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딩의 방학, 엄마의 방학
방학인 요즘, 나의 하루는 '인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
오전 9시, 일부러 여유를 두고 식사를 준비하지만 식탁엔 정적만 흐른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집안에서 무한 대기를 하다, 결국 시장기를 참지 못해 혼자 숟가락을 든다. 잠든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며 "꼭 밥 먹으라"는 당부를 남기고 운동을 다녀온다.
12시 반, 현관문을 열며 아주 살짝 기대를 품어본다. ‘그사이에 정신 차리고 공부라도 좀 하고 있으려나?’
기대는 현관 센서등이 꺼지기도 전에 바스라진다. 도어락 소리에 후다닥 튀어나온 게 분명한 좀비 몰골의 두 아이가 식탁에 앉아 있다.
"이게 아침이야? 점심 아니야?“
화가 치밀지만 꾹꾹 누른다. 보고 있으면 폭발할 것 같아 안방으로 도피한다. 분통 터지는 마음을 다스리려 딴생각을 해보지만, 입에선 나도 모르게 ‘어휴’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나와 사이클이 맞지 않고, 늦게 일어나 버릇하는 두 아이. 게다가 학원 시간표도 각각이라 아이들의 일정에 맞춰 하루 다섯 번 밥상을 차리는 삶.
오전에는 내내 ‘깨우는 자’, 종일로 보면 ‘차리는 자’의 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삶이다.
코로나 이전의 고등학교 방학은 이렇지 않았다. 학교는 방과 후 수업과 자습으로 북적였고, 아이들은 학기 중처럼 일찍 등교해야 했다. 생활 패턴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모는 안도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때는 학교에서 남의 아이들 보살피느라 정작 내 새끼들 끼니는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 방학은 오로지 학생의 ‘의지’로 운영되는 시간이 되었고, 그 자율성 앞에 우리 집 고등학생은 무참히 무너졌다.
무슨 잠을 저리도 잘까. 내버려 두면 오후 1시까지도 일어날 기척이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자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아이의 사주를 넣고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사주를 보니, 아이가 살기 위해서 잘 수밖에 없네요.’
살기 위해서 잔다고?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는 밤낮이 1/3 바퀴쯤 틀어져 있다. 새벽 3~4시까지 부스럭대며 불을 밝히고 있는 아이에게 이른 아침 기상은 생존을 건 투쟁일 터다. 언젠가 아이의 사주를 본 분도 "밤늦게까지 뽀스락거리는 애니까 그냥 놔둬. 걔는 그냥 그런 애야"라고 했었지. 늦게 자는 것조차 타고난 운명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실 K-고등학생의 삶이란 게 참 피곤하긴 하다. 일년 내내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긴장의 연속이다. 1년에 네 번 치르는 내신 고사 외에도 수행평가, 발표,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까지…. 입시 시스템은 아이들이 잠시도 쉬는 꼴을 못 보는 듯하다.
교사들끼리도 "우리가 요즘 고등학생이라면 저걸 다 해낼 수 있을까?"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하니까.
교사로서 아이들의 고단함을 뻔히 알면서도, 집에서 기력 없이 늘어진 자식을 보면 다시 '불안한 엄마'로 돌아온다. 참다 참다 꾹꾹 눌러 담은 분노를 담아 던지는 한마디에 아이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늦잠을 안 자는 엄마 밑에서 묻어갈 틈도 없이 감시당하는 기분일 테니 말이다.
내 딴에는 노력을 많이 했다. 아이마다 생체 사이클이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았다. 그래도 다행히 학교 갈 때는 지각 한 번 안 하니, 방학 때만이라도 밀린 잠을 정산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학교 다니며 얼마나 피곤했겠니. 그 긴장 속에서 얼마나 지쳤겠니. 뒤늦게 몰아서 방학 때나 좀 쉬어보겠다는 몸부림이겠지. 엄마라는 이름은 결국 끊임없이 내려놓고,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들의 피곤한 삶을 매일 목격하는 교사이기에, 나는 오늘 한 번 더 아이를 이해해 보기로 한다.
"그래, 너도 엄마도 참 애쓰고 있다. 그치?"
# 여러분 자녀의 방학은 어떤 풍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