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종합세트

에피소드 30-1.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by 더곰

판타지 : 공상 혹은 상상, 상상의 산물을 뜻하는 단어.


image.png?type=w580 허블. 2025



우리의 낙원은 늘 폐허 위에서 시작되었다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한국과학문학상 10주년 대표작가 앤솔러지
책 소개 中



이 책은 단순히 표지에 사로잡혀서 읽게 되었다. (역시, 나는 책 선택에 있어서 표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깊다.)

표지에 매혹된 후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때 작가의 이름들이 보였다. 표지에 이름들이 대문짝만하게 써있었기 때문에 못 보기가 쉽지 않다.

김초엽, 천선란.

참 머쓱하게도 나는 한국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기에 그들의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그들 작품을 읽는 기회가 되겠거니 생각하고 흔쾌히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10주년 대표작가 앤솔러지로, (우리나라 말로 '모음집'이라고 해도 예쁠 것 같은데 굳이 영어로 '앤솔러지'라고 표현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책 소개에 따르면 다섯 작가 모두 "죽음 너머,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롤 쓰고 싶다고 했단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이제서야 스토리들이 다시금 이해가 되는 듯 하기도 하다.


김초엽의 <비 구름을 따라서>는 보드게임으로 인연이 된 두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어 함께 생활하는 것도 잠시 한 명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서 초대장을 받게 되고, 그 초대장에 적힌 장소에서 사라진 여성과 인연이 있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세 사람들은 서로 그녀와의 인연을 얘기하면서 하나의 결론에 이르른다. 사라진 여성은 그녀가 애타게 찾았던 또 다른 지구를 찾아 떠난 것이다.


기발하다. 사실 보드게임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초반에는 '이게 무슨 내용이야?'하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읽을수록 정신 없는 느낌까지 들어서 진도가 안 나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설수록 '아...' 하며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았던 문장들은 어쩌면 작가가 말했던 이면의 세계에서 던져진 글인 것처럼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갈수록 원래 있었던 글인것마냥 안착되어 있음을 느꼈다.


천선란의 <우리를 아십니까>는 좀비물이다.

세상은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 세상이 되었다. 좀비들이 창궐하기 전에 이미 죽음에 다다른 여성과 그 여성을 사랑했던 여성의 러브스토리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여성은 병원에서 좀비에게 물렸다. 그리고 그 여성을 사랑했던 여성은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사랑하는 여성에게 물린다. 그렇게 둘은 서서히 좀비가 되어가는데... 온전히 뇌 기능이 상실되어 서로를 잊게 되기 전에 거북이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바닷가로 향하는 스토리이다.


근데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기 위해 바닷가로 향하는 스토리는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에서 이미 본 기억이 있어서... 게다가 그쪽은 노부부가 바다로 향하는 것이라 더 눈물나고 절절해서 감동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통해 느낀 건, 역시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구나!라는 것) 저자의 작가 노트를 보면 좀비물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좀비물을 쓴 것 같았다.


김혜윤 <오름의 말들>은 영화 <컨텍트>가 생각난다.

지구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지구 침공은 아니고 그냥 나타났다. 여기에 외계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대화를 시도하는 언어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외계인들에게 '오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무해한 생명체임을 확인하게 된다. 정부는 무해함을 확인하자마자 이내 '연구대상'에서 '상품화'를 하기로 하고, 언어학자는 '오름'의 해방(?)을 돕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냥 생각보다 뻔해서 뻔했다. (영화 <컨텍트>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청예 <아모 에르고 숨>은 복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아일랜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복제'에대한 판타지물들을 보면 대체로 인간의 장수를 위해 만들어진 이식용 복제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근데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은 아니다.


<아모 에르고 숨>은 광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로맨스 물인데 살벌하다. 게다가 마지막 엔딩까지!! 잘 짜여진 구성에 섬세한 감정 묘사, 그리고 숨 쉴틈없이 읽혀나가는 몰입도 최상의 소설이다.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안 다뤘다)


조서월 <I'm Not a Robot>은 왜 마지막에 배치했는지 알겠다.

온전한 '죽음'에 대한 서사가 제대로 그려진 소설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나서 젠장스럽게 허해졌다. 책을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다 읽었는데 '죽음' 때문에...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난, 죽음이 참 싫다. 상상하기도 싫은데 소설 때문에 강제 소환당했다.

어쨌든, 이 소설은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로봇의 이야기이다. <노인과 바다>가 바다에서의 노인과 청새치만의 대 서사 장편 드라마!라면, <I'm Not a Robot>은 사막에서의 노인과 마지막 로봇의 대 사서 장편 드라마다.

중간 중간 깨알 재미와 공감대가 인상적이다. 노인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사막에서 홀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며 글을 쓴다. 책 한권을 쓰는 게 그의 숙원사업이다. 하지만 독자는 오직 마지막 남은 로봇 뿐. 쓴 글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하는데 로그인 작업에서 '로봇인가요?' 버튼을 넘어서지 못해 인증 영역에서 실패해 결국 글을 남기지 못한 상태로 사망하게 된다. 노인의 모습을 로봇은 지켜본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래! 나도 '로봇인가요?'에서 오토바이 그림을 찾는 귀찮음을 경험했었다. 특히나 신호등을 체크하라고 했을 때에는 어디까지가 신호등인지를 판단하는 것부터 스트레스였는데...! 이걸 재치있게 여기에다가 쓰다니.

여튼,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한 소설이었다.


이 책은 '판타지' 라고 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판타지'를 기대했었다. 헌데 '평행 세계', '좀비', '외계인', '복제인간', '로봇'... 많이 알고 있는 흔한 내용이었어서 사실 살짝 실망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에 대해서 한 번 제대로 읽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던 것 같다.


모든 작품이 다 노잼은 아니기에, 그리고 골라보는 재미가 있기에 한 번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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