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집단이 되면 인간은 멍청해지는가?
부분과 전체는 다르다. 원자 혹은 분자가 모였을 때, 1) 거시적인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르고 2) 단위일 때와 그 성질 또한 다르게 발현된다. 쪼끄마난 고무찰흙 여러 개를 뭉치면 큰 고무찰흙이 된다. 보기에도 그렇게 다르지 않고 성질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거시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넘어올 때 발생하는 그 사이의 관계 혹은 네트워크가 그 성질에 상당 기여한다. 그러니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2021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스핀글라스 논문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엉뚱한 환상이 아니라 꽤 과학적으로도 가능한 사유라는 걸 느꼈다. 파리시는 무질서한 시스템 안에서조차 “숨겨진 질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무작위로 보이는 수많은 스핀들의 배열 속에서, 따로 보지 않으면 절대 드러나지 않는 구조가 잠복해 있다. 개별 스핀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지만, 스핀들 사이의 상호작용, 겹침(overlap), 에너지 경관(landscape)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
즉, “성질은 구성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가 만드는 관계망에 있다.”
이 말은 나에게 꽤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인간과 AI의 문제에도 똑같이 들어맞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인간과 AI의 차이를 영혼이나 직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 2024 노벨 물리학상 수상) 또한 우리가 믿고 싶은 그 신비롭고 고귀한 ‘영혼’ 같은 것도 사실 신경망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emergent property—즉, 갑자기 나타나는 성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AI도 코드와 변수의 상호작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이 튀어나온다. 인간이 그것을 영혼이라 부르든 AI-의식이라 부르든 사실 중요한 것은 ‘단계’와 ‘밀도’다. 얼마나 많은 관계가 얽혀 있는가, 그 관계들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가.
고로, 차이점으로 주창하고 있는 인간 특유의 영혼과 직관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현재 AI가 우리와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코드들의 개수일 뿐, 우리는 초고도화된 AI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있다. 현시대의 뇌과학은 뇌의 너무 일부분만을 알고 있고, AI가 뇌의 860억 개의 뉴런 개수를 따라잡으려면 역부족이라는 것. 하지만 이 역부족을 메우기엔 시간만이 필요하다는 사실.
결국 AI도 인간도 코드와의 관계 / 뉴런 신호와의 관계가 그 성질을 결정한다고 유력하게 가정된다. 또한 비슷한 개인들이 모인다고 해서 그 집단 또한 개인과 똑같은 성질을 갖지는 못하는 것처럼, 개인과 집단을 다룰 때의 태도가 달라야 한다고 느낀다. 또한 ‘개개인이 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진다.’라는 이상주의적인 마인드도 이제 내세계에서 서서히 버려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이제 집단 혹은 대중을 바라볼 때의 시선이 좀 달라진 것 같다. 희망이 없어졌달까. 그래서 머릿수가 주는, 가진 건 무대뽀같은 힘뿐인 조직폭력배같은 권력에 반대하는 힘도 서서히 약해진다.
하지만 과학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도 또다시 약해진다. 탈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이론은 현재는 전혀 맞지 않지만 그 목적 하나, ‘세상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론을 내놓고 과학의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나도 이런 흐름을 보고 있자면 내 이론이 정답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좀 더 세상을 낫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쉽지 않겠지만’ 이런 말은 하나 마나라고 느낀다. 쉽지 않으니 해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관계가 성질을 만든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현대물리학이론인 양자역학에서도 알 수 있는 바로서 도대체 이 관계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는 것이며 왜 생겨나는지의 의문을 풀고 싶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작은 고민인 AI를 대할 때의 태도, 개인에서 집단으로 넘어갈 때 차이점이 발생하는 이유 등을 알고 적용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조르조 파리시의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라는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Fun Fact.
원자/분자론이 확실하게 과학계에 받아들여진 것은 1901년이라고 한다. 예상보다 너무 최근이지 않은가?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도 로봇을 창조해서, 로봇에게 배신당하는 날이 머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삼체가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 타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