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이 용서되지가 않았던 거야.
“난 자고 갈 거야.”
“그럼 나도 자고 가지 뭐.”
밥이 무척 맛있다. 벅찰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밥을 먹고 나면 꼭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에게 놀러 나갔다 올게요. 하고 집을 나섰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분다. 조금은 서늘하다. 자켓 앞섶을 여매며 우리는 앞을 보고 걷는다. 유진이의 허리까지 오는 까만 긴 머리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넌 요즘 뭐 하구 살아?”
“나, 계속 취업 준비 중이지. 서울에서 ...”
“흐흐, 연이 너처럼 공부 잘하는 것도 피곤해. 아직 대학원 다닌다고 그랬지? 공부 끝나면 취직하려고 또 공부해야 하잖아. 나 같은 애들은 아무데나 들어가면 되는데.”
유진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했다.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 행동은 자주 선생님과 동급생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작은 이모의 중재도 없었으며 유진이의 적응도 없었다. 결국 유진이 혼자 선생님들과 사투를 벌이다 퇴학 처분을 받기 전에 자퇴를 한 것이다. 자퇴 절차에 이모의 승인이 필요했으나 이모의 연속된 불참으로 그나마 자퇴도 뒤늦게 했다. 유진이는 내 속도 모르고 웃고 있다. 자기 때문에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나의 고등학교는 대전 곳곳의 중학생들이 진학했었기 때문에, 유진이가 다니던 중학교의 애들도 꽤 있어 그녀의 이야기를 그 아이들의 입을 통해 가끔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자주는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야 뭐 다 그런 거니까.
“야, 걔, 이유진. 이번에 결국 자퇴했다더라.”
급식실 긴 테이블에 앉아 여느 때처럼 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들려왔다.
“헐, 자퇴? 야... 근데, 걘 놀랍지도 않다. 그럴 줄 알았어.”
“그니까, 야, 너 기억나? 그 때 최석영쌤 수업 시간에 걔 갑자기 나가서 쌤이 걔 잡으러 나가 가지고 우리 수업 안 했잖아. 나 걔 같은 애는 진짜 첨 봤다니깐.”
“헐, 나 기억나. 미친. 진짜 웃겨.”
전에도 지나가다가 종종 이런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유진이가 나의 가족인 것을 밝히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잠자코 밥만 입에 넣고 있다.
“야... 근데 걔 인생 이제 어떡하냐? 그럼 중졸 아니야?”
어느 누군가가 역겨운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목이 막힌다.
“야, 뭘 어떡해. 인생 망한거지.”
“근데 애를 어떻게 키우면 그렇게 돼? 엄마가 관리 안하나?”
나는 조금씩 턱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애들은 그냥 가정 환경이 그런 거야. 불쌍한거지.”
“안 불쌍해.”
모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식판에 고개를 박고 있던 아이도, 서로의 경멸스러운 눈동자에 고개를 박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안 불쌍해. 유진이, 내 사촌이야.”
추웠던 고등학교 2학년 막바지 시절, 나는 그 때부터 졸업까지 학교를 혼자 다니게 되기 시작했다. 호시절이었다.
유진이는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 옆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모습은 해린 언니를 떠올리게 한다. 하얀 얼굴, 흐르는 긴 머리,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끝이 말려 올라간 그 긴 속눈썹. 어렸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가던 맨션의 놀이터에 가서 우리는 이제 그네 말고 벤치에 앉아 있다. 할머니 집에서 나와 항상 과자를 사던 슈퍼에서 이제 맥주를 사서 나왔다. 하늘은 점점 더 높아지고 바람이 점점 더 서늘해진다. 캔맥주를 한 입 홀짝인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졌다.
“나, 얼마 전에 해린 언니 만났어.”
유진이는 놀란 기척도 없이 계속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뗐다.
“...만났다구?”
“응... 언니 일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응...”
“넌 알고 있었지?”
“연이야, 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아니?”
유진이는 대답 없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건 내가 묻고 싶던 거라고. 나는 대답 하지 못 한다.
“...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
“언니가 집 나가던 날 ... 나 언니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붙잡고 울었다. 가지 말라구. 근데 ... 언니가 뭐랬는지 알아? 언니가 우리랑 엄마랑 같이 살 수 있게 됐다고 듣게 된 날, 언니는 너무 기쁘더래. 그래서 이상했대. 왜냐면 언니는 그 때까지 엄마가 죽도록 미워서 엄말 매일 저주했는데, 같이 살 수 있다니 기쁘더라고. 엄마를 그렇게 미워하던게 그게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였다고, 그 때 알게 된 거야. 웃기지 않니? 언니가 그러더라.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이 죽도록 밉다고. 그러고 길거리에서 우리 둘이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어 ... 엄마랑 같이 살게 되면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이 보일 테니까, 언니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던 거야.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이 용서되지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집을 나갔던 거야. 20년 동안 자기를 버려둔 엄마를 사랑하는 자신이 미워서 ...”
나는 어깨부터 머리까지 뜨거워진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봤던 순간, 그 짧은 찰나가 떠오른다. 언니는 그 강에서 자신의 사랑을 씻어내고 있었을까, 자신의 미움을 씻어내고 있었을까, 혹은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씻어내고 있었을까 ... 유진이가 말을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옆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이미 많이 울어낸 듯한 눈동자는 건조하다. 그 눈동자를 여전히 긴 속눈썹이 감싸고 있다. 우리는 맥주를 어느새 고개를 젖혀 마시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응...”
“근데 있잖아 연이야, 난 언니랑도, 엄마랑도 다른가봐.”
유진이는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짓는다.
“... 무슨 말이야?”
“너, 나 어디에서 일하는 줄 아니?”
유진이는 또 대답을 않고 갑자기 싱긋 웃으며 질문을 한다.
“내가 어떻게 알어. 알려준 적이 있어야지.”
나는 그 웃음이 미워 괜한 마음에 틱틱대며 웃었다.
“금붕어 가게. 나 금붕어 가게에서 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