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에피소드 34-1. 둠칫둠칫둠칫치!

by 더곰

책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른다는 것은 상당히 스릴있으면서 재미가 있다.


무슨 책을 읽지 하고 슥슥 교보문고 sam에서 책구경을 하던 중에 제목이 독특해서 날름 이용권 한 개를 차감했다.

책의 제목은 이러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얼마나 매 순간 지랄스러운 삶을 살아왔는지, 그 지랄스러운 순간을 얼마나 책 제목처럼 호쾌하게 이겨냈는지 이 저자의 에세이가 궁금해졌다.



%EC%A7%80%EB%9E%84_%EC%B1%85_%ED%91%9C%EC%A7%80.jpg?type=w580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멈칫했다.

아, 내가 생각했던 호쾌함이 아니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리뷰를 챙겼다.

책을 읽으며 울다 웃었다를 반복했다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image.png?type=w580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마지막 페이지가 이 책의 정체성이다.


저자는 열 다섯 살부터 10년 동안 시각을 서서히 잃게 되면서, 시각 장애를 갖게 된다. 엄마는 딸의 장애를 부정했고, 집은 가난했다. 꿈이 있던 소녀는 꿈조차 흑백처리가 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원했던 것도, 바랐던 것도 아닌데 주변의 시선은 안쓰러움이다. 그 시선조차 버거울 정도로 힘든 삶.


그런데, 저자는 그런 삶 속에서도 억지로 밝은 척 하지도, 힘들다고 투정부리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삶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삶 속에서 써내려가는 글들이 참 와닿는다. 여느 철학책에서나 있을 법한 깨달음이 있다.


'극복'이란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이 지랄맞음도 쌓이면 축제가 되겠지> 37p



그치, '극복'이라는 말만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자살을 거꾸로 하면서 살자래.'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단다. 아마도 영혼없는 리액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진짜 상처를 보지 않고선 무심코 던지는 말이라는 게 귀신같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심코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한 것이 아닐까.



진정한 복수는 모욕을 주는 것도 용서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 지랄맞음도 쌓이면 축제가 되겠지> 76p



책 속에 다 담아내지 못했던 그 뒷 이야기에서도 얼마나 많은 븐노의 경험이 있었을까. 그로 인해 통달한 듯한 저자의 글에서 나는 참 많은 공감을 느꼈다.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이 지랄맞음도 쌓이면 축제가 되겠지> 229p



저자는 여행도 갔고, 탱고도 배우고 있다.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위로 받는 1인이 되었다.


마냥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다.

어떨 때에는 피식 거리면서 웃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작가의 이전글은근하게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