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에 관하여
초등학교 때 생생했던 30대의 내 모습은 저렇다. 미디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당시의 드라마에서는 커리어우먼을 저렇게 표현했더랬다. 30대의 내가 무엇이 될지는 몰랐지만 저 모습 하나는 분명히 돼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역시 사람은 확신을 하면 큰코다치는 법이다. 올해의 중턱을 맞이하여 오늘은 내가 상상한 30대와 실제 30대 초반의 생활은 어떤지 그 괴리감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이것부터 시작해야겠지. 왜 그간 글을 쓰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래도 나를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독해 줬는데 이것부터 해명을 해야 인간의 도리겠지. 그간 나는 말 그대로 쉬었다. 소수의 친구들과 교류를 하면서 아주 조용하고 깊숙하게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나는 태풍 급으로 큰 스트레스를 여러 개를 맞이하면, 수습을 한 뒤에 꼭 동굴로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이건 어릴 때부터 지켜져 온 내 본질이다. 어쩔 수 없이 행해져야 하는 불문율이다.
그럼, 오랜 기간 떠나 있다가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그건 바로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쁘게 움직이라고 24시간을 채찍질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고집불통이라 천천히 가고 싶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예정일로부터 무려 2주나 더 있었던 대단한 아기였기 때문에 세상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겠다. 이것 역시 내 본질이다.
다시 돌아와서 초등학생의 내가 상상하던 30대의 나는 꽤나 멋진 언니였다. 어느 드라마에서건 '커리어우먼'을 표현하라고 하면 꼭 등장하는 선글라스와 멋진 정장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바로 그 당찬 모습이 내가 저 나이대가 되면 되어있을 모습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추리닝 바람에 슬리퍼를 직직 끌고 하품을 하며, 슈퍼에 들어가 물건을 심드렁하게 고르는 전형적인 백수 이모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 당찬 모습이 되지 못해서 괴리감이 드는 거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장기 백수이지만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감정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에서 중간 선으로 유지하려는 모습이 지금의 나다. 20대의 나는 나를 제쳐두고 무언가를 꿈꾸고 희망하기에 바빴다면, 30대 초반의 지금의 나는 나를 진정으로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고요한 자신감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이 괴리감이냐. 20대가 되든 30대가 되든 여전히 나는 17살의 나라는 점이다. 간혹 인터뷰를 하는 할머님들이 나이만 먹어간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17살의 나일 것이라고 강하게 예감한다.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은 조금씩 우러나겠지.
육신과 정신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은 얼마나 허망한가.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내 안의 자아는 나이를 먹지 않기에 또다시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앞서 말한 지점에서 연장선으로 내 나이를 잊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를 세는 법을 개정한 탓도 있다. 그래서 내가 31살인지, 32살인지, 33살인지 늘 헷갈리기에 그냥 30대 초반이라고 하겠다.
어쩔 때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이제 철이 들어야 할 때도 됐는데, 여전히 똥과 방귀 개그를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한심해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여러 가지 실수를 하면서 깊게 배운 건 정신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됐지. 초딩 같은 내가 어때서.'라는 마인드를 갖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나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20대보다 지금의 나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세상의 다양성을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수용하려고 한다. 여전히 나는 어리석고 우매하지만, 손톱만큼의 여유가 생긴 지금이 더없이 좋다.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커져가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 아닐까.
아마 나는 40대가 돼도,
50대가 돼도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10년마다 똑같은 고민을 해도 여전히 나는 17살의 나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