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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Oct 13. 2022

프롤로그

마지막 잔소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따님'

지금도 아빠는 종종 너를 이렇게 부르시더구나. '따님, 어디 가시나요?'. '따님, 언제 오나요?'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따님이라는 호칭이 오늘따라 참 각별하게 느껴진다. 네 생일이라서 그런가. 나도 가만히 '따님'하고 소리를 내봤어. 예쁘고 다정한 소리가 나오네. 따님, 생일 축하합니다.


오래 생각했어.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네가 사는 세상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서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나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도 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했어. 생일에 뭐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냐고? 나의 소박한 소원이잖니. 나이가 들어도 아무 경계 없이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걱정도 하게 되는구나.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종종 생각했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하는 이야기도 좋지만 우리는 대개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더 편안해하지. 이 글은 그런 마음으로 쓰는 글이야.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글이야. 아마도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잔소리가 될 수도 있겠어. 이제 잔소리가 먹힐 나이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요령과 지혜가 소용이 닿는 시대도 아니잖니. 그렇다고 입을 꽉 닫고 있자니,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의 권위(요즘에 이걸 꼰대라고들 하더라)를 내려놓기가 너무 아쉽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이 편지를 시작하게 되었어. '라떼는~'으로 시작되는 긴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기도 해. 그 이야기 속에는 이외로 재미있는 것이 숨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라떼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나일뿐 네가 아니지. 젊은 친구들이 라떼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어. 단지 옛날 야기라서가 아니라, 충고나 조언이 담겨있어서가 아니라 듣는 대상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그래서 재미있는 생각을 했어. 아빠의 '따님'을 떠올린 것이지. 너에게 격식을 갖추어서 편지를 써보자. 이름하여 따님께 올리는 전 상서. 존댓말을 하게 되면 일방적인 잔소리는 걸러지고 라떼 이야기도 조심하게 되겠지. 그런 후에 나오게 될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나도 궁금해진다. 이 글은 너에게 쓰는 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해. 오히려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이 편지는 또한 너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면서 모녀관계를 넘어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쓰는 글이야(그러려면 아예 이런 글 따위 쓰지 말아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쓰기로 결정). 너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어. 사설이 너무 길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우리 잘 지내보자.


p.s. 노력하겠지만, 잔소리가 아예 없을 순 없지 않겠니? 봐주던가, 봐주기 싫으면 건너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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