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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북] <환갑, 잔치가 시작됐다>의 14화 60대에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젯밤에 쿠알라룸프르에 도착했다. 어학원과 가까운 레지던스를 예약했는데 시내 중심에 있어 편리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어학원의 위치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볼 겸 아침 일찍 나섰다. 구글 지도를 보며 어학원까지 걸었는데, 딱 10분. 역시 구글, 이럴 때는 나보다 똑똑하다. 이렇게 믿음직한 앱과 함께라면 이곳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다(정말?). 어학원 위치를 확인하고 나니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이제는 동네 구경을 할 차례. 역시 구글앱이 알려주는 대로 파빌리온 쪽으로 슬렁슬렁 걸었는데 이른 시각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가게 이름이 MON CHINESE ROTI. 유명한 맛집인 것 같은데 상호명만 보고는 뭘 파는지 감이 안 잡혔다. 줄을 선 사람들 사이로 조리 과정을 잠깐 지켜봤는데 밀가루 반죽에 고기 다진을 것을 넣고 기름에 튀기고 있었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손이 무척 빨랐다. 그러나 구미가 썩 당기지는 않았다. 언젠가 맛을 보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나가기로(사실은 용기가 안 났다).
파빌리온 빌딩에 도착하니 스타벅스와 브런치 카페가 눈에 띄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로컬 카페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이 간절했던지라 브런치 카페로 들어가 커피와 크로와상을 주문했는데 그제야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바게뜨. 뭐야, 쿠알라룸프르에서 마신 첫 커피가 파리바게뜨 커피라니. 무의식의 작용일까. 흠흠, 빵에서 한국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어제는 늦게 도착해서 짐을 풀고 허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 낮에 보니, 내가 묵는 레지던스의 앞과 뒤의 풍경이 전혀 달랐다. 앞에는 파빌리온 같은 대형 쇼핑몰과 고층 빌딩이 즐비해 세련된 도시 분위기를 풍겼고, 뒤에는 재래시장과 작은 로컬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어 거칠고도 생기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쪽은 잘 다려진 셔츠 같고, 한쪽은 막 벗어놓은 티셔츠 같은 느낌이었다. 대형 쇼핑몰의 쾌적한 분위기도, 현지의 향기가 나는 작은 점포들도 모두 매력적이었다. 다만, 길거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아직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저녁은 피빌리온 푸드코트에서 '무난할 것 같은' 면 요리를 골랐는데 독특한 향이 영~ 입에 맞지 않았다. 결국 몇 젓가락 뜨고 포기했다. 스스로 '웬만한 음식은 다 잘 먹는다'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한국 기준이었다. 식성을 과대평가한 내가 오만했다. 결국 옆 매장에서 아침에 보았던, '몬 차이니스 비프 로띠'를 사봤다. 속에 다진 고기가 들어있는 튀김 찐빵 같은 음식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래도 밥! 밥 생각이 간절했다. 한국에서 챙겨 온 컵라면이 떠올랐다. 불과 이틀이 지났 뿐인데 개봉하게 생겼다. 이 낯선 도시에서, 두 달 동안 나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까. 걱정이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다. 어떤 일들이 생길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나는 그 안에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지 궁금하다. 얼마나 허둥댈지도. 조금 걱정되고 많이 기대된다. 몸은 쿠알라룸프르에 당도했지만, 마음은 아직 하늘 어딘가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아직은 도착 중이다.