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올해 환갑이다. 작년, 그러니까 2024년 하반기부터 환갑은 시작되었다. 내년이면 우리가 환갑이야. 믿어지니? 놀라움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친구들의 말과 만날 때마다 나이 듦의 증세와 흔적을 짚어내는 형제자매들의 지적질(?) 덕에 환갑은 제 때보다 일찍 당도했다. 60이 뭐라고, 환갑이 뭐라고 이 호들갑들인가.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생각을 정리하든, 물건을 정리하든, 사람을 정리하든, 일을 정리하든 하다못해 책상 정리라도 해야 환갑을 산뜻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줄곧 생각했다. 60은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을 돌봐야 하는 인생의 숙제가 얼추 마무리되는 시기이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평균 수명이 길어진 이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말이 생겨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60은 인생의 중요한 숙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시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나의 현재 상황도 그러하다. 나의 부모는 돌아가셨고(시어머니가 계시지만 그분의 노후를 돌보는 것을 나의 숙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그럭저럭 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자식 걱정을 하기로 한다면야 끝이 없지만, 자식 걱정은 자식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나는 이제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물리적, 정신적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60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인생의 숙제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만 생각해도 욕먹지 않을, 떳떳한 나이에 이르렀다.
물론 환갑이 전적으로 반가울 수만은 없다.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 60의 고비를 넘어 늙어가는 것은 공허하고, 허탈하고, 막막하고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들이 더 많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유로운 시간이 아주 짧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해방감을 만끽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은 내 몸이 하고 싶은 것을 허락해야만 오롯이 내 시간이 된다. 안타깝게도 60에 이르면 몸이 늙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낀다. 그러니 환갑은 이제 정말 나만 생각하고 살아보자고 결심해야 하는 인생의 시간이다. 환갑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질풍노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첫 번째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춘의 시간은 그다지 밝고 환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의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지배했다. 폭력적이고 우울한 시대적 분위기가 한몫을 했다. 그 시절에는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태도로 여겼다. 꼭 시대의 탓은 아니었겠으나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모범생으로 살았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삶에 자부심은 없다. 환갑을 앞두고 나는 결심한다.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테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거야. 인생은 60부터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격려의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