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한다! 가출이란거.
퇴근 후 저녁 차리기부터 뒷정리까지, 폭풍 같은 시간이 호로록 지났다. 씻고서 이제야 한숨 돌리며 아이 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 여보세요?
- 여보세요? 실례지만, 핑구 선생님이신가요?
-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 저…. 에몽이 엄마예요.
- 아, 네~ 에몽이 어머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 선생님…. 저…. 집 나왔어요….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요….
학생 가출도 아니고 학부모의 가출이라니!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어머니의 막막함과 서러움이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 선생님.... 에몽이가 요즘 자꾸 짜증을 내고 말도 안 하려고 해요. 이제는 대학도 안 가겠대요…. 애랑 다투다가 너무 속이 상해서 무작정 집을 나와버렸는데, 막상 갈 데도 없고, 답답해서 선생님께 전화드렸어요….
- 에구, 어머님. 정말 마음고생 많으셨겠네요.
그런데 너무 속 끓이지 마시고, 이왕 나오신 거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하세요.
- 네?
- 에몽이가 정말 대학 안 가겠다고 하던가요? 그 녀석, 대학 안 갈 마음 전혀 없어요. 지금 에몽이도 불안하고 답답하니까 괜히 하는 소리 같네요. 엊그제 저랑 대입 상담했거든요. 눈 반짝이며 가고 싶은 대학들을 저랑 한참이나 이야기했어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나는 말을 이어갔다.
- 에몽이가 대학 안 가겠다고 하는 건, 자기 욕심만큼 성적이 안 나오니 속상해서 하는 말이에요.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니 투정 부리는 겁니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저한테 다짐하고 간 걸요?
엄마가 편하니 어머님께 투정 부리고 있네요.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시고 그냥 토닥토닥해 주세요. 이 시기가 조금 지나면 다시 예쁜 아들로 돌아올 거예요.
- 아 그런가요. 선생님? 진짜요?
어머니의 목소리에 서렸던 울적함이 걷히고 목소리가 한층 밝아지셨다.
- 그러니까 어머니 이왕 가출하셨으니, 영화도 보시고 맛있는 것도 사드세요. 기분 싹 풀고 들어가세요.
에몽이가 불안해서 엄마한테 부리는 투정, 조금 쿨한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엊그제, 우리 반 에몽이와 대입 상담을 했더랬다.
누구보다도 의욕적이고 쾌활하게,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해서 자기가 목표하는 대학에 가겠노라고 약속도 했던 터다. 하지만 고2 2학기의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저도 어찌하지 못하겠지.
녀석이 괜히 엄마한테 투정 부려서 엄마가 놀라신 모양이다.
통화를 하며 어머니는 빠르게 진정되셨다. 울적함이 묻어나던 떨리는 목소리가 밝아지신 게 티가 났다. 아마도 담임인 내가 아이의 상태와 상황을 잘 알고 마음 놓으시라고 위로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고2 시기는 길고, 할 것 많고, 예비 고3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의 감정 기복의 폭이 넓다.
학교에서는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명랑함을 한껏 드러내며 애쓰지만, 집에서는 긴장을 풀고 본연의 무거운 마음이 가식 없이 표출되기도 한다. 그 마음 졸임을 옆에서 같이 겪는 건 학부모이시다.
어렵고 긴 시간 동안 옆에서 러닝메이트처럼 완급 조절을 도우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할 수 있는 것도 학부모이시고.
그러니 아이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냥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넉넉한 품을 준비한 채 ‘스탠바이’하고 있으면 된다. 아이들은 그저 제 몫의 성장통을 겪어내며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이때는 몰랐지.
어머니의 불안감을 빠르게 진정시키는 데에 집중했으니까.
이게 곧 고등 학부모가 되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걸.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