감히 나에게? 네 같은 새끼들이 나를 무시해? 인간관계에서의 권력이 항상 1위였던 나는 처음 받아 보는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고, 화가 났다.


그 아이들을 한바탕 먼지 나게 패준 다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으로 욕을 하며 전학 보내달라고 소리쳤다. 왜 내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왜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게 내가 잘못한 게 되는지 설명해 보라고 소리쳤었다. 그렇게 나는 동태눈을 한 남자와 살겠다는 엄마와 살기 위해 안양으로 전학을 갔다.


나의 나와바리에서 한가락했던 내가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니 저절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졌었다. 그때 아이들의 세계는 무법지대이기에 난 더욱더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로 살이 급격하게 10kg 이상 쪘고, 다이어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공부든, 친구들 사이에서든, 학교에서든 강자였던 내가 순식간에 약자가 된 순간은 비굴하고 참담했다. 내가 알던 세계가 단 며칠 만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심정은 나라를 잃은 심정이었다.




동태눈을 한 늙은 남자와 울며 불며 헤어지겠다는 엄마 때문에 나는 전학을 세 번이나 다녔다. 중학교 때 1번, 고등학교 때 2번 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내 고향으로 돌아와, 공부 잘한다는 주변 고등학교로 전학 오게 되었을 때는 내 마음속 작은 투쟁 의지를 불태우게 된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하반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댁에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해 혼자 오게 된 나는 냇가에 있는 작은 오리 새끼나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남동생들은 당신들 본인이 백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갑자기 오게 된 내가 심히 거슬렸나 보다. 당신들이 외할아버지 집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야, 조카딸이 갑자기 와선 그 몫을 뺏어갈 것 같으니 오죽했으랴. 어디까지나 그 집은 외할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인데 말이지. 왜 탐내는 걸까? 그 알량한 돈이 뭐라고.


큰삼촌은 외할아버지께 이건 아니라며 조곤조곤 화를 내고 있었고, 작은 삼촌은 나에게 “저 년은 왜 여기 와서 집안 다 뒤집어 놓고 지랄이야.”라고 딱 한마디 했다. 물론 외할아버지가 격하게 화를 내시는 바람에 더 이상 뭐라 하지는 못했지만, 난 어릴 때부터 봐왔던 삼촌들의 언행에 충격을 먹었고, 온몸이 떨렸다.


작은 삼촌의 그 한마디를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나 울었고, 그다음 곱씹었을 때는 살의가 올라왔다. 그다음 곱씹었을 때는 ‘내가 당신들 자식새끼들보다 더 잘 살리라. 누구보다 더 멋있게 살리라.’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수리 8등급이었던 내가 악바리로 3등급까지 끌어올려 대학을 갔다. 그렇다. 지금은 누구보다 잘 되고 곧 대리급 승진을 앞두고 있는 나를, 외가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 건네지 못하고 우러러본다. 이제야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삼촌들을 결국 용서했다.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때의 삼촌들에게 “내가 네 누나에게 해준 게 없다. 이 집은 네 누나 집이니 탐내지 마라.”라는 든든한 내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엄마의 남동생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