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5)

모두 고향 없이 지낸다.

by 정서윤

그로부터 1년 후, 그러니까 이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추석 연휴를 맞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빴다. 그때는 취업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던 때였다. 나는 서울에서 면접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달칵.

“엄마, 나 내일 아침 일찍 못 갈 것 같은데...”

“그래, 고생했어. 할머니집은 우리끼리 갈 테니까 천천히 내려와.”

“응. 내일 저녁쯤엔 도착할 거야.”

매번 이런 식이다. 태안을 못 간지 몇 년째인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번 바빠서, 바빠서, 바빠서. 혹은 지쳐서.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움싯댄다. 모두 뿔뿔히 흩어져있다. 아버지는 태안을 나와 대전에 자리를 잡고 나는 대전을 나와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고향 없이 지낸다. 지친 몸을 뉘였지만 눈은 이른 아침에 떠지고 만다. 이럴 줄 알았으면 ... 지난 생각은 관두고 그저 하려던 것을 실행에 옮긴다. 짐을 간단히 챙겨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탄다. 대전 집에 돌아오니 나뿐이다. 몇 달 만에 오는 집이지만 마치 어제 온 것 같은 익숙함. 이런 익숙함 또한 익숙하다. 여전히 그대로 비워져있는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적막하다. 틱 톡 틱 톡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배가 고파진다. 밥. 할머니네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우리를 먹이는 데에 기쁨을 느꼈던 그녀에게 나는 하루 먼저 가는 것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면 40분이다. 평소에는 전혀 타지 않는 번호의 버스에 몸을 실어 할머니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상상한다. 할머니의 냄새와, 적막함이 아닌 고요함을 상상한다. 향냄새를 더욱 타오르게 만드는 주황색 햇빛을 상상한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개 사 들고 문을 열었다. 나 말고 누가 있다.

“할머니 ~ 할아버지 ~ 연이 왔어요.”

부엌 벽 뒤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할머니가 아닌 유진이다.

“어? 뭐야.”

“연이야! 왜 오늘 와?”

6년만인 유진이는 어색한 표정 없이 나를 맞는다. 하지만 나는 유진이가 어색하다. 어딘가 달라졌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며 유진이 맞은편에 있는 할머니를 본다. 할머니가 일어나 나에게 오고 있다.

“어메, 이게 무슨 일여? 너가 오늘 다 오고. 엄마는 같이 안 웠냐?”

식탁에는 봉지에 담긴 먹을 것들이 잔뜩 올려져 있다.

“저 빼고 다 태안 갔죠. 저는 못 가서 일찍 왔어요. 할머니 일찍 보고 싶어서.”

할아버지도 굳게 닫혀 있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응 ~ 연이여? 왜 못 갔댜.”

“바빠서요 ... 오늘 내려왔어요 서울에서.”

“그려 ~”

할아버진 그렇게 말하고 카페트에 앉는다. 위치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여전한 페르시안풍의 카페트 위에.

“밥은? 밥은 먹읐냐?”

할머니는 밥 걱정부터 한다.

“밥 먹을려고 왔죠.”

“히히히.”

할머니는 아이같은 웃음. 유진이는 그런 나를 계속 보고 있다.

“오랜만이다 연이야.”

제 언니처럼 하얗다. 물길 같은 머리칼이 성숙해 보인다.

“응, 정말 오랜만이네. 예뻐졌다 유진아. 길 가다 마주쳐도 모르겠어.”

유진이가 웃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뭘.”

“10년까진 아니지.”

“그런가? 어쨌든 이렇게 일찍 오니 이렇게 또 보네. 넘 좋다야.”

“그러게... 배고프다.”

식탁에 잔뜩 쌓인 봉지가 옆에서 계속 눈에 밟힌다.

“근데 이건 다 뭐야?”

“몰라, 할머니가 어떤 여자가 주고 갔대. 근데 누군지 모른대. 말이 돼?”

“누군지 모른다고?”

“응, 모른대. 교회에서 나왔나?”

할머니는 불교 신자였지만 모두 집을 떠난 이후로 집 근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응. 평소에도 먹을 거 자주 갖다 주시거든.”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

내가 사다 놓은 빵 몇 개가 아주 작아 보인다. 봉지에서 과자를 하나 꺼내 먹는다.

“아고, 그거 먹지 말어. 밥 묵으야지.”

우리 얘기에는 관심도 없던 할머니가 용케도 작은 과자 하나는 잘 본다. 난 과자 하나를 입에 물고 그녀를 돕기 시작한다.

“수진이는?”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유진이에게 묻는다.

“지네 아빠한테 갔지.”

“아.”

평소에는 여기 맡겨두고 얼굴 몇 번 내비치지도 않는 양반이 명절이 되면 꼭 와서 데려간다. 난 왠지 괘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티내지 않기로 한다.

“동진이는 잘 있나? 언제 제대해?”

“1년은 남았지.”

동진이는 심신장애로 계속 입대가 미뤄졌었다가 몇 달 전에 입대를 했다. 나는 또 알고 있다. 그저 ‘아이고.’ 하고 대답했다.

어느새 식탁에는 명절 음식이 가득한 상이 차려졌다. 할아버지는 카페트에서 일어나 식탁에 자리 잡고, 할머니, 유진이, 나 이렇게 넷이서 어딘가 구성원이 이상해진 상태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거실의 공기가 휑하다.

“언제 가? 자고 갈 거야?”

유진이가 입에 밥을 문 상태로 이야기한다. 밥그릇을 들고 먹는 여전한 그녀의 습관. 밥그릇 너머 날 바라보는 동그란 그녀의 눈.

“음 ... 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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