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사교육은 어찌해야 하나

심지어 나는 사없세 회원이라네~

by 심행일치

평소 나는 보통의 고교 선생답게 사교육에 대해서는 약간 심드렁한 입장이었다. 교사로서의 자존심도 있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을 보며 꼭 사교육이 성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한 탓이다. 오히려 너무 일찍 혹은 오래 사교육을 받느라 정작 힘을 써야 하는 고등학교에 와서 이미 지쳐버린 아이들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느라 반나절은 좀비 떼가 되어 있는 아이들,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와 수업 시간에 ‘아하!’하는 배움의 감탄이 점점 사라진 수업은 교사로서 회의감을 느끼게 할 때도 있었다. ‘너희들 이거 학원에서 다 배웠지?’ 같은 말을 교사가 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보람과 자기 교과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도대체가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한다면, 아마도 사교육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자조나 냉소로 인한 것이 아닐까?


여하튼, 사교육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이거나 염려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살짝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자습시간에 우리 반 J의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교무실로 불러 이야기 좀 하자고 앉혔더니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대뜸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는 사이사이 조금씩 물었더니 수학 때문에 괴롭단다. 너무 진도가 빨라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고선 설움이 터졌는지 더욱 흑흑거리며 운다. 그렇게 1시간 반을 울고 있길래 J가 탈진할까 봐 물을 먹이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수학 선생님께 가서 상담 좀 받고 오라고 했다. 수학 선생님과 한 시간 정도 독대하더니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교무실을 나갔다.


놀라고 속상해서 이번에는 수학 선생님께 내가 상담을 요청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J의 눈물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J는 내가 인정할 만큼 독하게 공부하는 아이중 한 명이다. 수학을 사교육 없이 혼자 해내고 있는 학생으로,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자습 시간마다 애를 쓰고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등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학습 태도가 눈에 띄는 악바리였다.

그러나 자기의 속도로는 너무 빠른 수업 진도를 채 다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수학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좀 절망적이었다. 수학 교과목의 교육과정상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쉬운 단원 같은 경우엔 한 시간 만에 진도를 빼는 경우도 있다며, 솔직하게 이야기하셨다.

“수학은 사교육 없이 솔직히 힘들어요.”

아니, 사교육이 전제되는 교육과정이라니! (누구야? 누가 이따구로 교육과정을 만들었어?)


그 후로 J에게 수학 정도는 학원의 보조를 좀 받으면 어떻겠냐고 몇 번 물었지만 아이는 완고했다. 자기만의 자부심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J를 응원하고, 수시로 수학 선생님께 가서 질문하고 수잘러(수학 잘하는 친구)에게 팁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J는 장하게도 수능이 끝날 때까지 수시로 수학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수학을 혼자 해냈다. 진짜 너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애썼다고 칭찬했다.

졸업 후 찾아온 J는 내게 살짝 이야기했다. “수학만큼은 조금 도움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걸리더라고요.” (이렇게 수학을 공부한 J는 공대를 다니고 있다.)


요즘은 이런 학생이 귀하다. 그냥 사교육이 기본 세팅 값이 된 친구들도 많다. 나도 넘치지 않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가 혼자서 모든 과목을 커버해 학원비를 세이브하는 그런 이변은 나타나지 않았다. 혼자서 하는 뚝심이 부족해, 자료 얻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아이는 사교육을 받는다. 심지어 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후원 회원이기도 한데 말이다!(아 나의 모순!)


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뭘 그렇게들 다녀? 말짱한 컨디션으로 학교 수업이나 잘 받아야지.’

하지만, 상대평가가 지배하는 평가 시스템에서는 학교 수업이 불충분해서가 아니라 쟤보다 내가 점수를 더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외의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불행이다. 나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모두가 가외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사교육을 더더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쟤보다 더 잘해야 하니, 쟤가 하는 것보다는 더 별도의 것이 필요해.’가 무한 반복인 것이다.

내신의 비중이 커지면서 아이들은 매년 4번씩의 입시를 치른다. 아니, 수행 평가까지 수회의 입시를 치르게 된다. 게다가 상대평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98점을 받아도 99점, 100점 받은 학생 수가 많으면 내 노력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하락한다.

헐~ 노력의 가치가 석차별로, 등급별로 매겨진다니!


교사의 입장에서도 상대평가는 석차를 갈라야 하기 때문에 내신 출제에서 학생들이 맞도록 출제하는 게 아니라 틀리라고 출제한다. 수능시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문제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 집 아이를 보니 더더욱 분노가 생겼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 기죽어서 다니던 1학년을 거쳐 새로운 의욕과 의지를 발휘한 2학년 1학기까지 참 열심히 애쓰고 있음이 느껴졌다. 시험 점수만으로는 꽤 괜찮았다. 잘했다 싶었다. 하지만 상대평가로 석차가 매겨지고 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래서 혼자서 해보던 아이는 자료라도 효율적으로 얻어보겠다며 내키지 않아도 학원엘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성적 내기가 만만치 않음을 내 일로 실감한 이 미련한 엄마의 불안감도 한몫했다.


아아, 급히 맺는 결론은 이렇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결론을 맺는다.

사교육은 적당히 쓰면 약, 과하게 쓰면 독.

필요는 하지만 필수는 아니며, 내 노년의 안전망을 갉아먹고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는 자율성을 훼손시킨다면 안 하는 게 낫다.

EBS니 사설 인강이니도 잘 되어 있으니 애들을 믿어봐도 좋고.

바쁜 학원 스케줄 때문에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자는 바보짓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 제일 좋다.

(학원 다니며 부족한 잠 수업시간에 자야 하는데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수업해서 방해된다고 민원을 넣었다는, 강아지 풀 뜯어먹는 이야기도 온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사교육과 성적을 생각할 때, 문제는 이것이다.

나의 불안.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 해가 되고 있다.

왜 나의 아이는 잘해야 하는가? 그런 당위는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당위를 아이에게 기대하는가. 엄마의 자존심? 주변 지인들의 잘하는 자식을 의식하는 경쟁심? 성적이 곧 아이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불안감?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아이를 흉보기 위함이 아니다. 엄마인 나를 글로 진정시키기 위함이다. 답답한 K-고딩의 현실을 보고, 그 이면의 속속들이에 당황하고 갈등하면서 느낀 마음을 토로하고 스스로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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