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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Dec 11. 2023

성본 변경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험난했던 성본 변경 과정에 대하여


"위 사건 관련하여 12/8자로 우 00님께서 제출한 의견서 송부드립니다."



얼마 , 혈연관계를 끊어버린 친형제가  인스타그램 스토리 조회자 명단에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이 흔들렸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법원에서 부친에게 의견 청취서를 보냈었거든요. 시점이 시점인지라,  인스타그램 계정을 염탐하는 친형제를 보니 괘씸하다가도 이유 없이 속상해져 전 애인의 품에서 엄청 울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의견청취서 복사본이 제게 메일로 왔습니다. 오늘은 험난했던 성본 변경 과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성본 변경은 기본적으로 미성년의 권리를 우선으로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했다면 새아버지의 성으로 변경할 권리, 새로 생긴 형제와 성씨가 달라 곤란한 경우를 대비한 것이지요. 또한, 편모 가정에서 성장할 미성년의 권리를 보호합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친부의 성씨로 불리면 곤란한 경우를 대비하지요.


성인이 되고 난 후, 성과 본을 변경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미성년을 벗어나 사회생활 기간을 꽤 할 때까지 적응이 됐으니 명백한 사유가 있어야만 변경할 수가 있지요. 개명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성과 본(지역을 뜻합니다.)은 혼자서 진행하기 어려워 법무사나 변호사를 선임해 진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는 올해 10월 중순 경에 퇴직금을 받아 가정법을 전문으로 하시는 여성 변호사님을 선임하였습니다. 전문성은 물론이고, 일처리가 빠르고 아주 정확하시더군요. 초반에 많은 질문을 드렸는데 쉽고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셔서 바로 진행 의뢰를 드렸습니다.


개명도 한문 변경은 어렵게 진행된다고 하여 함께 의뢰를 드렸는데요. 우선적으로 성과 본을 변경한 후에 개명을 하는 것이 절차가 덜 복잡하고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여 변호사님의 결정에 따랐습니다.




초반에 서류를 준비할 게 생각보다 많아서 업무일 기준으로 3~4일은 걸렸던 것 같습니다. 17년 전에 받은 법원 판결문과 초본, 등본,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인감증명서 등등 법원에 제출해야 될 서류는 8~10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판사님이 검토하는 기간은 넉넉히 한 달은 잡아야 하고, 변경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1~2개월은 더 소요됩니다.


게다가 모친의 진술서와 제 진술서까지 자필로 써야 접수가 마무리되는데요. 담당 판사님이 정밀 검토하고 나면, 법원에서는 부친에게 의견청취서라는 문서를 보냅니다. 헌법상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원의 허가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데요. 이에 따른 부친의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부친의 의견은 동의함, 부동의함, 잘모르겠음으로 나뉩니다. 간단히 확인란에 체크 표시만 하면 되는 이 문서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가부장제였던 우리나라는 성과 본을 변경하는 건 미성년일 때만 허가되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변경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트라우마가 강하다면요.


다르게 말하면, 부친과의 마지막 끈을 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 성씨까지 불리면 부친에게 맞았던 기억, 폭언을 들은 기억, 엄마를 때린 부친의 모습들이 한순간에 떠오릅니다. 회사생활 할 때도 제 이름만 불리면 괜찮은데, 제 성씨까지 불릴 때 간혹 숨을 들이마셔야 될 때가 있어 괴로웠습니다.




제 사유는 명백합니다. 심한 트라우마와 부친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기에, 부친의 의견청취서는 참고 문서일 뿐, 부동의한다고 해도 변경 허가가 날 수 있습니다.


이 긴 과정 중에 저는 서류 준비할 때부터 힘들었습니다. 17년 전, 가정법원의 판결문을 보고 부친의 재산을 뺏어 오기로 마음먹었고요. 부친에 대한 분노를 촉진제로 대기업 임원이라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때는 연락을 끊은 친형제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기분 좋게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로 인생 영화를 관람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 조회자 명단에 있는 친형제의 이름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다음 날에 전 애인의 지인 결혼식에 가야 했는데, 밤을 꼬박 새울  같아 고민도 없이 전 애인의 집으로 향했는데요.


 가정사를 깊게 모르고 있던  전 애인은 담담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더군요.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상 성씨로도 엮이지 않을 친형제에게 미안함과 법원에서 위증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원망도 섞여 있었습니다.




전 애인은 제가 마음이 약한 , 그리고 지금 제가 불안정하다는   알고 있기에 혼자 끙끙대며 울고 있는 저를 안고 달래주었습니다.  이런 걸로 우냐고,  정도는 괜찮다고 달래주는 손길을 받고 나서야 잠이   있었습니다.


제 심정을 그 누구도 모르겠지요. 저를 낳아준 모친도 모를 겁니다. 천륜을 끊어낸다는 건 아무리 강력한 동기가 있어도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잠이 들고 다음 날의 일정을 소화하고, 일상을 잘 지냈습니다.




며칠 , 법무법인에서 새로운 메일이 왔다고 알람이 떠있더군요. 메일 내용엔 부친의 의견청취서가 있었습니다.

실제 부친의 의견 청취서를 첨부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관련된 사건 번호나 이름은 비공개 처리하였습니다.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흔쾌히 동의한다고 체크한 저 문서를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나고 속상했습니다. 저 동의한다는 표시에는 부친이 저에게 사죄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속상했습니다.


차라리 때리지나 말지, 부친은 제게 트라우마를 남겨서 저는 평생 이렇게 예민하게 살아야 하는데 부친이 너무 원망스럽고, 이렇게 끊어내야 한다는 사실에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주체한 일이고, 제가 벌인 일이지만 너무 고통스럽네요.




저 문서를 보니 여태까지 제가 분노로 쌓아 올렸던 수많은 다짐들과 목표들이 허망해졌습니다. 허무함이 몰려오네요. 그럼에도 저는 계속 그 목표를 향해 가야 하겠지요. 지금 제가 겪는 고통보다 수십 배는 더 아플 거라고 예상합니다.


여러분은 웬만해서 저와 같은 길을 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피로 맺어진 천륜을 끊어내는 게 상상 이상으로 아프니까요. 여러분에겐 늘 평화가 있기를.



그러나 제가 택한 이 길에 망설임이 있어선 안됩니다.

저는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제 목표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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