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고등 엄마의 '어떤 만남'

10년 지기 엄마들과의 만남이 남긴 것

by 심행일치

오래전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큰애가 대여섯 살 꼬꼬마였을 때, 요리 미술 체험 활동을 하며 만났던 이들이다. 아이들이 고물고물 요리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했으므로 자연스레 친해졌다. 수업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참 즐겁게 지냈던 사이였다.

세월이 흘러 6살 꼬꼬마들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들 그 시절의 여유와 행복을 그리워했던 터라 몇 년 만의 만남이 무척 설레고 기대됐다.

이제는 아이 친구 엄마가 아니라 ‘친구의 아이들’로 관계의 비중이 옮겨간 사이라 반가운 근황 토크 후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정서가 안정되고 똑똑했던 한 아이는 내신 받기 어려운 기피 여고에서 1등급을 지키고 있었고, 고집 있고 모험가 스타일이었던 한 아이는 국제고를 다니고 있었다. 압구정으로 이사 간 아이도 착실했던 성정답게 역시나 부족하지 않게 공부를 잘하며 지낸다는 소식이 들렸다. 만남 당시에는 그저 기억 속 아이들의 성장이 감탄스러웠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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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달은 집에 돌아온 후에 났다. 별생각 없이 큰애한테 어렸을 적 친구들의 소식을 툭 던진 것이다. “정은이는 국제고 다닌대.” 차마 전교 1등급이라는 이슬이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나름대로 ‘필터링’을 거친 언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 이야기를 왜 해요?”

“아니, 어렸을 때 친구라 네가 궁금할 것 같아서…. 그 애가 국제고 다니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길래 울어?”

당황했지만, 나의 ‘별생각 없는 이야기’가 아이에게는 위축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고등학생 아이와의 대화에서는 반드시 ‘별생각이 있어야’ 했다.

“엄마가 괜한 이야기를 했네. 국제고 다니는 게 부러워서 한 말이 아니었어.”


아이를 달래주고 돌아섰는데 기분이 여러모로 찜찜했다. 진짜 후폭풍은 그다음에 왔다. 자꾸만 내신 1등급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왜 우리 아이는 그런 성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되었다.


마침 또래를 키우고 있는 선배 교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뼈 때리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안 만나. 애들 졸업할 때까지는 아예 안 보려고 해.”

학군지에서 아이를 키우며 큰애의 자퇴까지 경험했던 분이기에 그 말이 어떤 심정에서 나온 것인지 단박에 짐작이 갔다. 선배의 말에 깨달음이 왔다.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어떤 만남은 좀 미루는 게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더 좋겠구나. 내 아이가 상대보다 잘하면 상처를 주게 되고, 못하면 내가 상처를 입는다.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 후로는 주로 선배들을 만났다. 아이 입시를 끝냈거나 취업까지 시킨 인생 선배들. 나보다 먼저 폭풍우를 경험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다스려졌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이미 키워본 이들의 결론은 비슷했다.

그냥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라는 것. 그러면 제 알아서 어떻게든 길을 찾는다는 것. 아이를 보며 답답해하지 말고 네 인생이나 잘살고 있으면 아이는 스스로 힘을 발휘할 거라는 것.

사실 이건 내가 학교 상담실에서 학부모들에게 수없이 했던 이야기다.


“어머님, 아이를 믿어 주세요.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애를 다 키워보지도 않은 채 교사로서 내뱉던 그 워딩이, 이제는 내가 나를 향해 새겨야 하는 주문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마음이 답답할 때 또래 엄마를 만나면 그저 한탄의 공감뿐이지만, 선배 맘을 만나면 가이드가 된다.


아이와 나를 위해서, 어떤 만남은 잠시 미뤄둬도 좋다. 만남의 스위치를 잠깐 꺼두고 그 시간에 내 아이를 한 번 더 믿어 주는 연습과 나 자신이 즐거울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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